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일기’, 카메라 돌 때만 농사짓는 게 눈에 보인다는 건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재료를 손수 기르고 키워서 닭볶음탕을 만들겠다는 tvN 예능 <식량일기>의 지금까지를 지켜보면 앞으로 탄생할 요리의 그 맛이 심히 걱정된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이라면 백종원과 시청자들의 분노를 끌어 모으는 그런 식당이라 할 수 있고, 같은 시간에 방영하는 <수요미식회>라면 혹평을 받을 만한 상차림이다. 출연진 구성과 합, 기획의도와 풀어가는 방식, 촬영장 설정, 연출과 리얼의 경계, 윤리적 딜레마를 다루는 교양과 예능 차원의 재미의 불협화음 등 모든 면면이 과하거나 부족하거나 조화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손맛으로 비유할 수 있는 진정성의 부족과 참고한 레시피의 오류라 할 수 있는 기획 설계 자체의 오판 때문이다. 레시피부터 살펴보자. <식량일기>의 가장 큰 특색이자 주재료는 시골, 슬로라이프라는 정서적 접근을 색다르게 시도하는 과정에서 가져온 육식의 윤리적 딜레마다. 부화부터 시작해 성장할 때까지 이름 붙여 키우고 돌본 닭을 잡아먹으면서 식량의 소중함을 느끼고, 식재료인지 정을 나눈 생명인지 어떻게 대할지 생각해보고자 한다. <삼시세끼><섬총사><도시어부><불타는 청춘>처럼 자급자족의 슬로라이프 쿡방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몸에 좋은 식재료에 대한 고민과 함께 열악한 축산 환경과 사육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의 메시지까지 담았다.

그래서 교양 프로그램처럼 매회 비건 채식주의자, 음식칼럼니스트 등 여러 층위의 사회적 명사가 나와서 식량의 소중함에 대해 이야기하며 방영하자마자 논란이 되었던 기르던 동물을 식재료로 잡아먹어도 되는지에 대해 결론을 짓는다. 여기서 생각해볼 것이 <식량일기>가 굳이 어렵게 맨땅에다가 흙을 퍼다 붓고, 콘테이너로 집을 만들어 농장을 차리고 연예인들을 농부로 만든 이유는 느림의 미학과 노동의 기쁨, 건강한 먹거리를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여유와 행복의 정서를 전하기 위함이다. 이런 정서들은 단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스며드는 것이 포인트다. 그런데 이와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진지한 도덕 딜레마를 특이점으로 삼아 꽤나 치열하게 다루며 생각해보길 강권한다.



진정성과 설정의 오판은 캐스팅에서도 드러난다. 면면은 기대가 되는 인물도 있고, 궁금한 인물도 모두 있지만 하나의 가족이나 팀으로 역할과 캐릭터를 나누고 친해지는 과정을 아직까지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우선 농장을 함께 운영하고 실제로 출연자들이 직접 한다고 하지만 관찰형 예능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인간의 조건>이나 <룸메이트>가 맞이한 인위적인 상황에서 리얼을 추구하는 한계가 반복된다. 일단 방송이 7개가 넘는 서장훈과 최근 섬에도 주기적으로 가야 하는 이수근은 너무 바쁘다. 아이돌 멤버들은 애초에 예능에 올인할 상황이 아니다. 함께 살면서 농사를 짓는다며 아이돌부터 외국인 출연자까지 스크럼은 짰지만 가장 많은 분량을 담당하는 박성광을 중심으로라도 똘똘 뭉치는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예능에서 진정성은 출연진의 시간과 정성이 꽤나 녹여내야 나올 수 있다. 그래서 ‘진짜’ 정서적 공유가 중요한 라이프스타일 예능들은 실제로 최소 며칠이라도 머물면서 그 동네 혹은 세계로 시청자들을 초대한다. 멤버들이 친하게 지내고, 농사를 일상의 우선순위로 둔다고 호언장담했지만 누가 봐도 촬영 스케줄이 있을 때만 참여하는 게 눈에 보이는 상황이다. 리얼버라이어티나 관찰형 예능에서 하나의 가족으로 친목을 다져가는 과정과 진행은 어떤 형태의 예능에서도 가장 중요하다. 지금 닭을 길러서 잡아먹을지 말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유사가족을 결성한 이유를 찾지 못할 만큼 이 프로젝트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염려해야 한다.



같은 의미로 아파트가 보이는 허허벌판에 방송을 위해 인위적으로 건설한 별빛농장은 이 프로그램의 진정성과 정서적 접근이 왜 어려움을 겪는지 보여주는 상징과도 같다. 실제가 아니고 제시하는 라이프가 해보고 싶다거나, 저기에 속하고 싶다는, 멋져 보이는 낭만이 부족하다보니 <섬총사> <삼시세끼> 하물며 <도시어부>와도 달리 그 어떤 로망도 자극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자 이야깃거리는 점점 메말라가고 있다. 이번 주는 방송인 겸 요리사인 이원일 셰프가 게스트로 나와서 밥을 한 끼 해먹었다. 아무런 맥락 없이 게스트를 부르기 시작했다는 것은 닭볶음탕을 만드는 여정이 아직 반환점도 돌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이야기가 떨어졌다는 방증이다.

애초의 기획의도와 달리 힐링이 된다는 이수근과 달리 시청자들에게 로망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도심 속 농장, 생명의 위대함이 시청자들의 관심을 사지 못하는 것은 출연자들 간의 조화나 농사를 임하는 태도나 모든 면에서 자연스럽지 못한 탓이 크다. 여러 전문가들이 출연해 논란에 대해 첨언을 하더라도 불편함이 가시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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