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의 낭군님’, 국민 ‘우쭈쭈’ 드라마가 될 가능성은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tvN 월화드라마 <백일의 낭군님>의 성공을 점친 이들은 많지 않았을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MBC <해를 품은 달>의 대성공 이후 수많은 퓨전사극이 등장했다가 이 맛 저 맛 아닌 맛 때문에 시시하게 끝난 경우가 많았다. 차라리 사극의 풍미 가득한 육전이면 나으련만 조미료 가득한 밀가루전 같은 맛만 보여준 퓨전사극들이 넘쳐났던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의 중반을 넘어선 지금 <백일의 낭군님>은 가파른 시청률 상승곡선을 그리며 점점 더 열광적인 사랑을 받는 중이다. 우선 이야기 자체가 널리 사랑받을 대중적인 소재다. 사람들은 대단한 사람이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백일의 낭군님>의 왕세자 이율(도경수) 역시 궁궐에서 노닐다 어느 날 기억소실 원득이(도경수)가 되어 개똥밭에 구르는 신세로 전락한다. 홍심(남지현) 역시 뼈대 있는 가문의 딸이었으나 아비가 왕권다툼의 희생양으로 살해된 후 신량역천 홀아비의 수양딸이자 언제 첩실로 들어갈지 모르는 마을의 최고령 원녀로 살아가는 신세다.



<백일의 낭군님>은 홍심의 양아버지가 꾸민 작전으로 기억소실의 원득과 홍심이 혼인 이후 벌어지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거기에 사극 특유의 궁궐 암투가 적절하게 녹아 있다. 그런데 이 드라마, 이야기의 뼈대가 탄탄한데 은근히 재치 있는 설정이 넘쳐난다. 특히 마을 사람들이 원득을 가리키는 명칭 ‘아쓰남’처럼 지금의 유머코드와 어울리는 패러디는 <백일의 낭군님>의 백미다. ‘먹색남의 50가지 그림자’에 이르면 배꼽 잡고 쓰러질 정도다.

<백일의 낭군님>에서 보여주는 생활 로맨스 역시 사랑스럽다. 비록 억지결혼이긴 하나 이들은 나름 사랑을 찾아간다. 기억소실의 손재주 없는 원득과 생활력 좋은 홍심이 투닥투닥 서로에게 빠져드는 훈훈한 이야기는 슬그머니 보는 이를 미소 짓게 만든다. 점점 풀려가는 고삐를 내려놓는 19금 느낌의 장면 역시 유머러스하게 처리하면서 이팔청춘의 사랑을 키득키득 볼 수 있다. 또한 왜곡되는 진실과 가르쳐진 거짓 사이에서 이러지도 못하는 홍심의 심리 역시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설정이라도 배우들이 그 캐릭터의 매력을 살리지 못하면 드라마의 재미는 반감된다. 그런 점에서 <백일의 낭군님>의 남지현과 도경수는 이 전래동화 같은 이야기의 재미를 살려내는 데 제 몫을 톡톡히 한다.

남지현은 이미 MBC <쇼핑왕 루이>를 통해 기억소실 재벌남 루이(서인국)를 길러본 경험이 있는 배우다. <쇼핑왕 루이>에서 산골소녀 고복실로 등장한 남지현은 조선시대 홍심으로 등장한다. 그녀는 이번 드라마에서는 쇼핑만 잘하는 현대판 ‘아쓰남’ 루이가 아닌 비단옷과 국밥을 밝히는 원득과 짝을 이룬다. 남지현은 그녀의 히트작과 비슷한 설정의 작품이지만 전작보다 더 능청스러운 연기를 보여준다. 특히 덤덤한 표정에 밝은 미소나 시무룩함, 퉁명스러움을 한 방울씩 떨어뜨리며 코믹과 슬픔의 감정연기를 오가는 것이 그녀의 특기다. 표정만 바뀌었을 뿐 오버하지 않는 연기인데 남지현은 이 드라마가 지닌 감정의 음정을 정확하게 짚어낸다.



그리고 원득의 도경수가 아니었다면 <백일의 낭군님>은 애청자들의 ‘낭군님’이 되지 못했을 것 같다. 도경수는 데뷔작에서부터 작은 체격과 대비되는 무거운 연기를 보여준 배우였다. 도경수의 연기에는 심장에 작은 폭탄을 숨긴 소년의 비애 같은 것이 담겨 있다. 영화 <카트>나 SBS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보여준 도경수의 짧지만 인상적이었던 연기는 <백일의 낭군님>의 주인공 원득을 통해서도 어김없이 드러난다.

특히 작품 자체가 무거웠던 전작들과 달리 도경수의 묵직한 목소리와 무게감 있는 연기가 코믹한 장면들과 맞물리면서 ‘빵빵’터지는 장면들이 많다. 이 배우 본인은 무표정하게 가끔은 강렬한 눈빛으로 으르렁, 으르렁대는데 보는 이는 웃음폭탄이 터진다. 더구나 도경수는 왕세자의 무의식이 흐르는 기억소실 ‘아.쓰.남’ 원득의 태도만 묘사하려 폼을 잡는 것이 아니다. 무게감과 무표정 속에서도 은근히 원득이 보여줘야 하는 몸 연기와 감정 연기까지 제대로 소화해낸다. 그냥 귀여운 외모 때문에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캐릭터를 찰떡같이 소화해서 사랑받는 것이다.



이처럼 <백일의 낭군님>은 사랑받을 요소가 많은 작품이다. 어떤 드라마들은 원득의 대사 “불편하다”처럼 재밌지만 너무 자극적이거나 메시지가 이야기를 눌러버려 불편하다. 하지만 <백일의 낭군님>은 누구나 ‘우쭈쭈’하는 마음으로 두 주인공의 로맨스를 지켜볼 수 있는 편안한 드라마인 것이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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