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스페셜 – 주문을 잊은 음식점’, 치매에 대한 유쾌한 고민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KBS 스페셜 - 주문을 잊은 음식점>]은 경증 치매인들의 사회생활 도전기를 유쾌하게 담아낸 2부작 다큐멘터리다. 서울시내 치매안심센터를 통해 대대적으로 모집한 출연자들이 마포구의 한 프로젝트 식당에서 서빙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연복 셰프가 주방을 지휘하고 방송인 송은이가 점장을 맡았지만, 주인공은 철저히 5명의 치매인들이다.

방송은 일찍이 초고령사회로 진입해 치매인을 위한 다양한 사회정책을 실행 중인 일본의 한 프로그램에서 영감을 받았다. 한국판 번안인 셈이지만, 치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부족한 국내에서는 더없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지금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이야기이자, 그만큼 더 많은 이에게 권하고 싶은 방송이다. 이번 주 [TV삼분지계]가 이 프로그램을 주목한 이유다.



◆ 공들인 프로그램이기에 공감의 깊이도 다르다

공과 품이 많이 든 프로그램이다. 기획부터 섭외, 진행에 이르기까지 치매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우선이기에 공감의 깊이 또한 남다를 수밖에 없다. 흔히 보는 진행자나 패널의 이름값으로 대충 꾸린 프로그램이 아니란 얘기다. 경증 치매인들이 주인공이니 대본에 따라 움직여줄 리 없고 설정 또한 있을 수 없지 않은가. 모든 변수에 대한 예상과 대비 과정이 따랐을 게다. 직접 전단지를 들고 음식점 홍보에 나선 어르신들이 망원시장 상인들과 소통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인지장애를 앓고 있어 주문과 다른 음식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농담 반 진담 반 어르신 말씀에 그냥 맛있게 먹으면 된다며 활짝 웃어주신 분을 비롯해 모두들 반기는 분위기. 하기야 이제 치매는 남의 일이 아니니까.



“숭으로 생각하면 안 돼.” 치매 7년 차 이춘봉 님 말씀에 무릎을 쳤다. “공부 열심히 하고 자기가 노력하면 진행 속도가 늦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나는.” 막내 김미자 님 말씀이 정답이지 싶다. 그런가 하면 한 손님은 이런 소감을 남겼다. “병원에만 가고 집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감기를 얘기하듯 치매에 걸렸다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치매와 친해지고 싶었다는 맞춤 점장 송은이 씨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됐다고 했다. 프로그램 곳곳에서 어르신들이 어떻게 비춰질지, 어르신들의 심정은 어떨지, 고민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내게도 치매에 한 발짝을 디딘 주변 어르신들에 대한 자세를 바꾸는 계기가 됐다. 치매인을 긍정적으로 다룬 첫 프로그램 [KBS 스페셜 - 주문을 잊은 음식점]. 이 정성이 담긴 작은 물꼬로 세상의 흐름이 바뀌길 기대해본다.

방송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 시선이 바뀌면 사회가 바뀐다

“치매에 대해 기분 좋게 다뤄준 TV (프로그램) 본 적 있으세요?” 사전 회의에서 제작진이 출연자들에게 묻는다. 치매 5년 차인 76세 김미자 씨가 답한다. “우리 같은 (경증인) 사람도 있는데 꼭 중증 환자, 휠체어 타고 다 죽어가는 사람, 이런 사람만 방송하니까 짜증 나죠. 우리처럼 공부 열심히 하고 노력을 하면 진행속도도 늦출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뛰어난 이야기는 대개 고정관념을 깨는 새로운 질문을 통해 만들어진다. 국내에서 치매를 유쾌하고 긍정적인 시선으로 다룬 최초의 방송 프로그램 [KBS 스페셜 - 주문을 잊은 음식점](이하 <음식점>)도 바로 이런 좋은 질문과 대답에서부터 출발했다.

