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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자’, 이성민도 극복하지 못한 ‘아저씨 스릴러’의 한계
기사입력 :[ 2018-08-24 15:10 ]


‘목격자’, 이성민이 진짜로 가족의 안전을 걱정했다면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최근 충무로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장르가 하나 있으니, 그건 중년 남자가 주인공인 스릴러이다. 난 보통 아저씨 스릴러라고 부르는데, 유행한 지 10년 정도 됐다. <리턴>, <파괴된 사나이>, <숨바꼭질>, <악의 연대기>, <더 폰>, <하루> 같은 영화들이 이에 속한다. 지금까지 김명민과 손현주가 이 장르의 터줏대감이었는데 얼마 전에 <목격자>가 개봉되면서 이성민이 추가됐다.

공통점과 규칙을 찾아보자. 주인공은 중산층이나 그보다 조금 위에 있는 중년남자다. 대부분 결혼했고 아이도 있는데 십중팔구 딸이다. (한국 영화에서 주인공의 아이로 나오는 애들은 대부분 여자애들이다. 이들의 머릿수는 자기 의지를 행사할 나이가 되면 급속도로 줄어든다.) 이 남자들은 대부분 영화 초반에 아주 난처한 상황에 말려드는데, 경찰에 연락할 수 없는 상황일 수도 있고 (초자연현상이 개입되는 경우가 그렇다) 당연히 경찰에 도움을 청해야 하는데, 그냥 안 그러는 경우도 있다. 클라이맥스에 이를 때까지 상황은 점점 나빠지지만 주인공은 끝에 가서는 어떻게 사태를 해결한다. 단지 여전히 경찰에 연락하는 게 좋았을 거라는 생각은 없어지지 않는다. 주인공의 멍청한 행동 때문에 주변 사람들의 손해가 막심한 것이다.



이들 중 좋은 영화는 없다. 그럭저럭 보통이거나 대부분 그보다 나쁘다. 그렇다고 영화가 꾸준히 만들어지는 걸 탓할 수도 없는 게, 질과는 상관없이 이런 영화들은 대부분 흥행성적이 괜찮았다. 큰 모험을 하지 않고 본전을 찾을 수 있는 영화들이다. 여기서 큰 모험을 하지 않는다는 건 깊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목격자> 이야기를 해보자. 영화는 아저씨 스릴러의 틀에 두 개의 재료를 얹고 있다. 하나는 키니 제노비스 사건과 연결된 ‘방관자 효과’ 다른 하나는 대한민국 중산층 특유의 아파트 이기주의이다. 이를 통해 주인공의 스토리가 만들어진다. 막 새 아파트를 장만한 중년의 남자 주인공은 (아니나 다를까, 딸이 하나 있다) 아파트에서 살인현장을 목격하고 살인범과 눈이 마주친다. 그가 입이라도 뻥끗한다면 가족에게 무슨 일을 저지를지도 모른다. 그러는 동안 주변 주민들은 아파트값이 떨어질까봐 걱정이다.

해볼만한 이야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만들어진 결과물은 그렇지 않다. 일단 재료에 대한 고민이 얇다. 일단 ‘방관자 효과’ 자체가 과장되었다. 이 효과 자체가 키티 제노비스 사건에 대한 뉴욕 타임스의 오보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아는 바와는 달리 실제로 사건을 목격한 사람은 극소수였고 최소한 두 명의 이웃은 경찰에 신고를 했으며 한 명은 직접 내려와 키티 제노비스가 숨질 때까지 안고 있었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 기사를 참고하시길.(https://news.v.daum.net/v/20160630165604484)



<목격자>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방관자 효과’를 설정의 어색함과 주인공의 이상한 행동에 대한 알리바이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연쇄살인마가 아파트 촌에서 살인을 저질렀는데 CCTV에 전혀 걸리지 않았다는 것은 믿기기 어렵지만 그럴 수 있다고 치자. 살인마와 눈이 마주친 주인공이 겁에 질려 신고를 안 한 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니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설정의 설득력은 점점 사라져버린다.

일단 살인마가 지나치게 무적이다. 처음 보는 아파트에 침입해 개를 훔쳐갈 정도의 기술은 경험으로 익혔다고 치자. 하지만 그 사람이 대낮에 아파트 안에서 시체를 빼돌리는 능력까지 가졌다고 우길 수는 없지 않을까? 여기서부터는 어쩌다가 CCTV에 안 걸렸다는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살인마는 주인공을 협박하기 위해 온갖 짓을 다 하는데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았을 때 그건 오히려 알아서 단서를 만들어주는 일이다. 주인공의 사고방식이 정상이라면 경찰에 알리고 보호를 요청하는 게 당연한 순서이다. 미치광이 살인마가 잠궈놓은 자기 집으로 들어올 수 있다면 다른 길이 없다. 범인을 잡는 게 먼저다. 그런데도 안 하는 건 작가들이 무적의 살인마를 주인공 행동 알리바이로 삼았는데 그 알리바이도 구멍투성이라는 것이다. 결국 행동 논리, 주제는 대부분 날아가 버리고 남은 건 사이코패스 살인마에 대한 영화 만드는 사람들의 선망뿐이다.



영화 주인공이 똑똑하고 올바르기만 할 수는 없다. 최악의 인간도 주인공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 영화는 그 사람이 최악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하고 왜 최악인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목격자>도 주인공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고 그에게 반성과 속죄를 요구한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이게 은근슬쩍 변명으로 빠지는 게 문제이다. 이 변명에 가족이 붙는 건 당연한 순서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그가 진짜로 가족의 안전을 걱정했다면 무엇보다 아내에게 사실을 털어놓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부부 갈등이 영화의 의미 있는 드라마를 불어넣어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안 한다. 가장으로서 그는 짐을 혼자 져야 한다. 정보 부족으로 가족과 이웃이 위기에 처하건 말건.

괜찮은 영화들의 세계로 가려는 <목격자>의 발목을 계속 잡아 물고 늘어지는 건 아저씨 스릴러의 공통된 문제점이다. 가족이 있는 중산층 중년남자는 대한민국 인간의 보편이며 아무리 수상쩍은 일들을 저질러도 가장의 중심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논리.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아무리 반성과 비판을 퍼부어도 장르는 그 자리에 달라붙어 있을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장사가 되는 게 아니냐고 따진다면 할 말이 없긴 하지만.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목격자>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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