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온마’, 독특한 포인트를 지닌 주연배우들의 독보적인 매력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OCN 주말드라마 <라이프 온 마스>는 좋은 드라마의 정석을 보여주는 교본이다. 각 편마다 큰 서사를 잇는 호기심의 연결고리가 있으며 디테일 사이사이 유머가 숨어 있다. 또한 주연부터 조연까지 각각의 캐릭터에 확고한 포인트가 있다. 도저히 재미가 없을 수가 없는 작품이다.

물론 <라온마>가 BBC 원작의 리메이크에 불과하다는 핀잔을 들을지도 모르겠다. 원작 자체가 워낙 걸작으로 유명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라온마>는 지금껏 외국드라마의 현란한 껍질만 따라하던 몇몇의 리메이크작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무엇보다 <라온마>는 외국 드라마를 번역한 작품 특유의 이질감이 없다. 형사 한태주(정경호)가 1988년으로 돌아간 이후의 상황 묘사 덕이 크다. 드라마는 한국의 추억에 맞게 1988년이란 시공간을 공들여 묘사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BBC 드라마의 주인공 샘 테일러가 1973년으로 돌아가 상관 진 허트를 만나는 이야기의 한국판을 보는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1988년 한국으로 돌아간 한태주가 그의 상관 강동철(박성웅)과 함께 펼치는 한국 경찰 이야기를 보는 기분이 든다.



특히 <라온마>의 제작진은 당시 1988년의 한국을 재현하기 위해 공을 들인다. 섬세하게 공들인 미장센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을 휩쓸었던 지강헌 인질극을 비롯해 우리의 기억에 남은 강력사건들을 다시금 되살린다. 뿐만 아니라 당시의 부적절한 조직의 관행이나, 어쩌면 미개했던 형사들의 수사까지 고스란히 보여준다. 물론 너무 무겁지 않게 적절한 유머감각을 가미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라온마>의 주연이라 할 수 있는 정경호, 박성웅, 고아성의 각기 다른 연기 포인트를 보는 것도 이 드라마의 재미 중 하나다. 이 세 배우는 1988년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체험하고, 각기 다른 방식으로 연기한다.

우선 세 배우 중 가장 연장자인 박성웅은 1988년 당시 질풍노도의 10대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연기하는 강동철 형사는 1980년대의 흔한 아저씨를 닮은 구석이 있다. 그것도 형사보다는 학생주임 교사 같은 모습이다. 그는 폼 잡고 거들거리는데, 알고 보면 좀 모자라는 구석도 있고 은근히 인간적인 얼굴을 들킬 때도 있다. 기존의 딱딱한 악역에서 JTBC <맨투맨>, <와이키키 브라더스> 카메오 등을 거치며 코믹한 마초로 이미지 변신을 하던 이 배우는 <라온마>의 강동철을 통해 그 정점을 찍는다. 그리고 이 배우는 특별한 연출 없이도 센 척은 하지만 알고 보면 ‘맹구’과인 강동철을 자연스레 연기한다. 아마도 그가 10대 시절 보아온 아저씨들을 연기 교본으로 삼았을 것이다.



한편 배우 정경호는 1988년에 <라온마>의 꼬마 한태주와 엇비슷한 나이였을 것이다. 선동렬딱지에 열광하고 아버지를 그리워하지만 돈 버느라 바쁜 아버지를 볼 수 없던 그런 아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 1988년의 꼬마들에게는 내면의 공허가 있다. 그들은 아버지 세대처럼 생존이 위협받는 가난을 겪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가장 예민한 10대의 시기에 IMF로 한 나라가 무너지고, 가장이 무너지는 순간을 겪은 세대들이다. 그들은 영원한 행복을 믿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지금의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는 행운이 쥐어지길 애타게 바란다. 그리고 <라온마>의 한태주가 느끼는 감정 또한 불안과 공허다. 정경호는 그 시절 꼬마, 지금은 30대 중반인 청년들이 느끼는 불안과 공허를 생생하게 연기해낸다. 그 때문에 판타지성이 강한 수사물 <라온마>는 정경호의 한태주를 통해 지금 한국의 청년과 맞닿은 감정의 리얼리티를 보여준다.

반면 배우 고아성에게 1988년은 역사와 다름없다. 그 시대의 서울 사람들은 지금의 서울 사람과 다른 말투를 구사하고 있었다. 1988년에 태어나지 않았던 고아성은 책으로 아니 영상으로 1988년을 공부한다. 그리고 1988년의 서울 말투를 지닌 여경 윤나영을 연기한다. 1988년에 존재했던 인물로 자연스레 드라마에 스며드는 고아성의 연기는 놀랍다. 심지어 그녀는 1988년 여경의 말투만이 아니라 그녀가 쉽게 표현하지 못했을 말, 그 뒤에 숨어 있는 한숨까지 훌륭하게 재현해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세 배우가 각기 다른 느낌으로 연기하는 1988년을 통해 잘 만들어진 수사물 <라온마>는 재미있으면서도 독특한 포인트를 지닌 독보적인 매력을 보여주기까지 한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O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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