‘대탈출’, 이러려고 상상 초월하는 제작비 투입했나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tvN <더 지니어스>, <소사이어티 게임> 등으로 소셜 서바이벌을 예능의 인기 장르로 정착시킨 정종연 PD가 신작 예능 <대탈출>을 내놓았다. 방탈출 게임이라는 컨셉과 강호동의 합류로 일찌감치 화제를 모은 프로그램이다. 2회 마다 새로워지는 스토리와 역시 테마에 맞춰 새롭게 구현되는 밀실 세트의 볼거리 조합도 돋보인다.

첫 회에서는 멤버들이 모이는 과정과 사설도박장을 테마로 에피소드가 그려졌다. 멤버들은 방탈출 4단계까지 성공했지만, <대탈주>도 과연 ‘신개념 탈출 예능’으로서 성공적인 출발을 보여준 것일까? [TV삼분지계]가 상상을 초월하는 제작비가 투입됐다는 그 밀실 안에 함께 들어가 보았다.



◆ 탈출하거나, 말거나

무릇 사람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 때 행복한 법이다. 그러나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기 시작하면 잘해야 옳다. 누군가가 지불한 돈 값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머리 잘 못 만지는 미용사, 손맛 없는 주방장처럼 돈 낸 사람의 기분을 망쳐서야 되겠는가. 안타깝게도 tvN 새 예능 프로그램 <대탈출>에는 좋아하지도, 잘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프로그램 주제인 ‘방탈출’에 대한 관심은커녕 의욕조차 없어보였으니까. 잘 몰라도 된다. 못해도 된다, 하지만 성의 없이 보이는 건 곤란하다. 출연자 중 유일하게 신동만이 ‘방탈출’ 게임을 이해하고 있었다. 좋아하지도, 잘하지도 않는 일을 하게 된 나머지 출연자들의 속내는 어떨지, 그걸 보는 시청자들의 기분은 또 어땠을지.



순전히 제작진 책임이다. 인구 5000만이 넘는 나라에서 왜 몇 안 되는 이들로 돌려막기를 하느라 난리굿들인지 도무지 이해 안 된다. 지난해 <공조7> 때도 진부한 출연자 조합과 허술한 구성으로 시청자의 외면을 받았던 tvN이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고 있다. 시청자의 눈높이를 따르려는 노력은 접어둔 채 구태의연한 캐릭터에 비슷비슷한 관계 설정들. 첫 대면 장소인 식당부터 이동을 위한 버스 안 토크까지, 얼핏 <신서유기>로 보이기도 했고 초기 <아는 형님>이 오버랩 되기도 했다. 어쨌거나 예능은 동참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 성공이 아니겠나. <대탈출>은 게임을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다음 회가 궁금하지도 않았다. 탈출하거나, 말거나.

방송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 ‘극한의 탈출 버라이어티’는 어디에?

