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뽀보다 신랄했던 ‘라이프’, 의료민영화 문제

[엔터미디어=정덕현] JTBC 월화드라마 <라이프>가 종영했다. 여러모로 호불호가 나뉠 수밖에 없는 드라마다. 엔딩이 용두사미였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이 드라마가 꺼내놓은 의료민영화의 문제에 대한 명쾌한 해결점이 나오지 않아서다. 대신 마지막 장면에 들어간 예진우(이동욱)와 예선우(이규형)가 함께 바다 속에서 자유롭게 수영하는 모습과, 지방병원으로 간 이노을(원진아)을 찾아온 구승효(조승우)의 모습은 마치 이 신랄했던 사회극이 지극히 개인적인 형제애와 멜로로 끝나버린 듯한 인상을 만들었다.

왜 굳이 마지막 장면을 그렇게 구성했는가는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것보다는 오세화 원장(문소리)과 의사들이 환경부장관을 독대해 화정그룹 조회장(정문성)을 압박하고, 구승효가 중재안을 통해 병원을 조각내지 말아달라고 말함으로써 상국대병원에 닥친 민영화의 위기를 일단 넘기는 정도로 끝을 맺었어도 괜찮았을 성 싶다.

“이런다고 뭐가 달라질까? 난 돈을 본 사람이 물러서는 걸 본 적이 없어. 그 길로 안가는 걸 단 한 번도 본적이 없어. 어차피 미래엔 둘 중에 하나야. 헬스케어에 돈을 물 쓰듯 쓰는 사람들을 위한 곳. 그 시스템에 낄 수 없는 사람들이 가는 곳. 10년? 아니 5년만 두고 봐. 어느 쪽으로 변해 있을지.” 조회장이 한 걸음 물러나며 하는 이 말 속에 사실상 <라이프>가 하려던 메시지의 대부분이 들어있지 않았을까.



<라이프> 마지막 회는 그 30분까지가 사실상 이야기의 엔딩에 적절했다. 하지만 무려 1시간 반으로 길게 편성된 마지막 회의 나머지 1시간은 사족처럼 여겨졌다. 특히 이노을과 구승효의 러브라인은 (물론 있을 수도 있지만) 굳이 들어갈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그나마 예진우가 예선우와 바다 속에서 함께 유영하는 장면은 나름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교통사고로 아버지가 죽고 동생이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됐던 일에 트라우마를 갖고 있던 예진우가 그걸 털어내는 장면이면서 동시에 (자본의 시스템과는 상반되는) 자연의 일부로서의 자유로움을 그 장면이 상징적으로 그려내고 있어서다.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 마지막 회지만 그래도 그 한 회가 이 드라마가 가진 가치를 훼손한다고 말할 순 없을 것 같다. 호불호가 남는 근본적인 이유는 거꾸로 말하면 <라이프>가 건드리려 했던 문제의식이 실제 현실에서도 바꾸기가 어려운 중대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의료민영화의 문제는 MB시절에 언급되었다 의사들의 커다란 반발을 불러일으켰지만 드라마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해결된 문제가 아니다. 정국에 따라 변화는 정책을 보면 정권이 바뀔 때 또 고개를 들 수 있는 사안이다. 그러니 드라마가 내놓을 수 있는 해결책이라는 것이 쉬울 수가 없다.



게다가 <라이프>는 지금껏 드라마들이 해왔던 판타지 문법을 따라가지 않았다. 선악 구도로 그려내 핍박받던 선이 악을 이겨내는 식의 단순한 해소를 담아내려 하지 않은 것이다. 이를 잘 드러내주는 인물이 바로 구승효다. 사측에서 고용된 사장으로 병원사람들과 대립하는 위치에 서 있었지만 그는 끝내 자기 위치에서 병원을 위해 할 수 있는 선택을 하는 인물이었다. 선악 구도가 아닌 작용-반작용의 구도로 인물들의 대립과 화해, 변화를 그려낸 건 드라마로서는 새로운 문법을 썼다고 평가할 만하다. 많은 문제들이 명쾌한 결말을 내지 않고 열어둔 채 끝나게 된 것도 그런 이 작품만의 문법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웬만한 르뽀보다 신랄하게 다가왔던 의료 민영화의 문제를 드라마를 통해 이처럼 곱씹어 보게 됐다는 건 중요한 일이다. 드라마가 그저 카타르시스와 잠깐 동안의 통쾌함을 주는 것이 아니라, 사회 문제를 입체적으로 담아내고 문제제기를 할 수 있다는 걸 <라이프>는 보여줬다. 러브라인 같은 곁가지들이 아쉬움을 남겼지만, 그걸로 덮어질 수 없는 가치 또한 <라이프>는 남겼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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