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탐사대’, ‘쎈 이야기’에만 집착하다 공감을 놓쳤다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MBC가 공영성을 강화하는 9월 개편을 단행했다. 지난 5월 방영된 파일럿 프로그램의 호평을 바탕으로 정규 편성된 시사교양프로그램 <실화탐사대>는 그 개편의 핵심에 해당하는 프로그램이다. 정규 프로그램에서는 파일럿과 비교해 몇 가지 외형적 변화를 꾀했다. 메인 MC는 여전히 신동엽이지만, 강다솜, 김정근 아나운서가 새롭게 가세했고, 세 명의 진행자 모두가 아이템을 소개했던 파일럿과 달리 아이템을 2개로 축소하면서 취재 비중도 늘렸다. 그렇다면 그 내용은 어떨까. [TV삼분지계]가 정규로 돌아온 <실화탐사대>의 속을 들여다봤다.



◆ 차별점이자 승부수는 공감

“이게 실화야?” 하고 놀라길 기대했으나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었다. 첫 번째 ‘그 사건, 어쩌다가’의 산골 마을에서 벌어진 집단 성폭행 사건은 지난 8월 말 타 방송사 보도 프로그램에서 다룬 내용이었고, 두 번째 ‘I’m 팩트’의 베트남 축구 영웅 박항서 감독 이야기 역시 이미 SBS <집사부일체>를 비롯한 여러 프로그램에서 집중 조명한 바 있어 신선함이 부족했으니까. 아무래도 첫 회인지라 도전과 모험보다는 안전을 택했지 싶은데 ‘이래도 화 안 낼래?’, ‘이래도 감동 안 할래?’라는 식의 계산이 살짝 엿보여 아쉬웠다고 할까? ‘그 사건, 어쩌다가’의 경우 굳이 보기 불편한 수위의 재연 장면이 필요했는지 갸웃거리게 된다. 게다가 취재에 재연을 더하는 방식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지 않나. 지상파는 물론 종합편성채널까지, 이런 형식의 프로그램이 어디 한 둘이어야지.



하지만 KBS2 <안녕하세요>를 통해 뛰어난 공감 능력을 보여 온 신동엽과 김정근, 강다솜 아나운서의 조합은 색달랐다. 일단 흔히 보는 남자 방송인 몇몇에 여자 연예인을 구색 맞추기로 끼워 넣은, 빤한 그림이 아니어서 반가웠고, 함께 분노하고 슬퍼하고, 눈 맞추며 같이 기뻐하고 환호하고, 대본에 의한 전달이 아닌 보고 듣고 느낀 그대로의 살아있는 감정 전달이어서 좋았다. 특히 범죄에 대한 반성 없이 피해자 탓만 늘어놓는 가해자들을 향한, 아나운서의 틀을 깬 강다솜의 솔직한 분노가 인상적이었다. 탐사보도 프로그램의 강자 MBC가 만드는 <실화탐사대>, 이 프로그램의 차별점이자 승부수는 공감이다. 좀 더 생생한 전달을 위해 진행자들이 직접 취재에 나서보는 건 어떨까?

방송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 ‘쎈 이야기’보다 깊이 있는 대화가 필요하다

“더 놀랍고 감동적인 진짜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파일럿 방영 당시 저 문장으로 끝을 맺은 <실화탐사대>는 실제로 더 ‘쎈 이야기’로 돌아왔다. 첫 번째 ‘그 사건, 어쩌다가’ 코너에서는 지적장애인 여성 성폭행 사건의 충격적인 진상을 파헤쳐 분노를 자아냈고, 두 번째 ‘I’m 팩트’ 코너에서는, 파일럿 당시 ‘우리 방송은 미담과 어울리지 않는다’던 신동엽의 농담과 달리 박항서 코치의 감동 실화를 다뤄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의 목적이 단지 분노와 감동을 이끌어내는 데 있을까? 극적인 실화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시사교양프로그램은 이미 많다. <실화탐사대> 파일럿이 호평을 얻은 이유는 기존의 시사교양프로그램과 달리 더 깊은 공감에 초점을 맞춘다는 데 있었다. 전반적인 포맷은 SBS <궁금한 이야기Y>, KBS <속보이는 TV 인사이드> 등과 크게 다를 바 없지만, <실화탐사대>는 이러한 프로그램들이 사안에 대한 전달자, 관찰자 역할에 그치는 데서 한 발 더 나가 진행자들이 아이템의 키워드를 직접 뽑고 사안에 더 깊이 개입하면서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그렇다면 정규 프로그램에서도 한층 깊이 있고 풍부한 공감 토크를 기대하는 이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실화탐사대>는 엉뚱하게도 더 ‘쎈 이야기’를 강조하며 돌아왔다. 지적장애인 여성 성폭행 사건을 다루면서 폭넓은 취재로 이해를 돕기는 했으나 그 과정에서 자극적인 묘사가 더해졌다. 스튜디오 토크에서도 장애인, 지역사회, 성범죄 등의 다층적 문제가 결합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피상적인 감상을 나누는 데 머물렀다. 프로그램이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파일럿 호평의 원인을 좀 더 고민할 필요가 있다.

