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이혼’, 역사상 최고의 리메이크 드라마 될 수 있을까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또 일본드라마 리메이크인가 싶지만 KBS 새 월화드라마 <최고의 이혼>에는 특별히 눈여겨볼만한 요소가 많다. 우선 성공한 리메이크 사례 중 하나인 tvN <마더>의 원작자 사카모토 유지가 쓴 탄탄한 원작이 있다. 결혼을 경험했거나 염두에 둔 이들이 공감할만한 현실적인 토대도 눈길을 끈다. 최근 들어 판타지와 장르물이 주류를 이루는 만큼 분명한 차별점으로 다가온다. 여기에 이름만으로도 신뢰감을 주는 차태현과 배두나의 만남은 더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이엘과 손석구 역시 원작의 팬들이라면 원작 배우들의 이미지를 바로 연상할 정도로 배역에 잘 어울린다. 이번 주 [TV삼분지계]가 선택한 작품은 <최고의 이혼>이다.



◆ 생각하게 만드는 드라마라서 좋다

휘루(배두나)는 나가사키 카스텔라 때문에 이혼했다. 석무(차태현)는 그리 알고 있었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이혼 사유가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일찍 들어올 수 없느냐’는 휘루의 문자에 대한 답 때문이었다. 절박한 상황에 처한 휘루의 구조 신호에 ‘베란다 화분 괜찮아? 잘 들여놔’라고 답한 석무. 소통과 공감의 결여. 충분한 이혼 사유다. 아마 휘루가 위험하다는 걸 알았다면 석무는 아마 당장 달려왔겠지. 휘루는 그런 사람이니까. 애초에 휘루에게 정을 준 것도 휘루가 애처로워서가 아니었나.

지금 석무가 연민을 느끼는 상대는 유영(이엘)이다. ‘사랑은 하는 게 아니라 빠지는 거야’라며 나쁜 남자에게 휘둘리는 유영이 석무는 답답하기만 하다. 그러나 예전의 행복하고 생기 있었던 너로 돌아오라고 외치는 석무에게 유영이 던진 말이 충격적이다. “10년이 지나도 아무 것도 모르시네. 나 너와의 사이에 좋은 추억 같은 거 하나도 없어. 헤어질 때 생각했어. 이런 남자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이혼 결심을 한 휘루의 “당신은 아마 평생 모를 거야. 그만할래. 이제 당신 필요 없어. 완전 개운하다!”와 쌍벽을 이루는 명대사다.



휘루가 이혼하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속이 다 시원했다. 사람 변하는 거 아니야. 고쳐서 살기 너무 어려워. 맞는 사람 다시 찾으면 되는 거지 뭐. 그리고 바로 이어서 tvN <선다방>이 방송됐다. <선다방>은 단순한 연애 매칭 프로그램이 아니다. 결혼을 전제로 한 소개가 이루어진다. 재개장 첫 날 네 쌍의 남녀가 ‘올하트’를 기록했다. 휘루의 이혼 결정에 잘했다며 박수를 쳤던 내가 이번엔 네 쌍의 열린 결정에 박수를 치고 있다. 늙어가는 나이지만 아직 잘 모르겠다. 아니 점점 더 모르겠다. 결혼을 해야만 하는지, 이혼이 능사인지, 아이가 꼭 필요한지. KBS <최고의 이혼>, 생각하게 만드는 드라마라서 좋다.

방송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 원작의 철학을 잘 살린 리메이크

<최고의 이혼> 주인공 석무(차태현)와 휘루(배두나)는 결혼한지 3년이 채 되지 않는 부부다. 첫회 시작부터 내내 티격태격하던 부부는 엔딩신에서 결국 이혼했다. 드라마 속 부부라면 보통 치정, 배신, 폭력과 같은 극적인 사유가 뒤얽힌 ‘사랑과 전쟁’을 최소한 몇 회는 찍고 나서야 파국에 이를텐데, 이들은 결혼할 때와 마찬가지로 이혼 역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치른다. 다만 이들은 알고 있다. 물방울이 같은 자리에 꾸준히 떨어지면 바위가 패이듯 “그냥 평범한 얘기” 속에도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이 쌓일 수 있다는 인생의 진리를.