tvN <더 지니어스>, <소사이어티 게임>의 정종연 PD는 <대탈출>에서도 일관되게 한정된 공간에서의 스토리텔링을 만들어간다. 다만 최후의 승자를 가리는 경쟁 방식이었던 전작들과 달리, 이번 <대탈출>에서 강조하는 것은 ‘팀플레이’다. ‘브레인 예능’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도 이른바 ‘형님 리더십’을 강점으로 하는 강호동을 중심에 놓은 것도 그래서일 게다. 프로그램 공식 홈페이지에 소개된 강호동 캐릭터 설명에서도 “최강의 팀워크를 만든 리더십과 승부사적 기질”이 강조되어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막상 첫 회에서 팀플레이에 제일 무관심했던 멤버가 바로 강호동이었다는 점이다. 탈출 3단계 사장실에서 다른 멤버들이 힌트 찾기에 골몰하고 있을 때 황당한 손가락 장난으로 집중력을 깬 장면은 애교에 불과했다. 1단계에서부터 방송이 끝날 때까지 내내 공복감을 호소하는 모습에 이르면, 소위 ‘베테랑 예능인’이라는 50대 중년 남성이 배고프다고 짜증부리는 걸 예능에서 왜 보고 있어야하나 회의감까지 들었다. 만약 강호동의 행동이 연출자의 의도대로 ‘오답플레이에 의한 재미’를 겨냥한 고도의 전략이었다면, 실패했다. 오답의 재미란, 어디까지나 정답을 찾기 위해 집중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탈출>의 경우 그 정답은 방탈출이라는 최종 목표를 향한 팀플레이다. 최소한 그 목표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야 허당플레이도 이해할 마음이 생긴다. 그런데 첫 회만 보면 최종 목표가 과연 방탈출이었는지, 비밀금고에서 치킨 꺼내기였는지도 모르겠다. 이럴 거면 <대탈출>을 제목으로 내세우고 ‘극한의 탈출 버라이어티’, ‘초대형 밀실 탈출쇼’를 표방하지 말았어야 한다. 차라리 공들여 제작한 세트 안에서 콩트를 하는 게 더 재밌을지도.

칼럼니스트 김선영 herland@naver.com



◆ 친구들이랑 방 탈출 카페에서 시간을 죽이는 그 나른함 그대로

제작발표회에서부터 tvN 예능 중 가장 많은 제작비가 투입되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긴 했지만, <대탈출>의 본질은 결국 방 탈출 게임의 감각을 고스란히 TV로 옮겨오는 것이다. 친구들끼리 밥 먹고 남는 시간에 뭘 할까 고민하다 별 생각 없이 방 탈출 카페에 들어가서는 온갖 무리수를 써보며 방을 탈출해 보고자 키득거리는 그 나른한 휴일의 재미. 그러니 여기엔 정종선 PD의 전작들인 <더 지니어스> 시리즈나 <소사이어티 게임>이 보여줬던 피 튀기는 눈치 싸움이나 연합, 정교한 두뇌 플레이 같은 건 낄 틈도 없거니와 나와서도 안 된다.

김종민과 최하위 경쟁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자꾸 상심하는 강호동의 모습이나, 대놓고 허당인 김동현을 놀리며 좋아하는 멤버들 사이에 맴도는 실없는 웃음이야 말로, <대탈출> 제작진이 최대 제작비를 투여해 매 녹화마다 새로 밀실을 지으며 노리는 바인 셈이다. 뭔가를 놓치게 될까 싶어 재채기도 마음 놓고 하지 못한 채 화면을 지켜봐야 했던 <더 지니어스> 시리즈와 비교하면, <대탈출>은 보다 말고 화장실에 다녀와도 큰 지장이 없는 느긋함으로 가득하다.



물론 이번에도 어김없이 전원 남자로 멤버가 꾸려졌다는 사실은 피로하다 못해 지친다. 그러나 단순히 멤버들 사이의 호흡만 놓고 본다면 구성 자체는 크게 나쁘지 않다. 본능적인 직감으로 움직이는 스포츠계 출신 예능 캐릭터라는 공통점에도 이렇다 할 접점이 없던 강호동과 김동현 사이에 연결고리로 김종민이 들어가며 강호동-김종민-김동현으로 이어지는 큰 축이 생기고, 이 큰 축을 옆에서 촌평하는 유병재와 방 탈출 게임 경험이 많은 신동, 의욕이 앞서는 막내 역할의 피오가 제 몫을 한다.

<대탈출>이 엄청나게 혁신적이거나 전에 본 적 없던 예능은 아니다. 예능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일이나 시대정신을 충실히 반영하는 일 같은 것에도 <대탈출>은 큰 관심이 없다. 하지만 당신이 나사 빠진 친구들과 방 탈출 카페에 가서 왁자지껄 떠들며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는 실마리를 찾는 나른한 재미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대탈출>은 나쁘지 않은 선택지가 될 것이다.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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