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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결혼식’, 박보영과 김영광의 연애는 성공일까 실패일까
기사입력 :[ 2018-09-04 16:48 ]


‘너의 결혼식’, 사귀다 헤어진 연인들은 모두 고마운 스승이다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찬(贊)△.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영화의 제목을 듣고 1990년대 윤종신의 노래를 떠올린 사람도 많을 것이다. 사귀던 여자가 다른 남자와 결혼하는 상황에서 “너의 부모님 말씀을 이해할”것이며, 그 남자에게 “잠시 널 맡긴 거”라 말하던, 이상하게 병리적이고 정신승리적인 그 곡 말이다. 하지만 영화 <너의 결혼식>는 그 노래와 결이 다르다. 사귀던 여자가 다른 남자와 결혼하는 상황에 놓인 전남친의 심정이 영화의 도입부와 결말을 장식한다는 점만 같을 뿐, 수동공격형의 정서를 취하지는 않는다.

혹자는 역시 윤종신의 노래 <좋니>를 떠올릴 것이다. “내 십분의 일만이라도 아프다 행복해줘....난 딱 알맞게 사랑하지 못한 뒤끝 있는 너의 예전 남자친구일 뿐”이라는 지질한 여운을 남기는 복고풍의 정서로, 무려 2017년에 히트를 친 그 곡 말이다. 감독은 실제로 주연배우인 김영광에게 <좋니>를 들으며 연기를 준비하라 시켰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 영화의 정서는 그 보다 훨씬 건강하다.

영화 <너의 결혼식>은 고등학생으로 만난 남녀가 대학을 거치고 사회생활을 거치면서,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둘의 사랑이 결혼으로 맺어지지 못한다는 것은 제목부터 암시하고 있지만, 영화는 새드엔딩이라 하기 어렵다. 둘 다 빙긋이 웃는 행복과 성장에 도달하기 때문에, 해피엔딩에 가깝다.



◆ 여자를 후려치지 않는 로맨스

멀대같은 황우연(김영광)이 마침 교무실에서 벌을 받고 있을 때, 전학생 환승희(박보영)가 들어온다. 자신도 작년도 전학생이라는 공통점으로 환승희의 호감을 산 황우연은 그럴듯한 제안을 한다. 너에게 쏟아지는 남학생들의 관심을 차단하기 위해, 나와 사귀는 걸로 하면 어떻겠냐고. 잦은 전학으로 피곤해진 환승희는 이를 받아들인다. 예쁘고 똑똑해서 주목을 끄는 환승희가 황우연과 공식적인 커플이 되어 떡볶이를 사먹으러 다니는 모습은 꽤 잘 어울린다. <파랑주의보>나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등에 나왔던 그림보다 자연스럽고 생기발랄하다. 영화는 사투리로 인한 오해를 통해 성관계의 가능성을 슬쩍 흘린다. 청소년들의 사랑에서 성관계가 반드시 배제되지 않으며, 비록 오해일망정 여학생이 먼저 제안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것은 바람직하다. 또한 그러한 제안을 받은 남학생이 콘돔을 준비하는 모습도 올바르다.

둘은 즐거운 한 때를 보내지만, 환승희는 도망치듯 다시 전학을 간다. 영화는 황우연이 얼마나 깊은 실의에 빠졌었는지 묘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화장실에서 우는 남학생을 보여주고는 “여자 하나 못 잊어서”라 말하는 교사 황우연을 보여준다. 당시 황우연의 슬픔에 감정이입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한발 떨어져 있는 성인 황우연을 비춤으로써 객관적으로 관조하게 만드는 것이다.



영화 <너의 결혼식>은 두 사람이 대학에서 재회하는 것을 보여준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하릴없이 닭을 튀기던 황우연은 환승희가 찍힌 대학 홍보물을 보고 갑자기 명문대학을 가겠노라 전의를 불태운다. 분초를 다투며 공부하는 장면이 억지스럽긴 해도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보다 훨씬 밝고 귀엽다. 드디어 대학에 온 황우연이 환승희와 만나지만, 환승희는 “나, 사귀는 사람 있다”고 쿨 하게 말한다. 영화는 황우연이 환승희의 애정을 탈환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우습고도 안쓰럽게 그린다.

<너의 결혼식>이 환승희를 그리는 방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환승희는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지고지순한 여성이 아니다. 그렇다고 파탄난 인성에 종잡을 수 없는 캐릭터도 아니다. 환승희는 자신의 욕망과 논리를 지닌 독립된 인격체로, 그 나이와 상황에 걸맞게 연애를 하고 공부를 하고 아르바이트를 한다. 영화는 황우연의 입장에서 환승희를 그리지만, 극대화된 욕망의 대상으로 묘사하거나, 두 남자 사이에서 간을 보는 속물로 그리거나, ‘못 먹는 감’ 취급을 하지 않는다. 이것이 뭐 그리 대단한지 모르겠다면, 다른 영화들과 비교해보면 명확해진다.



가령 <500일의 썸머>는 남주인공의 혼란스러운 기억에 중점을 두느라, 여주인공의 감정을 파편화시켜 어렴풋한 흔적으로 묘사한다. 그 결과 그녀가 무엇을 느끼고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알 수가 없으며, 그녀는 왔다가 사라지는 계절처럼 취급된다. 또는 <스물>처럼 청춘의 치기만 강조하는 영화에서 여자는 남자의 들끓는 성욕과 유치한 호기심의 대상이 된다. 아련한 첫사랑 영화로 오인되는 <건축학 개론>에서도 여주인공은 남자의 열등감을 자극하는 속물처럼 그려진다. 심지어 남자는 자신이 갖지 못한 여자에게 원한을 투사하며, “썅년”으로 후려친다. 이런 영화들에 비해 <너의 결혼식>이 보여주는 연애관계는 대단히 건전하고 성찰적이다.

