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의 1인2역 윤시윤, 신분상승 아닌 서민 대변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도대체 1인2역 드라마들이 왜 이렇게 쏟아져 나오는 걸까. 올 한 해만 두고 봐도 1인2역 드라마는 넘쳐난다. 종영한 KBS <우리가 만난 기적>은 빙의라는 설정을 통해 연기본좌 김명민의 1인2역을 펼쳐보였고, SBS <기름진 멜로>에는 이미숙이 몰락한 재벌가 사모님과 길거리에서 껌을 파는 아줌마 역할을 동시에 수행했다. 역시 종영한 KBS <너도 인간이니?>는 인간과 똑같이 생긴 로봇이 등장함으로써 서강준의 1인2역을 볼 수 있었고, 지금 방영되고 있는 SBS 수목드라마 <친애하는 판사님께>는 쌍둥이 형제인 판사와 전과5범의 1인2역을 윤시윤이 선보이고 있다.

이 정도면 1인2역 드라마가 그저 우연적으로 많아진 것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거기에는 1인2역이 갖는 독특한 우리 사회의 판타지가 어른거리기 때문이다. 1인2역은 그 유명한 <왕자와 거지> 이야기에서 알다시피 인간의 근원적인 ‘변신 욕망’을 담고 있기 마련이다. 어쩔 수 없이 태어난 대로 하나의 인생을 살아야 하는 게 우리의 운명이기 때문에 판타지를 통해서라도 다른 인생을 살고픈 그 욕망을 풀어내는 것.

우리네 드라마에서 1인2역은 그래서 한 때 신분상승의 판타지를 담는 경우가 많았다. 2015년 방영됐던 <가면>이 대표적이다. 백화점 판매원이었던 변지숙(수애)이 그의 도플갱어인 서은하(수애)가 사고를 당해 회복 가망이 사라지자 그를 대신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1인2역을 통한 ‘가면의 삶’을 담으려 한 것이지만 그 이면에는 신분상승에 대한 욕망이 어른거린다.



물론 1인2역은 그 상반된 성격이 드러내는 재미 자체를 추구하는 면도 무시할 수 없다. 지난해 방영됐던 MBC <투깝스>는 뺀질이 사기꾼의 영혼이 강력계 형사의 몸으로 빙의되어 생겨나는 코믹하고 달달한 상황으로 시선을 잡아끌었다. 조정석의 1인2역이 빛난 작품이었다. 또 2015년 방영된 <오 나의 귀신님>에서는 박보영이 내성적이고 소심하다가 빙의가 되면 과감하게 달려드는(?) 모습으로 코믹한 상황들을 연출했다.

그래도 보통의 경우 1인2역은 누군가의 역할을 대신하는 존재가 그 역할이 가진 높은 지위나 부에 대한 판타지를 드러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 등장한 1인2역 드라마들을 보면 그 양상이 정반대라는 걸 알 수 있다. <우리가 만난 기적> 같은 작품을 보면 중국집을 운영하던 송영철(고창석)의 영혼이 잘 나가는 은행지점장 송현철(김명민)의 몸으로 들어가 예쁜 아내와 부유한 집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되었지만, 결국 자신의 자리인 조연화(라미란)의 남편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결국 조금은 가난한 서민의 삶이지만 그 삶이 가진 가치를 오히려 추구하고 있었다는 것.



<친애하는 판사님께>는 그런 서민의 관점을 대변하는 1인2역을 가장 잘 보여주는 드라마다. 늘 수재였던 형과는 달리 사고뭉치이자 전과 5범인 동생이 판사인 형의 자리를 대신 앉게 되면서 판사 역할을 하게 되는 이야기. 주로 가진 자들을 위해 법이 존재한다는 현실을 뒤집어, 차츰 없는 자들의 입장을 대변하게 되는 판사의 이야기가 오히려 판타지를 제공한다. 현실이 외면한 억울한 서민들의 목소리를 1인2역 설정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1인2역 설정은 조금 식상한 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너무 많이 등장하고 그 지향하는 판타지가 너무 명백하기 때문에 뻔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 설정이 주는 강력한 판타지 역시 부정할 수 없다. 다만 1인2역을 통해 신분상승을 꿈꾸던 서민들이 이제는 지금의 자리에 머물며 그 삶을 대변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점은 의미심장한 지점이다. 그 이야기는 결국 신분상승 자체가 실현불가능한 판타지라는 걸 현실에서 실감한 대중들이 저편이 아닌 이편의 삶을 대변하고 긍정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는 걸 뜻하기 때문이 아닐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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