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조선은 또 한 번 원치 않는 심판대에 나서게 됐다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요즘 편성표 상으로 가장 활기를 띄는 예능 채널은 놀랍게도 TV조선이다. 중장년 보수층을 겨냥한 정치색과 낯 뜨거운 막말과 오보와 같은 원색적인 뉴스로 자신만의 길을 가던 이 종편 채널이 요즘 그 색을 바꾸기 위해 다부진 노력을 보이고 있다.

이유는 있다. 재승인 심사 때마다 가장 큰 관심을 받을 정도로 실적과 점수가 좋지 못하다. 종편 4사 중 유일하게 기준 점수에 미달됐고, 지난 4월에는 종편 허가를 취소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24만 명가량이 동의할 정도로 이른바 ‘안티’도 많다. 게다가 경쟁력도 없다. 보도, 예능, 드라마 모든 면에서 양질의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제작해 브랜드 가치를 높인 JTBC나, 자린고비 스타일의 콘텐츠로 수지타산을 맞춰가는 MBN, 적자 폭은 크지만 <도시어부>같은 히트 프로그램 제작에 도전하고 있는 채널A와 달리 TV조선은 특정 세대에 고착된 뉴스보도 프로그램, 부부 관계나 탈북자 관련 떼토크 예능에 천착하며 제작 투자에 매우 인색하게 굴었다. 그 정도가 얼마나 심했는지 청문회 자리에서 프로그램 제작비를 늘리라는 주문을 직접 받기도 했다.

그 여파인지, 단짝이라 생각한 채널A의 변신 때문인지 올 여름부터 TV조선은 보다 젊고 대중적인 예능으로 대거 라인업을 짰다. 지난 6월 부부 중심의 가족 예능 <아내의 맛>을 시작으로 7월에는 노홍철, 김희철, 김영철이 게스트하우스 여행을 떠나는 6부작 여행 예능 <땡철이 어디가>를 내놓았다.



이번 주말은 변화의 피크다. 토요일 밤에는 해외에서 성공한 삶을 영위 중인 젊은 여성 셀럽의 일상을 관찰하는 <꿈꾸는 사람들이 떠난 도시-라라랜드>의 방송이 시작되고, 일요일에는 황무지에서 40년 만에 울창한 숲으로 변신한 대관령 음악숲에서 펼쳐지는 어쿠스틱 라이브 음악쇼 <숲속 라이브>와 김종민, 구준엽, 이필모 등 노총각 싱글 연예인들이 그들이 꼽은 이상형과 100일간 가상 연애를 하는 것을 지켜보는 관찰형 예능 <연애의 맛>이 방송된다. 10월에는 KBS에서 건너온 중견 예능PD의 야심작 <다시, 집으로>가 출격 준비 중이다. 독립해 살다가 다시 집으로 들어와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는 일상을 지켜보는, 또 다른 가족 관찰 예능이다.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성과도 있다. 필리핀 전 대통령과 연애를 할 정도로 판이 큰 사업가 그레이스 리, 왕년의 스타 이제니와 서세원, 서정희의 딸이자 인스타스타로 더욱 유명한 서동주 등의 글래머 셀럽들이 출연을 예고한 <라라랜드>는 방송 전부터 관심을 모으고 있으며, 이번 주 때 이른 추석 특집을 시작한 <아내의 맛>은 점차 순풍을 타고 지난달부터 평균 4%대의 인기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새롭고, 젊어지기 위한 변화일 텐데, 너무나 유행에 편승하는 아이템과 기획으로 나선다는 점이다. 대부분이 유행하는 가족예능, 여행예능과 같은 관찰형 예능이라 아직 보지 않았음에도 기시감이 든다.

<땡철이 어디가>는 좌충우돌 여행예능의 틀을, 멋진 싱글 여성을 내세운 관찰형 예능 <라라랜드>의 경우 MBN의 <비행소녀>, <연애의 맛>은 <나 혼자 산다>와 <미우새>, <아내의 맛>은 <살림남2>과 <동상이몽2>이 떠오른다. 아니, 캐스팅 이외에 별 다른 차이점은 없다. 뮤지션과 음악과 힐링을 결합한 소재는 <비긴어게인>, <이타카로 가는 길> 등이 떠오른다.

<아내의 맛>은 특히나 아는 맛이다. SBS <싱글와이프>에 부부 동반 출연했던 박명수 부부나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등장했던 이휘재 부부가 등장하고, 방송 진행 상황과 상관없이 어머니들끼리 진지하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은 <미우새>에서 보던 것들이다. 집안 반대를 이겨내고 결혼하는 과정은 <동상이몽>에서, 엄청난 나이차의 연상연하 커플은 <살림남>에 등장하던 스토리다.



가장 전통적인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는 정준호, 이하정 부부부터 방송 안에서 프로포즈, 상견례, 결혼식까지 모두 공개한 함소원·진화 부부,장성한 아들과 손주를 둔 아버지가 뽀뽀를 나눌 정도로 화목하고 살갑고 단란한 모습을 연출해 모든 출연자를 당혹케 한 장영란 가족의 일상은 지문과 대사가 있는 극본만 없을 뿐 2018년 버전의 8시대 드라마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가족관찰 예능이 내세우는 볼거리와 재미들은 대부분 SBS가 불을 댕긴 가족예능, 관찰예능의 공식 안에 머물고 있다.

따라서, 연예인 가족의 집 안 모습과 살림살이를 구경하고, 그 특이함과 화려함, 화목함을 전시하는 아류들의 양산을 콘텐츠에 대한 투자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TV조선이 워낙 드라마틱한 변화를 주다보니 눈에 띄어서 그렇지 이는 여러 채널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예능계에 고착화되고 있는 미투전략이 공멸의 길로 접어드는 발걸음이 될지, 현명한 선택으로 판가름 날지 TV조선은 또 한 번 원치 않는 심판대에 나서게 됐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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