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법남녀’, 어떻게 반전의 드라마가 될 수 있었을까

[엔터미디어=정덕현] MBC 월화드라마 <검법남녀>가 뻔한 장르물이 아닐까 하는 선입견이 없었던 게 아니다. 그런 선입견에는 MBC 드라마가 처한 현실도 작용했다. 지난 10년 간 뒷걸음질 친 MBC드라마의 후유증이 적어도 1년은 갈 것이라 예상되는 바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MBC 드라마는 작가들도 연기자들도 기피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러 있었다.

이런 선입견은 출연자 캐스팅에서조차 난항을 겪는다는 이야기에서 확신으로 바뀌었다. 백범 역할의 정재영은 사실상 드라마 출연이 거의 없던 배우다. <듀얼>과 <어셈블리>에 출연한 적이 있었지만 그의 본무대는 영화였다. 1990년대부터 최근까지 그는 일일이 거론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무수한 영화에 출연해왔다. 은솔 역할의 정유미는 많은 작품에 출연했지만 미니시리즈에서는 주연보다는 조연을 더 많이 맡았다. 여기에 이이경이나 박은석 같은 배우도 최근 주목받긴 하지만 아직까지 주연급이라 하기에는 어딘지 모자란 면이 있었다.

그러니 드라마에 대한 사전 기대감이 생기기가 어려웠다. 첫 회 4.5%의 저조한 성적으로 시작한 건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검법남녀>는 조금씩 이야기를 쌓아가며, 백범과 은솔의 캐릭터도 살아났고, 무엇보다 매번 벌어지는 사건들이 숨 막히게 전개되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한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로 몰입감을 주는 이야기의 힘은 ‘추측’과 ‘억측’ 그리고 증거에 의한 ‘반전’이라는 코드로 완성됐다.



화성연쇄살인사건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다룬 우성연쇄살인사건의 경우, 프로파일링이 잘못 되어 엉뚱한 피의자들을 잡아들이고 있었고 그래서 갖은 추측과 억측들이 사건을 더 난항 속으로 빠뜨리고 있었지만 괴짜 법의관 백범에 의해 사체 남겨진 상흔에서 과거 베트남전 등에 쓰였던 오일이 발견되면서 사건해결의 단서를 잡는다. 범인으로 생각했던 사진관 주인이 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범인이 아니라는 게 밝혀지고, 같이 사건을 공조해왔던 과거의 형사들 중 한 명이 범인이라는 충격적인 반전이 이어졌다.

단순해 보여도 이런 사건을 추적하면 할수록 오리무중에 빠져버리는 검경과 그 때마다 “사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며 갖은 질책과 비난에도 묵묵히 증거를 찾아내는 백범의 맹활약은 <검법남녀>가 월화극 꼴찌에서 시작해서 시청률 1위의 반전 결과를 만든 주요 요인이었다. 그 백범이란 캐릭터를 진짜 빙의한 듯 혼신의 연기를 해준 정재영의 하드캐리를 칭찬할 수밖에 없다.



<검법남녀>는 반전의 드라마였다. 그건 이야기 자체의 구조가 반전요소를 늘 품고 있었다는 의미에서도 그렇지만, 기대감이 전혀 없었던 작품이 갈수록 시청자들을 몰입시켰다는 점에서도 그랬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반전은 쉽게 회생하기 어려울 거라 여겼던 MBC 드라마가 거둔 성공이라는 반전이다.

이것이 가능했던 건 법의학이라는 소재를 가져와 백범이라는 특별한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매 회 각각의 한 편이라고 해도 좋을 법한 사건들을 쉴 틈 없는 전개로 이끌어낸 대본의 힘 덕분이다. 많은 난관들이 있었지만 대본은 이런 장애들을 뛰어넘을 만큼 매력적이었다. 물론 그 대본을 200% 소화해낸 정재영 같은 연기자의 공을 빼놓을 수 없겠지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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