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퀴즈’, 유재석이기에 가졌던 기대만큼 아쉬움도 남는 이유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유재석이 드디어 tvN에 진출했다. 개국한 지 12년 만이다. 최정상급의 다른 예능 MC들이 채널을 가리지 않고 활약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그간 유재석은 굉장히 무겁고 진중한 행보를 걸어왔다. 그래서 한때는 그의 존재가 지상파 브랜드를 여타 종편 및 케이블 채널과 구분 짓는 마지막 보루이자 상징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데 예능과 드라마에서 지상파의 헤게모니가 매우 옅어지고 껍데기만 남은 오늘에 이르러서야, 유재석은 <유 퀴즈 온 더 블럭>이란 로드퀴즈쇼를 통해 처음 케이블에 진출했다. 이는 JTBC <슈가맨> 이후 유재석이 지상파 밖에서 맡은 두 번째 프로그램이다.

아, 물론 넷플릭스의 첫 우리나라 현지제작 예능 <범인은 바로 너>가 있긴 하다. 하지만 <런닝맨>의 주요 출연진과 출신 제작진들이 노골적으로 <런닝맨>의 콘셉트를 가져온 프로그램이라 새로운 시도라고 평가하기는 곤란하다. 2014년 <나는 남자다>부터 새로운 모습이나 콘텐츠를 사실상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무한도전> 이후 유재석의 행보에 대해 평가할 만한 프로그램이 나온 셈이다.



유재석이란 이름에 비해 소박하게 시작한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여전히 유재석이 갖고 있는 지향을 보여준다. 구설수에 오르지 않는 행실과 미담, 누구에게나 칭찬과 호감을 이끌어내는 이미지의 인격을 바탕으로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바운더리 안에서 웃음을 만들어낸다. 강호동, 이경규, 김구라 등 비슷한 레벨의 MC들이 캐릭터 변화와 활동 영역에 변경을 준 것과 달리 정상에 오른 후 별다른 부침이 없던 유재석은 여전히 자신의 캐릭터와 장기를 신뢰한다. 일인자의 뚝심인지 어설픈 변신 시도는 마뜩치 않았든지, 유재석은 다시 한 번 자신이 가장 잘 하고 잘 해왔던 일을 들고 나왔다.

로드퀴즈쇼라 명명하는 <유퀴즈 온 더 블럭>은 길거리에서 무작정 시민들에게 말을 걸고, 퀴즈를 펼친 다음 다 맞추면 현금을 그 자리에서 인출해서 상금을 준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퀴즈와 상금 부분을 제외하고는 큰틀 자체가 종영한 <무한도전>의 연장선상에 있다. 의상부터 기획콘셉트까지 <무한도전>에서 유재석이 기획해 선보였던 ‘길거리 토크쇼 잠깐만’과 매우 흡사하다. ‘길거리 토크쇼 잠깐만’은 국민MC 유재석이 그의 시그니쳐라 할 수 있는 슬림핏 슈트를 입고 그에 어울리지 않는 좌상과 낚시 의자를 등에 지고 길거리를 다니나가 만난 시민들과 짤막한 토크를 나누는 즉석 토크쇼다.



일회성으로 등장했던 이 아이템은 지난해 말 파업 철회 이후 12주 만의 방송재개를 기념하는 ‘무한뉴스’에 ‘마이크출동 잠깐만’이란 이름으로 재등장했다. 방송을 쉬는 동안 멤버들의 근황을 취재하는 로드쇼 형식의 직격인터뷰였는데, 당시 인터뷰에 응한 박명수는 이 아이템은 반응이 안 좋았는데 왜 제작진이 살리려고 애쓰는지 모르겠다며 푸념을 늘어놓은 바 있다. 하지만 늘 승리는 유재석의 것이었던 만큼 퀴즈를 결합해 하나의 독립된 프로그램으로 발전해 세상에 나왔다. 차이라면 <유퀴즈 온 더 블럭>은 상을 지는 대신 들고 다닌다는 점이다.

그리고 여기에 역시나 <무한도전>과 <해피투게더3>를 통해 유재석과 합을 맞춰온 조세호가 함께한다. 유재석 코미디의 핵심은 콤비플레이다. 유재석이 웃음을 지휘할 수 있도록 하는 펀치력이 강하면서도 샌드백이 되어주는 캐릭터의 존재가 필수다. 날아다니는 새도 떨어뜨리던 단짝 박명수 대신 억울함의 아이콘 조세호가 그의 파트너로 낙점됐다. 유재석은 연신 ‘자기야’라며 조세호를 불러 세워 구박하고 다그치고, 의자를 망가뜨리는 등의 실수를 극대화해 웃음을 만들어낸다. 이 관계 또한 <무한도전>에서 발화된 캐릭터쇼이자 웃음이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신생 예능이지만 그간 유재석 예능의 요약판이기도 하다. 거리로 나가 시민들과 친근하게 어울리면서 다가가는 살아 있는 리얼리티(<나는 남자다> <슈가맨> 같은 비교적 새로 시도한 프로그램은 시민 대신 방청객이 그 역할을 한다), 웃음을 이끌어낼 수 있는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진 서브 캐릭터의 존재, 모든 시민들이 좋아할만한 호감을 사는 매너와 웃음을 지휘하는 순발력, 슬림핏 슈트, 심지어 목적 달성을 못할 시 대역죄인 복장을 입겠다는 공약까지 <무한도전>에서 못 웃긴다며 곤장을 치던 이미지와 오버랩된다.

이미지와 기획, 그리고 웃음 모두 <무한도전>의 한 조각을 다시 만나는 것 같아 반가웠다. 그러나 12부작으로 편성된 이 케이블 예능이 끝날 즈음, 유재석은 어떤 평가를 받을지 궁금해진다. 여전히 고갈되지 않는 호감을 이어갈지, 혹은 다른 동료들이 예전에 겪었던 변화의 길을 재촉 받게 될 것인가. 유재석 예능의 여전한 정수가 반가웠고, 그만큼 즐거웠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유재석이기에 가졌던 기대만큼은 아쉬움도 남는 발걸음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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