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미더머니777’, 복면 마미손에게서 오히려 진정성이 느껴진 건
‘쇼미더머니777’, 돈과 성공 판타지로 만들어진 힙합씬

[엔터미디어=정덕현] 이번 Mnet <쇼미더머니777>에는 이전 시즌과는 다른 몇 가지 특징들이 보인다. 그 첫 번째는 갈수록 점점 지원자가 늘고 있는 1차 예선전의 장관을 모두 삭제해버렸다는 점이다. 별거 아니라고 여겨질 수 있겠지만 사실 방송 제작자 입장에서는 엄청난 선택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금껏 <쇼미더머니>에서 항상 처음 시선을 끌었던 건 바로 이 1차 예선전이 연출하는 장관과, 거기서 늘 존재하기 마련인 특이한 출연자들을 통한 이슈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이슈들 중에는 힙합에서 늘 논쟁이 되던 이른바 ‘힙합 아이돌’과 언더그라운드 사이에서 가중되던 ‘진정성 논란’ 같은 뜨거운 것들도 있었다.

게다가 1차 예선전에 몰리는 참가자들이 만들어내는 장관은 <쇼미더머니>가 명실공히 국내 힙합의 전 분야를 아우르는 오디션이라는 걸 직관적으로 보여준다는데 의미가 있다. 그런데 이것을 들어냈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이제 더 이상 그런 왁자지껄한 연출이 불필요하다는 자신감이다. 우선 화제가 필요했던 시기를 지나온 건 이미 오래고, 많은 진정성 논란이 있었지만 그 누구도 국내 힙합에서 <쇼미더머니>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니 1차 예선전의 세 과시는 이제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쇼미더머니>는 시즌7까지 오면서 국내에서 힙합을 하는 거의 모든 이들(물론 아직도 바깥에 존재하는 이들이 있지만)을 그 장으로 끌어들였다. 이를테면 LA에서 한인 힙합을 이끈 수장으로 이번 시즌 참가에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루피는 <쇼미더머니>에 출연하는 래퍼들을 정조준 해 비난했던 인물이었다. 스윙스가 그에게 “마음을 바꾼 계기”가 궁금하다며 루피가 했던 그 비난의 표현들을 반복적으로 끄집어내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자, 루피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에 들어가서 저만의 길을 가려고 노력을 해봤고 많은 시행착오와 고민 후에 이런 결심을 내리게 됐다. 사실 굉장히 긴장된다. 긴장감을 이겨내고 원하는 것을 가져가는 참가자들에게 리스펙이 생기는 것 같다.” 이 얘기는 무얼 말하고 있는 걸까.



그리고 루피가 쿨하게 드러낸 참가의 속내는 ‘돈’이었다. 그는 돈을 벌고 싶어서 출연하게 됐다고 했다. 언제부턴가 힙합과 돈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쇼미더머니>는 그걸 촉발시킨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많은 아티스트들이 그 짧은 오디션 기간을 거쳐 엄청난 부와 명성을 얻었다. 그리고 그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 부를 과시했다.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장신구들과 화려한 스포츠카가 그들의 후광을 만들었다.

힙합과 돈 혹은 성공의 관계는 본토에서 도저히 성장의 사다리를 탈 수 없는 시스템 속에 갇힌 흑인들이 실제로 그 가난한 삶을 뛰어넘을 수 있는 기회로서 힙합이 인식되었기 때문에 박수 받는 성공사례로 공감되는 면이 있었다. 그렇다면 국내의 힙합 아티스트들도 마찬가지일까. ‘국힙’이라고도 불리는 국내의 힙합은 그 태동 자체가 중산층 이상의 부유한 환경이 전제되어야 먼저 접할 수 있는 장르였다. 그러니 부의 과시는 가난을 뛰어넘기 위한 기회의 의미라기보다는 물질적 욕망의 의미가 더 클 수밖에 없다.

<쇼미더머니777>은 본래 이 프로그램의 제목이 시즌1부터 말해주었던 것처럼, 힙합과 돈의 상관관계를 더더욱 본격적으로 드러냈다. 이전 시즌과 달라진 더 중요한 특징은 이전까지는 그래도 힙합의 진정성이니, 스웨그니 하며 살짝 뒤로 밀쳐 두었던(그렇다고 그게 주가 아니라는 건 아니다) ‘돈과 성공’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이다. 참가자들이 첫 선을 보이는 래퍼 평가전에 들어간 ‘파이트머니’ 시스템이 그것이다.

이제 참가자들은 무대에 나와 실력을 보이고 프로듀서들은 그 참가자에게 최대 500만원까지 배팅을 할 수 있다. 물론 프로듀서가 배팅을 해도 참가자가 후에 그를 선택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이건 도박의 성격이 강하다. 그렇게 프로듀서들이 배팅한 금액의 합계가 그 참가자의 가치를 평가하는 바로미터가 된다.



물론 <쇼미더머니777>은 1차 예선전 따위는 편집해버리고, 그 많던 논란을 통한 이슈메이킹도 모두 지워버릴 만큼 실력자들이 넘쳐났다. 이미 힙합 팬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스내키 챈이나 슈퍼비 같은 인물은 물론이고, 해외파로서의 루피와 나플라, 우승후보로 나플라와 나란히 거론되며 경쟁구도를 만들고 있는 키드 밀리, 독특한 색깔을 가진 PH-1이나 본원적인 힙합의 색깔을 거의 화석처럼 그대로 갖고 있는 듯한 차붐은 물론이고, 15살이라는 나이가 전혀 떠오르지 않는 무서운 힙합 영재 디아크 등등, 그 출연한 무대만으로도 꽉 차는 실력자들이 가득했다. 2시간 가까이 방영되는 그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모르고 들여다보게 할 만큼 놀라운.

그래서일까. 그 즐거운 몰입감이 깊어질수록 남는 씁쓸함도 적지 않다. 논란을 통한 이슈들이 거의 사라졌고 실력자들은 넘쳐나는 <쇼미더머니777>이지만, 시즌 7을 ‘777’로 바꿔 넣어 도박의 잭팟의 의미를 강조해 넣은 건 자본의 힘이 압도하는 국내 힙합의 세계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 프로그램을 진두지휘하는 신정수 국장은 래퍼들이 말하는 돈의 의미에 대해 “돈 앞에 굴복하지 말고, 돈으로 재능을 살려는 사람들한테 굴복하지 않고 나는 돈을 벌었다고 자랑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배팅시스템은 “현재 가장 핫한 1등을 하고 있는 래퍼가 누구인지를 돈이라는 장치로 예능적 재미를 제공하는 것이지 도박적으로 한탕을 노리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램이 그 시스템을 통해 부지불식간에 전하고 있는 메시지가 돈의 가격으로 매겨지는 힙합 아티스트들의 수직 계열화라는 점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그게 자극적인 재미를 만들어내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 재미 이면에 놓여진 자본의 미소가 꽤나 씁쓸하게 다가온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번에 얼굴에 핑크빛 복면을 쓰고 참가했다 떨어지게 된 마미손은 아이러니하게도 진짜 힙합의 본질을 드러내는 장면처럼 보였다. 이미 성공한 래퍼가 복면까지 쓰고 도전한 후 탈락하는 그 과정은 오히려 전혀 돈과는 상관없는 ‘진정성’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쇼미더머니777>은 그런 점에서 보면 그다지 지역을 근거로 둔 힙합씬이 별로 없는 국내에서, 돈과 성공판타지로 만들어진 하나의 거대한 방송 힙합씬이 되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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