실제로 국내 미디어가 치매를 묘사하는 방식들을 떠올려보자. 현재 가장 핫하다는 드라마 tvN <아는 와이프>에서는 주인공 서우진(한지민)의 모친이 치매 환자로 그려진다. 모친은 ‘귀여운 치매’ 환자로 불리며 우진의 살아갈 힘으로도 묘사되지만, 대부분은 끊임없이 사고를 치며 우진을 곤란한 상황으로 몰아간다. 시청률 1위 드라마인 KBS 주말극 <같이 살래요>에서도 행복한 황혼기를 꿈꾸던 미연(장미희)이 치매 증상을 발견하고 극 전체에 비극적 위기감이 감돌았다. 김미자 씨 말처럼 미디어가 그려온 치매는 늘 불행이고 우울이고 절망이었다. 이는 치매인을 향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부정 일변도인 데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이런 맥락에서 밝고 긍정적인 시선으로 치매에 접근한 <음식점>은 단순히 새로운 관점을 넘어 국내 미디어의 안일함에 대해서도 반성하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출연자 한명 한명을 소개하는 화면으로 시작하는 오프닝부터가 프로그램의 주제의식을 잘 보여준다. 치매 7년 차인 83세 이춘봉 씨부터 김미자 씨까지, 이들 모두는 불행하고 수동적인 환자가 아니라 독립적인 인격체이자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 등장한다. “그저 같은 치매 노인이 아닌 각자 이름과 개성을 가진 당당한 한 사람”들이라는 내레이션을 통해서도 이러한 시선이 또 한 번 강조된다. 왜곡된 시선만 바뀌어도 어떤 이들의 삶이 바뀌고 사회가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이 프로그램이 말해준다. 하루만 더 했으면 좋겠다던 이춘봉 씨 말처럼 2부작은 너무 아쉽다. 또 보고 싶고 더 오래 보고 싶은 프로그램이다.

칼럼니스트 김선영 herland@naver.com



◆ 우리 사회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유쾌한 고민

[KBS 스페셜 – 주문을 잊은 음식점](이하 <음식점>)은 경증치매를 앓고 있는 어르신 다섯 분이 음식점에서 주문을 받고 서빙을 하는 일에 도전하는 과정을 그린 2부작 다큐멘터리다. 일본 NHK가 선보인 <오더 미스테이크> 프로젝트의 한국판 격인 <음식점>은, 치매라는 말만 들어도 덜컥 겁부터 먹는 세간의 편견을 유쾌하게 뛰어넘는다. 치매를 앓는다고 해서 사회와 격리된 치료센터 생활을 하는 게 안전하다고 생각할 게 아니고, 경증치매의 경우 오히려 복잡하지 않은 단순 노동을 하며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게 치매의 진행속도를 늦출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치매환자들과 일을 한다는 생각에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온 이연복 셰프와 송은이는, 예상 외로 밝고 긍정적이며 농담도 능하고 실수도 적은 어르신들을 보며 놀란다.



한국사회가 치매환자를 대해 온 태도를 생각하면, 두 사람이 놀라는 것도 당연하다. 불과 십 수년 전까지 한국사회에서 치매환자를 돌보는 건 환자의 가족들만이 온전히 전담해야 하는 일이었고, 요양병원들과 데이케어센터들이 생겨난 후에는 병원 직원들과 봉사자들이 전담해야 할 업무로 여겨졌다. 우리 사회가 치매환자들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며, 이들과 조화롭게 어우러져 사는 연습은 사회 구성원 전원의 몫으로 주어진 숙제라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한국사회 전체가 치매환자를 눈에 안 보이는 곳으로 치우기에 바빴기에, 경증치매 환자들이 정확하게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 주어진 일을 해내는 모습을 접하면 놀라게 되는 것이다.

이틀 간의 도전을 마치고 소감을 묻는 제작진에게 정광호 어르신은 웃으며 답했다. “글쎄, ‘잊어버릴 거다’ 라고는 생각 안 해요. 잊어버리면 할 수 없지만. 그렇게 하고 살아요.” 잊게 되면 어쩔 수 없지만, 그것을 미리 걱정하느라 근심할 생각은 없는 이 어르신들은 누구보다 의연하고 긍정적인 태도로 치매와 맞선다. 치매 인구 100만 시대의 한국 사회는 과연 치매인구와 함께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을까. 송은이는 “치매 어르신을 단순히 걱정 어린 눈빛으로 보진 않을 것 같다. 그거보다 조금 더 나아가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 고민을 우리 사회 모두의 몫으로 나눠 지기 위해서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다시보기로 <음식점>을 보았으면 좋겠다.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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