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각시별’ 어쩌다 민폐 된 채수빈, 이제훈 통해 성장한다는 건

[엔터미디어=정덕현] 가는 곳마다 사고가 터진다. 그래서 ‘인천공항 초유의 폭탄’이라고까지 불린다. 여객들과 실랑이가 벌어지는 건 다반사고, 스펙이 없다는 열등감 때문에 인정받으려 아등바등하다보니 또 다른 사고를 일으킨다. 혼자 행동하지 말라고 해도 인정받고 싶어 단독으로 행동하다 위험한 상황에 몰리고, 그런 그에게 그 여객서비스팀에서 더 일한 이수연(이제훈)이 조언을 해줘도 자기보다 입사일이 늦다는 이유로 그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SBS 월화드라마 <여우각시별>의 한여름(채수빈)은 이른바 ‘민폐 캐릭터’다. 그가 하는 일마다 사고가 터지고 그 때마다 여객서비스팀은 곤란한 상황에 빠진다. 일을 열심히 한다고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윗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실적을 올리려 애쓸 뿐이다. 그러다 보니 정작 해야 할 일상적인 일들은 그의 사수인 이수연의 몫처럼 보인다. 게다가 사건이 터질 때마다 그 일을 수습하는 이는 바로 이수연이다. 이러니 시청자들 사이에서 ‘민폐 캐릭터’라는 말이 나올 법하다.



제2공항청사로 근무 장소를 옮겨가서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하필이면 그 곳의 운영기획팀장으로 온 서인우(이동건)가 자신에게 징계를 내렸던 상사이고, 교통서비스팀장 이우택(정재성)은 자신이 그와 함께 일할 때 말끝마다 “여자가...”를 붙여 구박했던 인물이다. 절망적인 한여름은 입사동기인 고은섭(김로운)에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을 한다. “괜찮아. 너 지금 잘 하고 있어. 내가 진짜 그 말 한 번 들어 보려고 치사해도 참고, 힘들어도 웃고, 죽어라 ‘노오력’까지 하고 있는 데도 한번을 못 듣네.” 그러자 고은섭은 말한다. 궁상도 5분 이상 떨면 ‘진상’이 되는데, 궁상은 혼자 찌질한 걸로 끝나지만 진상은 ‘민폐’가 된다고.

그의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된 이수연은 그에게 듣고 싶은 말이 아니라 듣고 싶지 않은 말을 안 듣는 걸 우선해야 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즉 억울한 일이 있거나 부당하게 듣게 되는 말들이 있으면 소신 있게 부딪쳐보라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그가 늘 입에 “죄송합니다”를 달고 다닌 건 그런 문제가 있을 때마다 부딪치려 해보지 않았다는 방증이었다. 여객의 성추행 때문에 자기방어를 했을 때도 오히려 여객에게 폭력을 휘둘렀다며 자신이 책임을 지게 된 건 피하려고만 해서 생긴 일이었다.



<여우각시별>은 이처럼 열등감이 많아 인정을 받으려다 오히려 민폐가 되고 있는 한여름이라는 인물을 전면에 세운다. 하지만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는 그 민폐로 여겨졌던 인물이 이수연을 만나 조금씩 성장한다는 것이다. 해외에서 고가의 가방과 신발을 사 갖고 들어오다 면세품 위반 딱지를 붙이게 된 유명 정치인의 딸의 갑질 에피소드는 그래서 한여름이 어떻게 성장하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화장실에서 몰래 그 위반 딱지를 떼다 보안팀 나영주(이수경)와 실랑이를 벌이게 되고 결국 그 싸움에 한여름도 휘말리게 되면서 또다시 “죄송합니다”를 하게 될 상황에 처하게 되지만, 무릎 꿇고 사과하러 간 그 자리에서 오히려 “사과하세요”라고 자신의 소신을 밝힌 것.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건 이수연이 그에게 한 말 때문이었다.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조차 입 다물어 버리면 듣고 싶어 하는 말은 절대 듣지 못할 것”이라는 말.

사실 갑질을 하는 여객이 그 아버지가 유명 정치인이기 때문에 앞뒤 진위도 가리지 않고 가서 무릎을 꿇더라도 사과를 하라고 말하는 권희승(장현성) 본부장의 말은 씁쓸하게 다가온다. 요즘 세상에 그런 일이 벌어질까 싶으면서도 이미 우리는 비행기에서 벌어졌던 그 무수한 갑질 사례들을 신문지상에서 봐온 경험이 있다. 그러니 그런 꽉 막힌 저들만의 돈과 권력으로 이뤄진 갑질 세상 속에서 아무 것도 없는 신출내기 사회인이 부딪치기보다는 “죄송합니다”가 먼저 나오는 것이 무리도 아니라고 여겨진다.



다행스러운 건 이런 부당한 세상 속에서도 양서군(김지수)이나 이수연 같은 자기 소신을 굽히지 않고 밀고 나가는 인물들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갑질 고객 앞에서 사과하기보다는 “사과하세요”라고 말하는 한여름을 보며 그 두 사람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한여름은 이수연이 말했던 것처럼 그런 소신을 드러낸 이후에야 비로소 양서군으로부터 그 듣고 싶던 말을 듣게 된다. “괜찮아. 그래도 당신 같은 여직원 하나쯤 자기 목소리 내주니까 통쾌하더라. 잘했어.”

그 누구는 민폐가 되고 싶어 민폐가 될까. 가진 것들이 위계가 되는 세상에서 살다보니 쓸데없이 열등감에 사로잡히게 되고 그래서 인정받으려고 과잉행동을 하다 보니 사고를 친다. 평범함이 어째서 열등감이 되는 현실에 우리는 살게 된 걸까. <여우각시별>은 그 평범함을 가진 이들도 저마다 자신의 소신을 밝힐 수 있다는 걸 드러냄으로써 그것이 결코 열등한 것이 아니라는 걸 말한다. 어쩌다 민폐가 된 한여름이 조금씩 자기 목소리를 내고 그래서 하루하루 성장해가는 그 과정이 보고픈 건 그래서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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