황우연은 환승희에게 버스에서 “환승입니다”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너를 떠올렸다고 말한다. 아련하고 풋풋한 말이다. 황우연은 환승희에게 새로운 남자가 생겼다는 점에서 고통 받지만, 한번도 ‘남자를 갈아탄다’는 의미로 환승희의 이름을 들먹이지 않는다. 황우연은 끝까지 환승희를 존중했으며, 사소하나마 자신이 가진 것을 희생해왔다. 고등학생 때는 자신을 괴롭히던 이들에게 복수하겠다는 마음을 접고 얻어맞아주었으며, 대학 졸업 후 만났을 때는 사귀고 있던 여자와 헤어졌다. 그리고 사고의 순간 환승희를 위해 몸을 날렸다. 그 사건은 둘 사이를 극적으로 맺어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두고두고 황우연을 괴롭히고 그것 때문에 헤어지는 계기가 된다.



◆ 헤어진 연인들에게 감사할 것

영화 <너의 결혼식>은 연애의 타이밍이 조금씩 어긋나며 좀처럼 연인이 되지 못하는 두 사람을 보여준다. 하지만 두 사람이 단지 친구와 연인 사이의 어정쩡한 관계에 머물렀던 것은 아니다. 만약 그랬더라면 사랑의 본질에는 접근하지 못한 피상적인 영화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영화는 두 사람이 마침내 연인이 되어, 꿀 떨어지는 사랑을 나누는 시간들을 보여준다. 같은 골목을 지나는 두 사람 곁으로 계절이 지나가는 화면은 무척 아름답다.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일상을 나누며 알콩달콩 행복해하던 이들은 필연적으로 이별을 맞는다.

이들은 어떤 외부적인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랑의 자체논리와 동력에 의해 헤어진다. 사실 대개의 연애는 외부적인 장벽에 부딪혀서가 아니라, 사랑 자체의 반감기가 소진되어 종말을 맞는다. 하지만 지금껏 로맨스 물들은 “진정한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는 거짓 이데올로기를 관철시키느라 가족, 질병, 사고, 재난, 전쟁, 범죄, 운명 등 외부적 요인들을 끌어들여 신파적 비극을 만들기에 바빴다. 오히려 사랑은 변한다는 보편적인 진실을 담담하게 묘사한 작품들은 드물게 수작으로 꼽힌다. <너의 결혼식>은 이들이 원 없이 사랑하는 시간도 가졌지만, 어쩔 수 없이 헤어지게 되는 순간도 잘 보여준다.



안전이별의 이슈가 대두되는 지금, <너의 결혼식>은 꽤 중요한 의미를 전한다. 둘의 로맨스에서 황우연이 폭력성을 드러내는 순간이 딱 한번 있다. 황우연은 환승희의 남자친구가 양다리를 걸치는 것을 알았지만, 환승희에게 전하지 못한다. 대신 남자친구의 차를 박살낸다. 하지만 그 행동은 가정폭력에 시달려왔던 환승희의 입장에서는 가장 참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환승희는 황우연에게 “실망이다”라 말한 뒤 한동안 만나지 못한다.

영화는 13년 동안 만남과 헤어짐을 거듭하다 드디어 ‘너의 결혼식’에 도달한 황우연을 비춘다. 황우연은 환승희와 사귀었던 시간들을 돌아보며, 성장의 시간이었음을 깨닫는다. 즉 그녀를 위해 희생한 시간들인 것 같지만, 사실은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과정이었음을 알게 된다.



흔히 결혼으로 이어지지 못한 연애는 실패로 간주된다. 그러나 결혼이 연애의 부산물 일수는 있어도 연애의 목적은 아니다. 연애는 목적을 지니지 않는 감정의 자기실현이다. 따라서 결혼으로 이어지지 않은 연애는 인생의 낭비가 아니라 자아의 성장으로 볼 수 있다. 주체할 수 없는 감정들을 쏟아내며 울고 웃었던 시간들은 쓸데없는 방황의 날들이 아니라, 소중한 삶의 컨텐츠를 얻은 시간들이다. 황우연이 첫사랑 이야기를 해달라는 아이들의 성화에 환승희와 있었던 추억들을 윤색하여 말하는 장면은 은근한 웃음을 자아낸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순간들에는 알지 못하지만, 연애로 몸달아하던 그 미친 감정들이 나를 이끈 욕망이고, 나의 내면을 구성하는 재료들이고, 나를 살도록 추동하는 힘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와 사귀다 헤어진 연인들이나 지금은 내 곁에 있는 사람의 과거 연인들은 모두 고마운 스승이자 도반들이다. <너의 결혼식>은 바로 그러한 깨달음을 담은 지극히 성찰적인 로맨스물이다.

아마도 이 영화와 가장 정서가 맞는 노래는 전술한 윤종신의 노래들이 아니라, <주주클럽>의 1996년 곡 <나는 나>일 것이다. “왜 내가 아는 저 많은 사람은 사랑의 과걸 잊는 걸까. 좋았었던 일도 많았을 텐데 감추려 하는 이유는 뭘까. 난 누구에게도 말할 수 있어. 내 경험에 대해. 내가 사랑을 했던 모든 사람들을 사랑해”라는 노랫말과 독특한 여성 음색이 대단히 파격적이었던 이 곡을 몇 번이나 곱씹으며 불러보고 싶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너의 결혼식>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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