사카모토 유지의 원작이 높은 평가를 받았던 것도 그처럼 무뎌 보이는 일상, “그 안에 담긴 복잡한 맥락”을 예리하게 그려냈기 때문인데 한국판도 그 핵심 철학을 놓치지 않는다. 특히 요즘처럼 대부분의 드라마가 점점 ‘거대하고 극적인 이야기’에 집착하는 시대에, 상대적으로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일상의 큰 의미를 돌아보게 만드는 이야기의 존재는 꽤 소중하다.



하지만 단점도 있다. 국내의 리메이크 드라마에서 흔히 발견되는 ‘예쁜 그림’에 대한 집착이 이 작품에도 여전하다. 대표적 사례로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의 폐쇄공포 정서를 그대로 간직한 원작의 좁고 답답한 집이 한국판에 와서는 신경써서 고른 소품들의 세심한 배치가 눈에 훤히 보이는 작위적 느낌의 주거 공간으로 바뀌었다. 원작의 지저분하고 작은 방이 한국에 건너와 이층집의 넓은 방으로 변신한 KBS <내일도 칸타빌레>의 악몽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상적인 리얼리티가 핵심인 작품에서는 아쉬운 대목이다.

칼럼니스트 김선영 herland@naver.com



◆ 차태현과 배두나의 호흡으로 꿴 첫 단추

해외 드라마를 리메이크하는 작품들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종종 ‘원작과는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를 먼저 따지곤 한다. 지나치게 원작을 고스란히 옮긴 탓에 굳이 새로 만든 의미가 없어지지는 않는지, 혹은 원작과 너무 달라진 탓에 리메이크작을 표방하는 게 무의미해지는 건 아닌지 걱정하기 때문이다. 일본 후지테레비에서 2013년 방영된 동명의 드라마를 원작 삼은 KBS <최고의 이혼> 또한 비슷한 기대와 우려를 안고 출발했다. 배두나가 제작발표회에서 말했던 것처럼, 이미 마스터피스의 지위에 올라선 원작을 리메이크하는 건 자칫 안 하는 것만 못한 일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첫 주 방영분 4회만 보고 말하기는 다소 이른 감이 있지만, <최고의 이혼>의 한국판 리메이크는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좋을 듯하다. 원작이 지니고 있던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맥락이 사라진 점이나 ‘시할머니와 친구처럼 지내는 며느리’라는 설정에서 묻어나는 어쩔 수 없는 일본색은 이래저래 아쉬운 지점이다. 그러나 휘루(배두나)가 단순히 결혼생활에 염증을 느끼는 인물이 아니라 그림동화 작가라는 명확한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설정이나, 가정의 붕괴를 경험 중인 석무(차태현)의 직업이 집의 안전을 책임지는 보안경비업체 직원이라는 아이러니 등은 한국판이 보여준 소소한 성취의 일부다.



한국판이 원작엔 없던 새로운 이야기를 덧붙이면서도 큰 군더더기 없이 스토리를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은 많은 부분 극을 이끌어가는 배두나와 차태현의 호흡 덕이다. 지표면에서 반 뼘쯤 떠 있는 듯한 인물인 휘루 그 자체로 분한 배두나와, 막 방금 트위터에서 튀어나온 듯한 개인주의적 인간혐오자 석무를 연기하는 차태현의 호흡은 이 낯선 이야기가 진짜로 서울 은평구 어디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인 것처럼 느끼게 만들어 준다. 단언하기는 너무 이르지만, 잘 하면 <최고의 이혼>은 지금껏 한국에서 제작된 리메이크 드라마 중 가장 흥미로운 작품이 될지도 모르겠다.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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