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판사님께’, 윤시윤 원맨쇼 속 2% 아쉬웠던 건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현실. 지난 국정농단 사건 당시 모두가 절감했던 말이다. 그 어떤 막장드라마의 상상력도 국정농단 주범들의 막장 행각을 따라잡진 못했다. 최근 이 말을 다시 통감하게 만든 사건이 일어났다. 국정농단에 버금가는 사법농단. 드라마를 무색케 할 정도의 충격적인 소식이 연일 쏟아지는 가운데 법조드라마는 어떤 얘기를 할 수 있을까.
SBS 새 수목드라마 <친애하는 판사님께>는 사법농단 이슈에 대한 발 빠른 대응으로 생존을 모색한다. 티저 예고편에서부터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취임사와 그의 재판 거래 의혹 대상으로 떠오른 피해자들의 눈물을 대조시켜 화제를 모았다. 본편도 예고편만큼이나 강렬했을까. [TV삼분지계]의 세 평론가가 수상한 판사의 이상한 법정을 함께 참관해봤다.
◆ 비현실과 현실이 공존하는 드라마
SBS 1인 2역 드라마들. <스위치 - 세상을 바꿔라>와 비슷한 시기의 <착한 마녀전>, 그리고 지난 주 시작된 <친애하는 판사님께>까지, 올 들어 세 번째다. <스위치 - 세상을 바꿔라>는 사기꾼이 검사 노릇을, <착한 마녀전>은 주부가 의식불명인 언니를 대신해 승무원을, 이번 <친애하는 판사님께>는 전과 5범인 동생 한강호(윤시윤)가 실종된 형 한수호를 대신해 판사로 거듭난다는 구성이다. 누군가와 삶이 뒤바뀌는 전개는 동화 <왕자와 거지> 이후 꾸준히 등장해 왔지만 이거야 원. 전과 5범이 판사직을? 잦은 감옥 생활로 실전 지식이 쌓였다 치더라도, 그래도 한 사람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판결을 해야 하거늘.
과한 설정이야 드라마라서 그러려니 넘길 수밖에 없지만 사법연수원생 송소은(이유영)이 겪는 위기만큼은 무심히 지나칠 수 없다. 검사 시보 송소은을 성추행하고 나아가 성폭행까지 시도한 지도 검사 홍정수(허성태)는 법원 안팎에서 실력 있고 나이스하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지위를 앞세워 파렴치한 짓을 저질렀다. 대응하는 모양새를 보아하니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지나치게 세세한 묘사들은 채널을 돌리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우리가 두 눈 크게 뜨고 마주해야 옳은 현실인지라 똑똑히 지켜봤다. 성추행 범죄를 당당히 밝히며 옥신각신하는 사이 송소은은 법관들이 정의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좌절한다. 비현실과 현실이 공존하는 드라마 <친애하는 판사님께>. 송소은의 앞날이 기대되는 동시에 걱정도 된다.
방송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 사법 불신 시대의 풍자 활극
<친애하는 판사님께>는 사법 불신이 정점에 달한 시대에 딱 맞춰 도착했다. 제목부터가 노골적이다. 주인공 한강호(윤시윤)는 판사에게 보낼 반성문을 써야 하는 감방 동료 사마룡(성동일)에게 말한다. ‘존경하는 판사님께’로 시작하는 거짓말 편지 따윈 집어치우라고. ‘친애하는 판사님께’라는 제목은 그렇듯 도저히 존경할 수 없는 이 시대의 사법부를 향한 냉소에서부터 출발한다.
