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션샤인’, 싸우려는 백성들과 내주려는 친일파들

[엔터미디어=정덕현] “전쟁을 해보면 말입니다. 빼앗기면 되찾을 수 있으나 내어주면 되돌릴 수 없습니다. 어떤 여인도 어떤 포수도 지키고자 아등바등인 조선이니 빼앗길지언정 내어주진 마십시오.” tvN 주말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유진 초이(이병헌)는 내부대신 이정문(강신일)에게 모리 타카시(김남희)의 밀정 역할을 해온 프랑스인 레오(파비앙)을 잡아 넘기며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은 이제 하야시(정인겸)가 돌아오면서 본격화될 을사늑약을 예고하는 일이면서, 당시 조선이 처한 아픈 상황을 에둘러 말해주는 대목이었다. 물론 나라를 팔아먹으려는 이완익(김의성)은 결국 고애신(김태리)의 총에 맞아 죽음을 맞이했고, 그의 죽음은 조선도 일본도 거들떠보지 않는 비참한 최후로 끝이 났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라는 걸 또 다른 을사오적들의 모습을 통해 <미스터 션샤인>은 드러냈다. 하야시의 총칼 앞에서 허망하게 한일의정서에 사인을 하는 을사오적들은 그렇게 조선을 ‘내어주고’ 있었다.



유진 초이의 이야기를 이정문은 고종(이승준)과의 독대 자리에서 건넨다. “폐하. 신도 두렵습니다. 허나 신이 가장 두려운 것은 싸워보지도 않고 대한이 일본의 손에 넘어가는 것이옵니다. 한 이방인이 말하길 빼앗기면 되찾을 수 있으나 내어주면 되돌릴 수 없다 하였습니다. 이방인의 눈에 지금 대한은 빼앗길 틈도 없이 내어주고 있나 보옵니다. 하여 신은 싸울 것입니다. 쉬 손에 쥘 수 없음을 보일 것입니다. 미움 받겠습니다. 하오니 부디 신을 칼날 삼으시고 폐하 백성과 함께 싸워주시옵소서.” 대신 중에도 아등바등 조선을 구하기 위해 애쓰는 이정문 같은 이가 있었고, 고종 또한 힘없는 조선의 황제지만 자신의 방식으로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고종(이승준) 앞에 총칼을 차고 버젓이 들어오는 모리 타카시의 모습이나, 한일의정서에 날인을 하는 을사오적 앞에서 촛불을 꺼버리는 하아시의 모습에서 풍전등화인 조선의 앞날이 예고되었다. 자신의 목숨과 욕망 때문에 조선을 그냥 내주려는 친일파들과 얼굴을 가린 채 이름도 없이 죽을 걸 알면서도 조선을 지키려 저마다의 방식으로 아등바등하는 의병들은 너무나 대비되어 보였다.



낭인들까지 동원되어 일국의 대신인 이정문을 납치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의병들은 그를 구하기 위해서 나선다. 그 구출작전과 고종의 비자금 예치증서를 상해로 보내야 하는 거사에 자원한 고애신은 그 일에 유진을 끌어들였다. 미국인인 그가 있어야 보다 쉽게 거사를 치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애신은 함께 미국으로 가자고 말했지만, 유진은 이미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고 있었다. 고애신과 함께 “불꽃 속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게 될 자신의 운명을.

의병들은 저잣거리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백성들이었다. 빵집을 하는 이나, 인력거꾼이나 얼굴을 가리고 총을 들면 의병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저 고관대작들이 내어주려는 조선을 지키려고 싸우는 중이었다. “빼앗길지언정 내주지 말라”는 유진 초이의 일갈이 뼈아프게 다가오는 건 “난 가족도 없으니 내가 나서겠다”고 하는 이 의병들과 제 걸 지키겠다고 나라를 팔아먹는 친일파들의 상반된 모습이 담겨져 있어서다. <미스터 션샤인>이 바라본 개화기는 아프게도 바깥으로는 총칼을 앞세워 들어오는 일본과 대적하면서, 안으로는 그냥 내어주려는 친일파들과 대적하는 의병이자 백성들의 처절한 사투였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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