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부외과’ 고수·엄기준, 실력은 있지만 힘없는 이들을 위해

[엔터미디어=정덕현] 당신의 심장은 무엇을 위해 뛰고 있는가. 또 누구를 위해. SBS 수목드라마 <흉부외과>는 그 소재를 다름 아닌 흉부외과에서 가져왔다는 점에서 다소 이런 문학적인 질문을 던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미 JTBC <라이프> 같은 드라마를 통해서도 소개되었듯이, 병원은 그저 환자를 돌보는 곳만이 아니라, 하나의 기업체가 되었다. 그러니 그 곳에서 벌어지는 의료행위는 모든 환자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지 않는다. 자본주의의 흐름이 어느새 병원까지 깃들어, 이제는 생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하나의 무서운 시스템이 되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똑같이 하나씩 갖고 있는 심장으로 유지되는 생명이지만, 돈과 권력의 차등에 따라 누군가는 계속 뛸 수 있는 기회를 얻고, 누군가는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차갑게 식어버릴 위기에 처한다. 그렇다면 그 심장을 다루는 흉부외과 의사들은 이런 상황 속에서 어느 쪽으로 심장이 뛸 것인가.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죽을 수 있는 힘없고 가난한 환자와 당장 하지 않아도 되지만 명령에 의해 당장 수술을 해주면 권력을 향해 올라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환자. 응당 의사라면 전자에 심장이 뛰어야하겠지만, 막상 그런 선택으로 겪게 되는 현실은 생각보다 혹독하다.



실력은 있지만 지방의대를 나와 스펙이 없는 박태수(고수)는 자신이 펠로우하는 의사 황진철(조재윤)의 잘못된 수술을 눈감지 못한다. 그래서 황진철을 징계 받게 하지만, 바로 그 일은 박태수에게 주홍글씨로 남아 어느 병원으로 가도 지워지지 않는 흠집으로 남는다. 갖은 핍박을 받으면서 노예처럼 병원의 펠로우 생활을 하지만 그가 버티는 이유는 식당 일을 하는 홀어머니를 위해 돈을 버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어머니가 쓰러져 당장 수술 받지 않으면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유일하게 손을 내밀어준 의사는 태산병원에서 역시 자신처럼 같은 학교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따돌림을 받지만 실력 하나로 버티고 있는 최석한(엄기준)이었다. 그렇게 간신히 어머니를 살리긴 했지만 확장성 심근증으로 심장이식을 해야만 하는 상황 속에서 박태수는 생명을 외면하지 못하는 의사로서의 삶을 살아가면서도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태산대 출신이 아니라 해원대 출신이고, 그래서 태산대 출신으로 이뤄진 병원의 성골 의사들에 의해 배척받으며 그들이 꺼리는 수술을 떠맡아 한다는 점에서 박태수는 최석한을 닮아간다. 워낙 수술 중 사망 건수가 많아 그것이 의사들의 생명 줄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위험한 환자는 받지 않으려는 구희동(안내상) 같은 의사들이 그 성골이다. 당장 생명이 위급한 환자들을 돌려보내는 그들의 심장은 권력을 향해 뛴다. 병원장 윤현일(정보석)은 대권후보의 심장수술을 하면서 그 수술이 성공하면 “돈이 얼만데”라고 말하는 의사다. 그에게 VIP들의 심장과 가난한 서민들의 심장은 다른 가격으로 매겨진다.

<흉부외과>는 그래서 병원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거기에는 병원 바깥의 우리네 현실이 담겨있다. 누구나 실력이 있다면 인정받는 것이 상식적인 세상이지만, 이 곳은 그 상식이 철저히 무너진 세상이다. 실력이 있어도 돈과 권력이 없으면 그 실력이 제대로 쓰이지 못하고 핍박받지만, 정반대로 돈과 권력이 있는 이들은 실력이 없어도 그 자리를 유지하며 실력 있는 이들을 노예처럼 부린다. 극화된 이야기지만 고개가 끄덕여지는 현실 인식이 아닐 수 없다.



<흉부외과>에는 ‘심장은 훔친 의사들’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드라마는 그 도입부분에 대권후보에게 이식될 심장을 훔쳐 도망치는 박태수의 이야기로 문을 열었다. 그는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된 것일까. 똑같은 심장이고 똑같은 생명이지만 권력자에게만 그 심장과 생명이 가는 그 부당함을 온몸으로 저항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진짜로 심장은 훔친 의사들은 박태수 같은 이들이 아니라 저 권력 있는 자들이 아닐까. 시청자들의 심장을 훔칠 가슴 뛰는 의사들의 이야기가 기대되는 대목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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