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괴’, 한심하기 그지없다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반(反)▲.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영화 <물괴>는 조선왕조실록 중종22년의 기록을 바탕으로 만든 괴수물이다. 괴이한 짐승인 물괴가 나타나 왕이 궁을 옮긴 뒤 3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는 기록에 장르적인 상상력을 덧댔다.

영화 <물괴>는 익숙하고 안전한 길을 간다. <조선명탐정>으로 조선시대 조사관으로 최적화된 이미지를 쌓아온 김명민과 <해운대><광해>등에서 감초연기로 인정받은 김인권이 버디를 이룬다. 여기에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연기돌’로 등극한 혜리가 사극연기로 스크린에 데뷔한다는 사실이 화제를 모았다. 장르가 괴수물인 만큼 괴수의 디자인과 CG가 중요한데, 나쁘지 않다는 입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상영관에서 확인한 결과물은 한심하기 그지없다. 시나리오, 연출, 연기, 촬영, 편집 등이 근래 나온 사극들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 어떻게 이런 시나리오가 제작으로 이어졌는지 근본적인 회의가 드는 지경이다.



◆ 정치모략에 의한 조작과 실제 재난이 공존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역병이 돌자 관리들은 백성들을 ‘살처분’ 한다. 전염을 막기 위해 감염자와 비감염자를 분리하려는 노력은 생략된다. 재난의 공포를 키워 정치적 이득을 얻으려는 영의정(이경영)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시체구덩이 속에서 살아남은 아이를 발견한 내금위장 윤겸(김명민)은 아이를 품에 넣고 궁에 들어와 왕에게 사직을 고한다. 13년 후 다시 물괴가 출현한다. 인왕산에 나타났다는 정체불명의 괴수와 그 괴수가 옮기는 역병에 대한 공포로 민심은 흉흉해지고 물류는 끊긴다. 연산군을 폐위시킨 반정공신들에 의해 왕위에 오른 뒤, 조광조를 활용한 개혁에도 실패한 중종은 권신들의 권력에 짓눌려있다. 왕은 물괴가 왕권을 흔들려는 권신들이 꾸민 짓이라고 생각하고, 초야에 묻혀있는 윤겸을 불러 물괴가 허구임을 조사하도록 한다.

조선명탐정으로 경력을 쌓은 김명민, 아니 윤겸이 물괴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한 조사에 착수한다. 물괴는 조작된 허구이기도 하고,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다. 즉 영의정이 꾸민 사건과 진짜 괴수의 출현이 공존한다. 윤겸이 인왕산을 수색할 수색대를 요청하자, 조정회의에서 영의정의 사병이나 마찬가지인 착호갑사 100명과 차출된 백성들로 수색대를 꾸릴 것이 결정된다. 하지만 이상한 지휘체계 속에서 수색대는 몰살된다.



물괴가 연산군 시대의 적폐로 인해 자라난 괴수라는 점과 물괴에 대한 공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조작사건이 더해진다는 설정은 재미있다. 진짜 재난과 재난에 편승한 정치공작이 공존한다는 점은 흥미로운 발상이다. 그러나 칭찬할 점은 딱 거기까지이다. 편집이 너무 이상해서 윤겸의 일행과 다른 수색대가 얼마나 멀리 떨어져있는지도 가늠이 되지 않는다. 물괴가 출몰하는 동선이나 여러 인물들이 이동하는 동선이 이상해서 공간을 종잡을 수 없다. 물괴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화면의 밝기나 질감이 좋지 않아 물괴의 형상이 자세히 드러나지 않는다. 우왕좌왕하는 장면이 조악하게 펼쳐지는 와중에 더욱 실망스러운 것은 물괴와 마주친 영의정 수하 진용(박성웅)의 행동들이다. 재난을 조작하던 그가 진짜 물괴를 보고 혼란에 빠질 만도 하지만, 그런 디테일한 서사는 없다. 그냥 마구잡이로 사람을 죽인다.



