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판사’의 동력은 적폐와 현실 환기 사건에서 나오지만

[엔터미디어=정덕현] 멜로가 없으면 편성이 안 된다던 드라마들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미생> 같은 드라마는 지상파를 버리고 케이블에서 방영됨으로서 오히려 호평을 얻었다. 이런 결과는 장르물에 굳이 멜로가 없어도 된다는 걸 보여준 사례지만 우리네 드라마들은 어찌된 일인지 멜로가 빠지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여기는 면들이 있다. SBS 수목드라마 <친애하는 판사님께> 역시 안타깝지만 그 멜로의 클리셰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형 대신 판사가 되어 법정에 서게 된 한강호(윤시윤)는 이 드라마가 가진 가장 극적인 선택이다. 법이 가난하고 억울한 이들의 사연을 들어주지 않는 시대, <친애하는 판사님께>는 그 제목에 담긴 것처럼 이들이 보는 탄원서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정해진 법은 어쩔 수 없다는 한계를 드러내며 가진 자들이 판사, 검사, 변호사까지 모두 매수해 제 멋대로 법을 휘두르는 현실 속에서 가짜 판사 한강호라는 존재는 이 ‘악의 카르텔’을 깨는 시스템 바깥의 인물로 등장한다.

그래서 <친애하는 판사님께>의 동력은 두 가지에서 나온다. 하나는 판사가 맡게 된 사건 케이스가 부와 권력을 거머쥔 자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그 적폐세력들로부터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사회면에서 아주 작은 기사로 슬쩍 지나치곤 했던 서민들의 사건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그 공감대로부터이다. 재벌3세 이호성(윤나무)과 비리검사 홍정수(허성태) 그리고 그들과 결탁해 있는 변호사 오상철(박병은)은 그 대표적인 적폐세력들이다. 이들이 무구한 서민들에게 자행하는 폭력들은 시청자들이 공분하며 드라마를 보게 만드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적폐세력들에 의해 당하는 서민들의 아픈 이야기는 동시에 시청자들을 공감하게 한다. 이호성에게 두드려 맞고도 생계를 걱정해 사건을 덮으려 하는 피해자의 아들 이야기나, 술과 약에 취해 운전을 한 박해나(박지현)가 몬 차에 치여 사망한 임산부의 남편이 보이는 가슴 아픈 이야기, 시각장애인 초원이(이영은)가 자신의 차별을 막기 위해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나서는 엄마와 갈등하다 결국 화해하는 이야기 같은 게 그렇다. 이들의 이야기는 마치 우리들의 이야기처럼 우리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하지만 <친애하는 판사님께>도 역시 우리네 드라마의 ‘전가의 보도’가 되어버린 ‘멜로 코드’를 벗어나지 못한다. 가짜 판사가 된 한강호가 판사 시보로 들어온 송소은(이유영)과 처음에는 사건을 통해 알아가다 점점 멜로적 관계로 바뀌어가는 과정이 그렇다. 거기에는 송소은의 남자친구였던 오상철(박병은)과 엮어지는 삼각멜로의 틀 역시 들어있다.



사실 이해할 수 없는 건 과거 오상철의 친구들에 의해 언니가 성폭행까지 당하고 잠적해버렸지만 여전히 송소은이 오상철과 만남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송소은은 오상철과 결별을 선언하지만, 이건 어찌 보면 한강호와 송소은 그리고 오상철의 삼각멜로의 틀이 깨지면서 한강호와 송소은이 멜로관계로 이어지고 오상철이 정적으로 역변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기 위한 애초의 설정처럼 보인다.

그런데 과연 이런 멜로가 이 드라마에 도움이 될까 싶다. 과거의 시청자들이라면 멜로 없는 드라마를 단팥 없는 찐빵처럼 여겼을지 모르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본 드라마가 하려는 법 정의에 있어서의 적폐청산과 서민들의 현실이라는 그 이야기를 멜로가 지지부진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느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판사와 시보라는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정의의 실현이라는 그 과정 속에서 인간적인 공감대를 얻는 정도로 한강호와 송소은의 관계가 유지될 수는 없는 것일까. 이제 지나친 멜로 설정은 득보다 실이 더 많아졌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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