칼럼니스트 김선영 herland@naver.com



◆ 가관이다

MBC 새 시사 프로그램 <실화탐사대>는 새 프로그램인데도 퍽 익숙하다. 강원 영월군 집단 성폭행 사건을 다룬 첫 번째 코너 ‘그 사건, 어쩌다가’를 보자. 코너는 애니메이션과 실사로 재연된 장면들을 통해 마을 사람들의 가족적인 분위기를 묘사한 뒤, 사실은 다수의 마을 사람들이 피해자가 지적장애인이라는 점을 악용해 성폭행해왔다는 진실을 드러내는 반전구조를 취한다. 드라마적 구성을 강화해 시청자의 충격과 분노를 더 효과적으로 유도하는 이 익숙한 방식. <그것이 알고 싶다>나 <궁금한 이야기 Y> 등 SBS 시사 프로그램들을 연상시키는 스토리텔링 방식은 자꾸만 채널이 MBC가 맞는지 확인하게 만든다.

충격과 분노를 유도하는 과정에서, 제작진은 자꾸 선을 넘는다. 제작진은 마을에 이미 소문이 파다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수집한 증언들을 방송에 내보냈다. 피해사실을 알리고 끝나는 게 아니라, “XX를 만졌다더라”, “XX를 여기다 끼웠다더라”, “XX도 빨고 뭐 이랬다더라” 등 보는 이조차 수치심을 느낄 만큼 과도하게 구체적인 묘사가 전파를 탔다. 단순 시청자도 수치스러운데 피해당사자와 그 주변사람들에게는 어땠을까? 혐의를 부정하는 피의자의 변명이나 피해자의 평소 행실을 비난하는 피의자 가족의 발언 또한 생생하게 방송됐는데, 그들의 몰염치를 비판하려는 의도였겠으나 2차가해 성 발언을 고스란히 전파로 내보낼 때엔 보다 더 신중했어야 했다.



2차가해 성 발언들을 견디며 도달한 결론 또한 미심쩍다. 방송은 피해자가 이미 2004년 성폭행을 당해 마을을 떠나 장애인 보호시설에 입소했으나, 2014년 성인이 되자 성인 장애인 보호시설로 입소하지 못하고 보호자인 큰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마을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이 과정에서 ‘안전하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던 장애인 보호시설’과 ‘피해자를 성폭행하는 이들이 가득한 마을’은 이상과 현실의 이항대립처럼 제시된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건 지적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과 함께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면서도 이와 같은 피해를 당하는 일이 없도록 제도적 방지책을 세우는 것 아니었나? 이 무슨 “밤길이 위험하니 여자들은 일찍 귀가하라” 같은 소리인가?

장애인 보호시설은 생존권을 보장한다는 명목으로 장애인의 자유권을 제약하고, 장애인을 사회로부터 고립시킨다는 점을 꾸준히 지적 받아왔다. 그래서 20세기 후반부터 장애인 운동의 일관된 방향은 ‘탈시설화’이었고, 장애인 이동권 투쟁과 장애등급제 폐지 투쟁, 장애인 활동보조 서비스 확대 투쟁 또한 장애인이 시설을 나와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피해자에게 필요한 건 그의 안녕과 안전을 도모할 활동보조인과 제도적 뒷받침이지, 사회로부터의 고립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실화탐사대>는 그 먼 길을 돌아와 성년후견인 제도와 성인을 수용할 수 있는 장애인 보호시설을 제시하고는 어영부영 ‘도움이 필요하다’ 정도의 코멘트로 코너를 마무리한다. 가관이다.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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