◆ 왕정시스템을 뛰어넘은 조선시대 빌런?

영화 <물괴>에는 영의정이 착호갑사 700명을 사병처럼 길렀다고 나온다. 착호갑사는 호랑이를 사냥하는 특수부대로 경국대전에 440명으로 구성된다고 명시되어 있을 만큼 공식적인 정예부대이다. 영의정이 이들을 사병처럼 길렀으려면, 그의 권력은 이미 조선의 왕정시스템을 뛰어넘었다고 볼 수 있다. 현장에 투입된 착호갑사들이 물괴가 아닌 사람들을 죽이라는 명령에 순순히 따르고, 심지어 궐을 에워싸고 쿠데타를 일으키라는 명령에도 아무런 동요나 반발 없이 순순히 따른다. 조선초기의 왕정시스템이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것보다 훨씬 취약했어야 가능한 일이다.

영의정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가 왕정을 부인하거나 역성혁명을 염두에 둘만큼 혁명적인 인물로 보이지는 않으니, 기껏 왕을 갈아치우는 반정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를 왕으로 세워 인정을 받겠다는 것인지 최소한의 프로세스가 언급되었어야 한다. 하지만 영화는 이를 생략한 채, 그를 ‘왕위를 노리는 잔혹한 권신’으로만 그린다. 요컨대 영화는 정치 암투가 있다고만 할 뿐, 그 암투가 정확히 무엇인지 다루지 못하며, 악당이 있다고만 할 뿐, 그의 욕망과 세계관이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는다. 정치를 도덕으로 치환하는 유치한 선악이분법적 사고이다.

재난과 역병의 정치학을 통해 한국 사회에 대한 통렬한 풍자를 담았던 <괴물>이 이미 12년 전에 나왔다. 그 사이 <괴물>에서 암시했던 재난과 역병의 정치학이 세월호 사건과 메르스 사태를 겪으며 현실로 체험되었다. 그렇다면 이후 이 주제를 다룬 영화가 만들어질 때, 조금이라도 심화된 문제의식이 있었어야 한다. 하지만 <물괴>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단지 조선시대로 배경을 옮겨 훨씬 조악한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놓을 뿐이다. 굳이 조선시대로 뒷걸음처서 정치암투를 그려 넣은 것은 현실정치의 그림자를 담고 싶었기 때문일 테지만, 드러나는 것은 감독이 현실정치를 얼마나 얄팍하게 이해하고 있는지 이다.



◆ 여성 캐릭터, 분절된 이미지의 합

윤명(혜리)은 윤겸의 과거를 전혀 알지 못한 채 자랐다. 하지만 그가 내금위장이었다는 것을 알자 곧바로 내금위장의 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인다.(“내금위장의 딸이 무술도 못하겠어요?”) 윤명은 무술 뿐만 아니라, 검시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인다. 그가 시체를 담담하게 대하는 것은 시체더미에서 살아있었던 유아기의 기억 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 영화가 유일한 여성캐릭터인 윤명을 민폐 캐릭터가 아닌 강하고 능동적인 여성으로 그리려는 것은 알겠다. 하지만 그는 잘 만들어진 여성 캐릭터가 아니다. 윤명을 둘러싸고 이상한 군더더기들이 들러붙어 있기 때문이다.

윤명이 허선전관(최우석)을 처음 보고 “누구냐?”고 묻는 순간 관객들의 실소가 터진다. 혜리의 발연기가 회자되지만, 그보다 궁금한 것은 어떻게 이 장면에 감독이 OK사인을 보냈으며, 하필 이 테이크를 썼을까 하는 점이다. 극의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러브라인을 형성하기 위해 카메라가 허선전관을 잡을 때 인위적인 앵글과 음악이 사용된다. 윤명이 허선전관을 보자마자 사랑에 빠져야 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액션 장면에서 윤명이 내시의 사타구니를 찬다. 내시의 ‘없음’을 강조하는 ‘개콘’식 유머를 집어넣기 위함이다. 이런 모든 군더더기들이 극의 집중도를 흐트러뜨린다. 그 중 가장 어이없는 장면은 윤명이 궐문을 닫기 위해 백성들 앞에서 한마디를 하자, 백성들이 순식간에 영의정이 악당임을 알게 되는 개연성 없는 장면이다.

