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할배’ 백일섭의 불편한 몸, 그래서 더 훈훈해진 여행에 대하여

[엔터미디어=정덕현] tvN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에서 백일섭은 몸이 불편하다. 그건 이미 <꽃보다 할배>가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드러났던 사실이다. ‘걷는 일’이 쉽지 않아 복잡한 프랑스 지하철을 무거운 트렁크를 끌며 다니다 너무 힘들어 했던 그 모습이 지금도 역력하다. 그래서 이번 시즌에는 참여하지 못할 것이라 여겨졌지만 수술을 받고 온 백일섭은 조금 불편하고 느려도 함께 할 수 있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가장 먼저 달라진 건, 자신의 몸 상태를 인정하고 다른 동료들을 따라가려고 굳이 무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앞서가는 다른 할배들 맨 뒤에서 천천히 따라가면서도 그는 힘들면 먼저 가라고 하고 자기는 근처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 마시고 가겠다는 여유를 보인다. 자신 때문에 신경 쓰일 수 있는 다른 동료들을 배려하면서도 자기 몸도 챙기기 위함이다.

그래서 백일섭의 동선은 다른 할배들과는 달라지기 일쑤다. 맨 뒤에 오거나, 혹은 중간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박물관 같은 곳이라도 갈라치면 그 앞에 있는 카페에 앉아 기다린다. 걸어서 다녀야 하는 투어도 모두 소화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베를린에서는 자전거 투어를 나영석 PD와 함께 하기도 했다.



체코의 체스키 크룸로프에 가서도 모두가 성을 둘러보는 투어를 하는 와중에 백일섭은 숙소 앞 카페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제작진과 동행하는 의사가 무리하면 안 된다고 얘기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백일섭은 그 숙소 앞 카페에 앉아서도 싱글벙글 즐거운 얼굴이었다. 커피를 마시고 햇볕이 따갑다고 하자 만들어준 그늘 하나만으로도 행복해했다. 옆 테이블에 앉은 이들에게 자신이 사준다며 음료를 주문해주기도 했다.

물론 백일섭의 몸이 불편하다는 사실은 다른 할배들이 신경 쓸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그래서 무거운 가방을 들고 올라가야 하는 계단을 만나면 ‘청년 할배’ 박근형이 당연히 나서서 가방을 옮겨준다. 걸음이 늦어 뒤처지게 되니 ‘막내 할배’ 김용건이 같이 걸으며 말동무를 해준다. 마음을 편하게 해주려는 심산이다. ‘직진 할배’ 이순재도 달라졌다. 항상 앞만 보고 먼저 가던 그가 어느 때부터인가 걸음의 속도를 늦춰 때로는 맨 뒤에서 따라가기도 한다.



이서진은 숙소를 잡는데 있어서 너무 높은 층에 있는 건 아닌지, 또 엘리베이터는 있는지를 살핀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높은 층이라면 오르내리는데 불편할 수밖에 없어서다. 또 숙소를 찾아가는 길이나 가이드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마음이 더 쓰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앞서 가 미리 다음 이동 장소를 체크하고 돌아오는 게 그의 중요한 일이 되었다.

아마도 방송 프로그램을 위해서는 모두가 함께 다니는데 아무런 불편도 없는 그런 상황이 더 나아 보일 수도 있을 게다. 하지만 이번 <꽃보다 할배>에서 나영석 PD는 굳이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같이 해왔던 출연자들이 함께 이번에도 여행을 한다는 그것 자체가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사실 몸이 좀 불편해서 걸음걸이가 느리면 어떤가. 함께 한다는 그 시간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지 않은가.



달리 보면 백일섭의 존재는 이번 시즌의 특별한 정서를 만들어낸 면이 있다. 지금껏 <꽃보다 할배>는 이번 시즌도 마찬가지지만 늘 즐거운 여행을 보여줘 왔지만 그 이면에 있는 어르신들의 ‘나이 듦’에 대한 실감을 드러낸 적은 별로 없었다. 그래서 할배들이지만 여전히 ‘청춘’ 같은 모습으로 시청자들에게 보여진 면이 있다.

하지만 백일섭의 ‘불편한 몸’은 그 나이를 실감하게 해주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자기만의 속도’로 하는 여행을 보여줬다. 또한 각자 속도는 달라도 함께 하는 것 자체가 행복하기 때문에 저마다 서로를 배려해주는 여행을 보여주기도 했다. 백일섭의 존재는 그래서 이번 편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김용건 만큼 ‘신의 한수’였다고 보인다. 앞으로도 더 오래도록 함께 여행할 수 있기를. 비록 좀 몸이 불편하고 걸음걸이가 느리다 하더라도.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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