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션샤인’의 멜로는 어떻게 대의와 어우러졌나

[엔터미디어=정덕현] 역사왜곡 논란으로 시끄럽지만 역시 김은숙 작가의 멜로는 절묘한데가 있다. tvN 주말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총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멜로가 그렇다. 유진초이(이병헌)와 고애신(김태리)의 첫 만남은 일본과 야합하는 미국인을 저격하는 현장에서다. 그들은 복면을 한 채 같은 표적을 향해 총을 겨눴고, 저격이 끝난 후 도주하다 서로의 눈이 마주쳤다. 그건 상대방이 누구인가를 살피려는 긴장감 넘치는 순간이면서, 동시에 이 두 사람이 첫 만남을 갖게 되는 순간이다.

그 사건을 조사하게 된 유진은 애신을 불러 면담을 하게 되고, 이미 서로의 정체를 들킨 그들은 손바닥으로 서로의 하관을 가린 채 그 눈빛을 교환한다. 그건 애신이 동지인 줄 알았던 유진이 미국인이라는 그 정체를 확인하는 순간이면서 좀 더 가까이 서로의 눈빛을 나누는 순간이다. 그리고 두 사람은 다시 ‘사라진 총기’가 인연이 되어 만나게 된다. 미군이 총기를 찾기 위해 애신의 몸수색을 하려 할 때 유진이 등장하게 된 것. 그건 애신과 유진이 미국과 조선이라는 서로 다른 입장에 서 있는 상황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런데 유진은 애신에게 번번이 사건을 수사하는 듯하면서도 사실은 사건을 덮으려 한다는 걸 귀띔한다. 저격사건은 본인이 한 것이니 그럴 수 있다 여겨지지만, 총기가 사라진 사건을 덮으려는 유진의 행동은 다소 의아한 선택이다. 애신의 스승인 장포수(최무성)가 총기를 훔쳐갔다는 심증을 가진 유진은 총포 연습을 하는 애신을 찾아와 곧 이곳에 미군들이 들이닥칠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내 스승의 뒤를 캐는 거요? 아님 내 뒤를 캐는 건가?” 애신의 도발적인 질문에 유진은 드디어 속내를 드러낸다. 애초 조선에 들어올 때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 했다는 그가 “호기심”이 생겼다는 것. “조선이 변한 것인지 내가 본 저 여인이 이상한 것인지. 잡아넣지 않는 걸로 방관했고 총을 찾지 않는 걸로 편들었소, 지금 그걸 수습중이고.” 이 절묘한 대사는 그간 그가 미국인 저격 사건을 수사하고 또 사라진 총기를 수사하면서 했던 행동들이 애신에 대한 마음에서 비롯됐다는 걸 드러낸다. 처음엔 호기심이었지만 ‘방관’했고 ‘수습’하고 있다는 건 그의 마음이 애신에게 기울어지고 있다는 걸 에둘러 말해주는 대목이었다.



애신은 저격 사건이 있던 날 밤거리에서 유진을 만났을 때 그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똑같이 유진에게 말한다. “어느 쪽으로 가시오. 그쪽으로 걸을까 하여.” 그 말은 서로가 가는 방향이 같을 것이라는 ‘동지적 발언’이면서 동시에 두 사람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함께 숲길을 걸으며 유진이 애신에게 문득 묻는다. “그건 왜 하는 거요? 조선을 구하는 거.” 그러자 애신은 대의를 이야기한다. “꼴은 이래도 오백년을 이어져온 나라요. 그 오백년 동안 호란 왜란 많이도 겪었소. 그럴 때마다 누군가는 목숨을 걸고 지켜내지 않았겠소. 그런 조선이 평화롭게 찢어 발겨지고 있소. 처음엔 청이, 다음엔 아라사가, 지금은 일본이, 이제 미국 군대까지 들어왔소. 나라꼴이 이런데 누군가는 싸워야하지 않겠소?”



그런데 그런 대의보다 유진은 애신이 더 궁금하다. “그게 왜 당신이요?”라고 묻는 것. 그러자 애신은 “왜 나면 안되는 거요?”라고 되묻고 “혹시 나를 걱정하는 거면”이라 덧붙인다. 조선을 구한다는 대의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그걸 앞장서서 하는 사람에 대한 마음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유진은 “내 걱정을 하는 거요”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건넨다. 그건 자신의 마음이 애신으로 인해 흔들리고 있다는 걸 걱정하는 것인가 아니면 미국인으로서 돌아온 자신과 조선인인 애신 사이에서 갈등하기 시작한 자신을 걱정하는 것인가. 대의를 향해 같은 방향으로 총을 겨누거나 총을 사이에 두고 있어도 동시에 설렘이 느껴지는 구한말 격변기를 배경으로한 김은숙 작가의 색다른 멜로구도가 절묘하게 다가온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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