전과5범 출신의 가짜 판사가 누구보다 공명정대한 판결을 내린다는 설정은 또 어떤가. 얼결에 ‘컴퓨터 판사’인 형의 법복을 입게 된 강호가 판사석에서 벌이는 촌극은 스스로를 성역화해온 사법부의 엘리티즘과 권위주의를 조롱하고 깨부수는 퍼포먼스에 가깝다. 강호의 행동에 따라 법정의 모든 사람들이 착석과 기립을 반복하는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대표적이다. 평소라면 법정모독죄로 쫓겨났을 법한 강호의 경박한 행동이 단지 법복을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별다른 저항 없이 받아들여지는 것은 그 옷의 절대적 권위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문제는 강호의 이야기와 함께 드라마의 또 다른 중심축인 소은(이유영)의 서사가 전혀 어우러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소은과 언니 지연(곽선영)이 겪은 성폭력의 고통과 공포는 과도하게 사실적이어서 풍자 활극과도 같은 드라마의 분위기와 섞이지 못하고 겉돈다. 더구나 강호가 황당한 행동을 할 때는 장단을 맞춰주느라 소은 캐릭터가 지닌 무게까지 사라져버린다. 한강호의 원맨쇼로 끝낼 의도가 아니라면, 소은의 서사와 캐릭터에 더 공을 들일 필요가 있다.
칼럼니스트 김선영 herland@naver.com
◆ 장르적 스펙터클로 소비되는 폭력
<친애하는 판사님께>는 여러모로 익숙하다. 엘리트들이 장악한 세상에서 서민이 통쾌한 한판승을 거둔다는 플롯이나, 법정을 무대로 ‘사이다’를 추구하는 사법 드라마라는 장르는 지난 몇 년간 제법 자주 보았다. 얼결에 굉장히 유능하고 정의로운 결과를 내는 껄렁한 남자 주인공 또한 천성일 작가의 서명 같은 존재다. 하지만 무엇보다 익숙한 건 원활한 줄거리 진행을 위해 폭력을 여과 없이 화면 위에 재현해 보이는 무심함이다.
한강호/한수호 쌍둥이 형제(윤시윤)와 함께 <친애하는 판사님께>의 서사를 이끄는 양대 축은 사법연수원생 송소은(이유영)이다. 소은은 정의를 구현하기엔 법조인보단 차라리 킬러가 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고민할 만큼 많은 폭력을 목격하고 산 인물이다. 그리고 <친애하는 판사님께>는 그런 소은을 이해시키기 위해, 그가 보거나 당한 폭력을 거의 여과 없이 고스란히 화면 위에서 재현한다. 검사시보 시절 홍정수 검사(허성태)에게 성희롱과 강간미수를 당하는 장면은, 맥락만 설명하고 끝나는 수준이 아니라 불쾌할 만큼 자세하게 재현되어 있다. 안하무인 재벌3세 이호성(윤나무)이 주변에 폭력을 흩뿌리는 장면들 또한 마찬가지다. 보는 이들의 공분을 자아내기 위한 장치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호성의 무례와 폭력은 불필요한 수준으로 상세하게 묘사된다.
아무리 시청자들과의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 해도, 일정 수준을 넘어선 폭력의 묘사는 작품이 폭력 그 자체를 스펙터클한 볼거리로 소비하고 있다는 심증을 짙게 만든다. <친애하는 판사님께>는 극 중에서 그러한 폭력이 있었다는 사실만 알려주고 넘어가는 게 아니라, 홍 검사가 소은을 만지는 장면을 클로즈업으로 담고 이호성이 저지르는 폭력에 피해자가 굴욕감을 느끼는 장면을 굳이 보여준다. 시청자를 설득하는 가장 게으른 방식이 아닐 수 없는데, 이러한 장면들은 비슷한 폭력을 경험한 이들에게는 트라우마를 다시 일깨운다는 점에서 유해하기도 하다. 이런 사회고발/사법 드라마들이 몇 작품 없던 시절에는 이런 묘사도 현상을 고발한다는 의의 때문에 양해되고 지나갔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미 비슷한 장르를 앞세운 작품들이 포화상태인 현 시점에선, <친애하는 판사님께>의 폭력묘사는 낡고 게으르게 보인다.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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