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대목 노린 애매한 한국영화, 영화계에 되레 독 될라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추석 시즌 멀티플렉스가 한국 영화로 채워지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진 지 오래되었다. 과연 이것이 보기만큼 당연한 것인지, 과연 한국영화계에 도움이 되는 관습인지는 잘 모르겠다. 개인적인 경험을 말하라면, 이 시기의 한국 영화에 대한 관심을 잃은 지 오래다. 추석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영화를 점점 더 평평하고 밋밋하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차라리 아주 나쁜 영화라면 욕이라도 하겠지만 이 시기의 영화들은 그러기도 애매하다.

영화들을 들여다보기로 하자. 일단 얼마 전에 시사회가 끝난 <원더풀 고스트>가 있다. 김영광이 연기한 경찰의 생령이 난치병을 앓고 있는 딸이 있는 유도 관장 마동석에게만 보인다는 설정이다. 이 정도면 영화를 보지 않아도 내용을 결말까지 알 것 같고 이미 같은 영화를 몇 번 본 것 같다. 진부한 공식을 쓰더라도 관객들이 예상하지 못한 부분을 하나 이상 만들어내는 것이 장르물의 의무일 텐데, <원더풀 고스트>에는 이런 부분이 하나도 없다. 이 진부함은 최근에 지나칠 정도로 작품이 많아진 마동석이 연기하는 마동석스러운 캐릭터 때문에 더 눈에 뜨인다.



<물괴>는 조선왕조실록에 실제로 기록된 괴물 소동을 소재로 삼은 영화이다. 최근 인터넷에서 악평 몰이를 당했는데,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그냥 제대로 활용했다면 엄청나게 재미있을 것 같은 소재로 만든 밋밋한 영화에 불과하다. 다들 신선하고 싶었겠지만 캐스팅과 캐릭터에서부터 진부함의 냄새가 풍긴다. 익숙한 퓨전 사극의 공식에 피부병을 앓는 삽살개 같은 괴물이 추가되었을 뿐이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괴물엔 유감 없다. 유감있는 건 이미 고정되어버린 퓨전 사극의 빈약한 상상력이다. 조선시대를 다루면서 사악한 사대부와 학대받는 백성, 그 사이에 낀 정의로운 주인공의 구조를 택한 것 자체를 뭐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왜들 이렇게 익숙한가. 퓨전 사극의 뻔한 공식 안에서 관습을 찾는 대신 진짜 역사를 꼼꼼하게 들여다보는 게 퓨전 사극을 만드는 데에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역사는 언제나 장르 관습보다 더 넓기 마련이니.

<안시성>은 한국에서 의무교육을 통과한 사람들이라면 모두 아는 안시성 대전투를 영화화한 것으로, 언젠가 나오긴 할 영화였다. 대규모 스펙터클, 스타 캐스팅, 애국심 불끈 솟는 소재는 모두 추석 한국 영화의 조건에 맞는다. 하지만 양만춘을 연기한 배우가 조인성이라는 것은 여전히 신경 쓰인다. 우리가 아는 사극 주인공 역에 전혀 어울리는 배우가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오히려 양만춘을 새로운 캐릭터로 만들려고 했던 게 아닌가 생각을 했다. 초반 등장 장면을 보면 그런 것도 같다. 하지만 안시성 대전투를 소재로 애국심을 자극하려는 천만영화 워너비가 이 캐릭터를 갖고 할 수 있는 데엔 한계가 있다. 그 한계는 모두가 알고 있는 안시성 전투 자체에도 있다. 결국 영화는, 현대극이라면 그냥 개성이라고 넘겼을 아슬아슬한 테크닉의 불안한 배우가 덜컹덜컹 끌고 가는 비디오 게임스러운 스펙터클의 연속에 머물고 만다.



<명당>은 이번 시즌 영화 중 가장 분명한 아이디어가 있는 작품이다. 우리가 아는 19세기 조선의 역사 속 친숙한 인물들을 다루는데, 역사를 그대로 따라가는 정공법을 택하는 대신 천재 지관인 허구의 인물을 등장시켜 풍수지리라는 주제에 이들을 끌어들인다. 흥선대원군을 이런 식으로 다룬 영화는 분명 이전엔 없었다. 그의 동기와 야심도 이 틀 안에서는 비교적 새롭게 읽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정서와 이야기는 여전히 친숙하다. 결국 이 영화는 시대를 옮기고 소재를 바꾼 <관상>의 리메이크다. 처음부터 아주 멀리 갈 수 있는 아이디어는 아니다.



<협상>은 이번 추석 시즌 한국 영화 중 유일하게 여성 주인공을 내세우는 작품이라고 홍보되고 있다. 현빈의 악역 변신도, 한국 최초로 협상전문가를 주인공으로 삼았다는 것도 홍보 포인트다. 미안하지만 이들은 모두 사실이 아니다. 협상전문가가 주인공이라면 그 협상과정이 인질극을 벌이고 있는 범인의 계획에 영향을 끼쳐야 할 것인데, 이 영화의 스토리엔 그런 게 없다. 당연히 여성주도 영화를 만든다는 계획에도 손상이 간다. 영화가 끝까지 인질범의 계획대로 진행된다는 건 현빈이 아무리 무자비한 살인범이라고 해도 결국 흔한 한국 영화 히어로에 불과하다는 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늘 봐왔던 JK 영화인 것이다. 이 결점이 이렇게 안 보일 수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고만고만하다’. 최근 추석 시즌 한국 영화들의 단점은 이 표현 하나로 정리될 수 있다. 모험을 기피하고 그들이 상상하는 진부한 관객에 호소하고 아이디어가 없다. 자신을 추석 영화로 정의하는 한 이 결점은 그대로 남을 것이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협상><물괴><안시성><명당>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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