윤명은 대체 어떤 인물일까. 영화는 그를 내적 일관성을 지닌 인물이 아니라, 그때그때 서사의 필요에 의해 산발적으로 기능하는 캐릭터로 그린다. 아무것도 모르고 자랐으나 독학으로 의술도 익혀야하고, 시체구덩이에 대한 무의식적 기억으로 검시 능력도 있어야하며, 최고무술가의 딸임을 알았으니 실전무술도 수준급으로 해내야 한다. 게다가 ‘개콘’식의 유머도 방출해야하고, 남자를 보았으니 연정도 품어야 하며, 말 한마디로 대중을 설득하는 연설가가 되어야 한다. 어떻게 이 모든 것이 가능한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가 내적 일관성을 지닌 존재가 아니라, 필요에 따라 분절된 이미지의 합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 적폐청산과 동물유기 금지

영화 <물괴>에서 그나마 재미있는 점들은 물괴에 관한 것들이다. 그가 연산의 기이한 취미를 위해 인위적인 교배를 통해 탄생한 존재이고, 반정과 함께 유기된 뒤 역병으로 살처분된 인육을 먹고 거대한 물괴로 자라게 되었다는 설정은 상징성을 갖는다. 물괴는 정치적인 귀태(鬼胎)이고, 무능하고 잔혹한 정치와 그 희생자들의 피를 먹고 자랐다. 물괴가 지하통로를 타고 경복궁 근정전의 옥좌를 깨부수며 공중으로 솟구치는 장면은 조선의 왕정시스템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장면으로, 굉장한 카타르시스를 담는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이다. 무능한 왕의 왕권은 보존되었으며, 부서진 경복궁을 떠나 창경궁에 3년간 머물다 돌아오는 것으로 물괴가 보여준 급진적인 파열은 봉합된다.

이후 뭐가 좋아졌을까. 악당인 영의정이 사라졌으니 역병이나 재난으로 정치공작을 삼는 일은 사라졌을까. 운 좋게 또 다른 악당이 그 자리를 대신하지 않고 정치공작이 사라졌다한들, 진짜로 역병이나 재난이 벌어졌을 때 백성을 보호할 능력이 왕에게 생겼을까. 결국 영화가 들려준 정치 이야기는 무능한 왕을 사수하기 위한 헛소동에 불과하다. 대체 왜 왕을 지켜야 할까. 조선시대 사람이라면 그것을 충으로 생각했겠지만, 지금의 관객이 그것에 안도와 감동을 느낄 이유는 없다.



영화에서 그나마 건질 교훈이 있다면 두 가지이다. 첫째는 연산이라는 적폐를 철저하게 청산하지 못해 벌어진 일이니 지난 정권의 실정을 낱낱이 밝히는 일을 결코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영화에서 연산이 만들어놓은 궁궐지하의 엄청난 시설을 22년 동안 궐내의 수많은 내관, 궁녀들 중 아는 이가 없었다. 왕을 내쫓았다고 끝난 것이 아니라, 그가 행했던 악정들을 꼼꼼히 되짚고 잘못 시행된 정책들을 되돌리는 작업이 있었다면 22년간 모를 수가 없었을 것이다. 둘째, 인간의 취향과 필요에 의해 동물을 인위적으로 교배하거나 동물을 대상으로 한 실험을 자제해야하며, 절대로 키우던 동물을 유기해서는 안 된다. 초롱이가 물괴로 돌아온 것은 유기 당했기 때문이다. 세상에 나쁜 물괴는 없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물괴>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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