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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임계점 넘지 못한 ‘판결의 온도’, 뭐가 문제였을까
기사입력 :[ 2018-08-10 15:00 ]


‘판결의 온도’ 이 정도 용감했으면 더 선정적으로 가도 괜찮을 뻔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국내 최초의 본격 사법 시사 토크쇼 <판결의 온도>가 오늘(10일) 8회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 지난 3월 파일럿을 방영하고 유의미한 반응을 얻었으나 예능 황금시간대인 금요일 밤에 편성되면서 어려움을 겪은 결과다. 최근 방송된 프로그램 중 가장 시의성이 높은 기획으로 용감한 시도를 했지만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는 점이 안타깝다. 일상의 상식상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판사들의 판단에 대한 딴죽은 물론, 판결문의 법리적 논리의 해석과 법조 지식 전달을 통해 국민정서법과 법리 사이의 온도차를 좁히겠다는 웅대한 포부만큼 열기를 끌어올리진 못했다.

사실 삼권분립의 민주공화국에서 사법부의 판단에 갸우뚱하며 제4심을 주최한다는 건 사법부에서도 성가신 일이고 방송사로서도 부담이 될 수 있는 기획이다. 아무리 서장훈, 송은이 등을 내세워 예능의 당의정을 입히더라도 요즘 나오는 사법 농단 관련 뉴스를 보면 볼수록 지금은 나란히 감옥에 들어간 이명박·박근혜 정권 하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은 분명하다. 요즘은 이목이 쏠리는 정치 사건이나 재벌이 연관된 대형 사건의 경우 구속영장실질심사부터 판사의 이름과 신상, 성향 관련 키워드가 ‘실검’에 오르내리는 시대다. 지난 삼성 이재용 회장의 재판 이후 비판이 거세지자 판사가 보수 언론을 통해 국민 정서법에 어긋나는 판결을 내린 이유에 대해 자기반론을 하기도 했다.



다시 말해 <판결의 온도>는 국민의 힘으로 탄핵과 정권 교체를 이뤄낸 시대의 풍경과 보조를 맞춘 기획으로,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타고 그간 방송이 감히 넘보지 못했던 또 하나의 금기를 넘어선 한 걸음이었다. 제2화에서 다룬 진경준 사건이 무죄로 끝난 이유를 두고 검·판사 등 고위 법조인들의 선민사상과 관행에 대해 꼬집고, 가해자의 주장만 그대로 수용했을 것으로 유추되는 데이트 폭력 사망 사건의 판결문에 대해서는 이렇게 내용 없이 쓸 수 있는지, (재판부가) 그만큼도 생각을 안 했다는 것인지에 대해 큰 아쉬움을 드러내며 법을 다루는 높으신 분들이 일반적인 상식과 멀어져 가는 공감 능력의 부재를 부각한다. 디지털 성범죄 관련한 판결에서는 기술의 발전과 일상의 변화상을 따라오지 못하고 지엽적인 법조문에만 천착하는 판사들의 무지와 관행에서 비롯된 판결에 대한 비판과 문제제기를 한다.

판결문을 되짚어보는 과정을 통해서 과연 왜 이런 판결이 나왔을까에 대한 속 시원한 설명까진 아니더라도 추정되는 논리를 알아보고, 언급할 수 있는 비판의 장이 마련된 점만으로도 어느 정도 감정적 해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또한 승소율이 1%도 안 되는 의료사고 문제 등 비대칭적인 관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과 성폭력, 데이트 폭력, 가정 폭력으로부터 보호받는 방법, ‘판결의 경계’ 코너를 통해서 알쏭달쏭한 법조 지식의 습득 등 일상에서 멀고 어렵게만 느껴진 법을 피부에 와 닿게 배우는 일종의 <위기탈출 넘버원> 사법 편과 같은 정보 제공의 역할도 충실히 하려는 노력이 보였다.



하지만 파일럿에서 선보였던 배틀 형식의 시사토론 형식에서 공익 교육 쪽으로 가닥을 잡은 일보 후퇴가 아쉽다. 논쟁과 이슈, 사회적 의제보다 교양을 중시한 부분은 필요한 일이긴 하지만 콘텐츠 재미 차원에서 장벽이 있을 수밖에 없는 선택이다. 용감했지만 선정적이지 못한 점은 한계다. 한때 소송가액이 170억 원에 달한 경험을 바탕으로 『주진우의 사법 활극』까지 펴낸 주진우 기자가 빈틈마다 ‘삼성 앞에서 법이 삐뚤어졌다’거나 이명박·박근혜 시절 법조계의 기울어진 잣대와 권력과 기득권에 귀의하는 사법부의 습성에 대해 이야기를 하긴 하지만 <썰전>처럼 당면한 이슈를 놓고, 입장 차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토론의 장이 아니다보니 산발적인 총성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시사토크쇼가 흥할 수 있었던 것은 첫째 현재진행형인 이슈를 저잣거리의 정치 수다처럼 대놓고 펼쳤다는 점이고, 둘째는 해설 속에 나아가야 할 방향과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이 보수 프레임의 시사 콘텐츠가 잘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사토크쇼가 산지직송 생물을 다룬다면, 각기 개별적인 사건의 판결을 다루는 <판결의 온도>는 냉동육 매장이랄까. <판결의 온도>도 우리 시대에 필요한 판결을 가져오지만 현재 진행 중인 이슈를 다루지 못하고, 거기서 발화할 첨예한 대립과 의견과 희망 설계가 어려웠다는 점에서, 시사토크쇼와 달리 신선함과 뜨거움을 선보이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시사 예능은 논쟁적이고 현재진행형으로 사회문제에 끼어들고, 발언을 해야 한다. <판결의 온도>도 마찬가지 스탠스였지만 정보쇼에 가까운 교양과 매회 파편화된 에피소드를 다루다보니 큰 틀의 스토리라인을 만들지 못했다. 따라서 강력한 비판보다는 국민의 법 감정을 달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신랄하게 각을 세웠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최근, 완벽한 독립기관으로 법과 정의와 양심에 따라 최선을 다할 것으로 기대한 사법부가 최고위직부터 전혀 그런 조직이 아니었음을 알려주는 강력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안 그래도 OECD 국가 중 사법부 신뢰도는 최하위 그룹에 속했다. 사법부의 위기라기보다 대한민국에 사는 국민의 위기라 할 수 있다. 예전처럼 ‘법대로 했다’ ‘너희들이 몰라서 그렇지 법은 법이다’ 라며 법을 앞세운 고압적인 태도로 목줄을 죄고, 어려운 말로 가득한 판결문으로 권위만 노릴 순 없는 세상이다. 따라서 판결에 토를 다는 건 법치국가에서 경을 칠 일라고 배웠긴 하나, 사법부에 대해 각 잡고 지켜볼 필요가 그 어느 때보다 커진 시점이다. 시청자들의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킬만한, 색다른 주제를 다루는 프로그램으로써 의의가 있었다.

첫술에 배부를 순 없다. 기존의 시사토크쇼보다 훨씬 까다롭고, 제약이 많지만 분명히 필요한 논의였고, 시대정신이 담긴 콘텐츠였다. 방송의 다양성 차원에서도 기왕 금기를 넘어선 마당에 조금 더 긴장감 있고, 약자의 편에서 펀치를 날려줄 만한, 들끓는 법 감정을 분출하고 토의할 수 있는 장이 계속해 마련되길 소망해본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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