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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 김은숙 특유의 깨방정과 비장한 시대극의 잘못된 만남
기사입력 :[ 2018-08-03 16:03 ]


‘미션’의 로맨스, 예쁘게 그려진들 마냥 사랑스럽지는 않은 이유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토요일과 일요일의 드라마 패권은 공중파가 케이블에 빼앗긴 게 확실해 보인다. 시청률을 떠나 tvN <미스터 션샤인>이나 OCN <라이프 온 마스>가 재미 면에서 공중파 드라마보다 훨씬 더 빼어나기 때문이다.

허나 두 작품을 보는 즐거움의 깊이는 좀 다르다. <라온마>는 BBC 원작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한국적인 양념이 적절하게 배인 수사물이다. 이 드라마는 원작의 구조가 지닌 매력을 살리는 것과 동시에 1988년의 한국사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또한 순간순간 재치를 구사하면서도 미스터리 서사의 간장감도 놓치지 않는다. 판타지와 시대극과 수사물이 결합한 옹골찬 작품인 것이다.

한편 김은숙 작가의 <미스터 션샤인>은 아직까지는 대작에 어울리는 그릇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물론 시시하고 빤한 드라마들 사이에서 <미스터 션샤인>은 화려한 스펙터클을 감상하거나 대사의 묘미를 즐기는 맛이 있는 작품이다. 특히 이 작가가 남녀를 넘어 인물들 사이에 아기자기한 감정을 엮어 바느질하는 능력은 감탄이 나올 정도다. 하지만 <미스터 션샤인>의 매력은 딱 거기까지다.



전작 <도깨비>에서 김은숙 작가는 ‘도깨비’라는 신화 속 주인공을 현실감 있는 로맨스의 주인공으로 변신시키는 데 완벽하게 성공했다. 기본적으로 로맨스와 판타지는 궁합이 잘 맞는다. 둘 다 환상을 기반으로 한 관계의 시뮬레이션이기 때문이다. 허나 로맨스와 시대극의 궁합은 좀 더 고민이 필요하다.

로맨스의 향기와 시대극의 냄새는 다르다. 로맨스가 플로럴 계열의 가벼운 향이라면, 시대극의 냄새는 무거운 우디향에 가깝다. 더구나 그 시대가 멜로가 아닌 역사적 의식을 요구하는 시대라면 더더욱 이야기의 향은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당연히 그 안에서 엮어질 로맨스는 좀 더 무게감과 비장함이 필요하다. 김은숙 작가 특유의 ‘깨방정’과는 처음부터 그리 잘 어우러지는 조합은 아닌 것이다.

물론 <미스터 션샤인>은 구한말의 조선을 빼어난 비주얼로 재창조하는 능력만은 탁월하다. 전통과 현대가 미묘하게 가로지르는 그 시대 사대문의 풍경을 이처럼 아름답고 스펙터클하게 보여주는 드라마는 흔치 않다. 이 아름다운 세트 위에 얹힌 이야기 역시 그렇게 새롭지는 않지만 당연히 품고 가야할 서사이다. 사실 1990년대 영화 <장군의 아들>에서부터 드라마 <야인시대>, <경성스캔들> 최근작 <암살>에 이르기까지 이 시대의 영웅담은 계속해서 변주되어 왔다. 더구나 빼앗긴 나라를 되찾으려 목숨까지 내던지는 청춘의 이야기는 한국인의 가슴을 뜨겁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미스터 션샤인>은 여기에 혼란한 시대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비극적 서사를 얹는다. 노비의 자식으로 태어나 부모가 맞아죽는 모습을 보며 조선을 탈출했던 유진 초이(이병헌)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총기를 든 애기씨 고애신(김태리)이나 호텔 글로리 사장 쿠도 히나(김민정) 모두 휩쓸리는 시대의 변화 속에 각자의 인생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이처럼 <미스터 션샤인>이 품고 있는 구도는 나름 멋있다. 허나 이 거대하고 멋진 그림이 결국 예쁜 병풍에 불과하구나 싶을 때 드라마는 힘이 빠진다. 그리고 언제나 그녀의 드라마가 그렇듯 인물들은 예쁜 병풍 앞에서 로맨스를 위해 움직인다.

안타깝게도 도깨비 나라나 가상의 파견국 우르크는 그 자체가 모두 판타지라서 그 배경이 예쁜 병풍인들 그렇게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생생한 아픔의 역사로 남아 있는 시대가 예쁜 병풍으로 전락하고 그 안에서 ‘러브’하는 이야기는 어딘지 모르게 불편하다. 로맨스가 가능한 시대지만, 그 로맨스가 예쁘게 그려진들 마냥 사랑스럽지는 않은 것이다.



로맨스를 위해 가공된 명장면들 역시 <태양의 후예>처럼 닭살 돋는 즐거움을 주거나 <도깨비>처럼 아련한 아픔을 남기지도 않는다. 유진 초이와 고애신이 서로의 손으로 입을 가리고 ‘읍읍’하며 얼굴을 확인하는 장면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아마도 극 초반 은근히 무거운 시대극의 밑밥에서 재빠르게 로맨스로 넘어가기 위해 들어간 장면이 아닐까 싶다. 허나 다소 이른 시기에 다소 뜬금없는 포즈로 들어간 이 장면은 ‘파리바게트’의 기대만큼 달달하지는 않다. 왕관을 쓰려는 자는 무게를 견뎌야하지만, <미스터 션샤인>은 그 대신 멋진 왕관을 설계한 후 자꾸만 그 왕관을 가볍게 만드느라 수를 쓴다. 그렇다 보니 화려한 시대극의 풍경과 익숙한 로맨스의 풍경이 한 작품 안에서 자꾸만 서로를 밀어내고 있는 것이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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