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나래와 함께 풍성하게 돌아온 ‘풀 뜯어 먹는 소리’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tvN 예능 프로그램 <풀 뜯어 먹는 소리-가을편>은 여러모로 <삼시세끼>를 떠오르게 한다. 시골에 가서 농사를 짓는다. 봄 편 1화에서 정형돈이 말한 것처럼 무난한 사람들끼리 도시에서 느끼지 못하는 정, 여유로움, 함께 둘러앉아 먹는 소중한 한 끼를 나눈다. 그리고 두어 달 만에 반가운 마음으로 다시 찾아가서 봄철 지어놓은 작물이 그간 어떻게 성장했는지 지켜보고 수확하는 재미도 닮았다.

그런데 연예인들이 농촌에 내려와 농사를 짓지만 낭만이 아닌 진짜 시골 생활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일상 세계와 분리된 가상의 세계를 설정한 듯한 <삼시세끼>의 시골과 달리 <풀 뜯어먹는 소리>의 시골은 한태웅 군의 삶의 터전을 방송 배경으로 삼는다. 그래서 카메라 프레임 안으로 울타리를 치거나 <섬총사>처럼 마을의 이벤트가 된다기보다 출연진들은 농사 경력 8년 차의 중학생 농부 한태웅 군의 가족과 함께 생활하며 동네의 농사일을 돕는다. 그 과정에서 시청자들은 작물에 대한 공부와 칡소, 청란, 땅콩 농사, 무농약 배추 재배 등 농사일에 대한 정보, 농촌의 현실에 대한 이해를 얻게 된다.



연예인과 비연예인이 어울려서 그림을 만드는 예능은 <우리 집에 연예인이 산다> 시리즈나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보듯 새로운 일은 아니지만, 한태웅 군을 중심에 놓고 농사에 대한 보람, 농촌이 살맛나는 동네라는 지점을 보여주는 데서 특색과 볼거리가 피어난다. 농사를 예능으로 옮기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인지 이번 가을 편에서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보다 본격적으로 한태웅 군의 꿈과 포부를 한층 더 깊게 드러낸다. 아버지와 함께 13살 농부를 만나러 제주도로 건너가는 에피소드, 할아버지, 아버지와 함께 강원도로 송아지를 사러 다녀온 에피소드 등을 통해 슬로우라이프를 넘어선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한다.

그 덕분에 지난 봄편에서 농사일에 서툰 연예인들이 시골생활과 농사에 도전한 성장기에 집중하면서 다소 가려졌던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가 훨씬 선명해졌다. 출연 연예인과의 에피소드만큼이나 한태웅 군과 그 주변 이야기가 비중 있게 다뤄진다. 많은 예능들이 친자연주의, 킨포크 라이프 등과 맥락이 닿는 시골생활 예찬을 하지만 이런 장치와 지향, 장면들로 인해 더 이상 <풀 뜯어먹는 소리>와 <삼시세끼>나 <섬총사> 등과 비교하기 어려워졌다.



이런 변화가 가능해진 이유는 전적으로 박나래가 가세한 영향이 크다. 몸에 일이 밴대다가 매사에 열정을 갖고 긍정적으로 임하며 작업반장을 자처한다. 어떤 프로그램을 가든 자기 역할을 해내는 것을 넘어 리드를 해가고 있는 박나래는 스스로를 ‘농벤져스’라 칭하며 맏이로써 분위기를 이끌어간다. 리얼버라이어티 시대에 접어든 이후 가장 새로운 형태의 메인 MC감이다. 김진호와 송하윤이 기존 출연자인지 박나래가 기존 출연자인지 모를 정도로 녹아들어 사람들 사이사이를 좁히고, 몸에 경유가 들어간 건 아닌가 싶다는 태웅 군의 말처럼 밭일까지 능숙하게 해낸다.

그 덕분에 예능 차원의 재미를 위한 기획된 에피소드가 늘었다. 태웅 군이 노래자랑에서 부를 ‘둥지’ 안무부터 응원까지 박나래가 뼈대를 세운다. 막걸리 낮술, 새참으로 돼지고기를 구워먹을 때도 늘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건 박나래다. 농사를 싫어하는 아버지와 농사를 함께 짓는 게 소원이라는 태웅 군을 위해 판을 짜는 것도 그의 몫이다. 요리라는 콘텐츠도 갖고 있어서, 야끼소바라는 별미를 만들어내고. 포도 수확 품앗이를 다녀온 뒤 포도와 적양배추 담금주를 만들자고 제안하며 미리 준비한 엄청난 양의 재료들을 꺼내와 ‘미산리 큰 손’으로 활약한다.



이처럼 박나래의 가세는 농사와 농촌 이야기에 한정되었던 기존 에피소드에서 탈피해 태웅 군의 농사 이야기와 예능 차원의 재미라는 이원화된 볼거리 구성을 가능하게 했다. 박나래의 진행으로 인해 시즌1의 다소 심심하던 분위기, 하나의 팀으로 뭉쳐가기 위한 동력이 딸렸던 문제들을 해소됐으며, 스스로도 분량과 웃음을 많이 생산하는 것은 물론, 태웅 군 집에서 준비한 트럭 노천탕이나, 태웅 군의 다이어트를 위한 찬성의 아침PT 에피소드 등 농촌생활이라기보다 기획된 볼거리가 봄편보다 더 많이 등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학생 농부 한태웅 군은 농사에 대한 꿈을 품고 농촌 살리기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자 TV에 출연했는데 그 진정성이 의심받을 때 힘들다고 고백했다. 그래서일까. 두달 만에 돌아온 <풀 뜯어먹는 소리>는 단순히 농촌생활에 푹 빠지고 열심히 하는 것을 넘어서 박나래를 중심으로 보다 끈끈한 리얼버라이어티의 모습을 갖추는 동시에 한태웅 군의 삶과 생각을 들여다보는 다큐멘터리의 기질도 보인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 솔선수범하고, 모두의 파이팅과 기분을 끌어 올리고, 웃음을 생산하는 역할과 진행을 동시에 하는 흔치 않는 능력을 보여주는 덕분에 다작 중이지만 질리지 않고, 지난 봄편보다 기획이 많이 들어갔지만 튀거나 어색하지 않다. <풀 뜯어먹는 소리>는 박나래와 함께 더욱 풍성하게 돌아왔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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