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미네 반찬’, 김수미표 레시피가 왜 집밥에 최적인가 하면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처음에는 tvN <수미네 반찬>이 김수미를 전면에 내세운 이유가 그 독특한 캐릭터 때문인 줄로만 알았다. 알다시피 김수미는 어딘가 욕을 해도 기분 좋은 느낌의 엄마 같은 그런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면이 있다. 실제로 이런 캐릭터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김수미가 심심찮게 출연해 웃음을 줬던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요리 프로그램이 하필이면 김수미를 거기 세워둔 뜻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집밥’이라는 본질에 가깝게 다가가려는 의도가 들어 있었다. 김수미는 알다시피 요리연구가도 아니고 셰프도 아니다. 그저 가족을 위해 요리를 해왔던 엄마일 뿐이다. 그런데 바로 이 점이 ‘집밥’이라는 요리의 특징에는 가장 최적인 선택이 된다.



<수미네 반찬>이 진짜 집밥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는 걸 역설적으로 알려주는 것이 김수미가 시전하는 이른바 ‘요만치’ 계량법이다. 한 숟가락, 반 컵 같은 구체적인 레시피가 아닌 ‘요만치’, ‘는 둥 만 둥’, ‘노골노골’, ‘색깔 봐가며’ 같은 김수미의 레시피는 요즘 같은 이른바 ‘스마트 레시피’가 넘쳐나는 세상에 역행하는 느낌마저 준다. 그래서 김수미의 그런 레시피를 따라하는 이 프로그램의 셰프들은 처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 당황의 순간들은 예능 프로그램이기도 한 이 프로그램의 웃음이 되어주기도 했다. 김수미가 ‘요만치’라고 얘기할 때 옆에서 장동민은 그 정확한 계량을 자기 식으로 ‘번역(?)’해주며 셰프들에게 ‘완장 찬’ 김수미 측근 캐릭터로 웃음을 만들었다. 그런데 그 계량법은 단지 웃음만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어째서 엄마들이 집에서 요리를 할 때보면 마치 몸에 익은 듯 설렁설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저마다의 맛을 낼까 하는 그 비밀이 거기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언젠가부터 요리책을 대신하기 시작한 인터넷에 널려 있는 ‘스마트 레시피’들은 저마다 정확하게 계량된 재료의 수치들을 알려준다. 그래서 그런 수치들은 요리 초보들에게는 절대적인 것처럼 다가오는 면이 있다. 물론 그렇게 요리를 시작하게 만들고, 어느 정도의 맛을 담보해준다는 건 이러한 스마트 레시피들의 중요한 효용가치다.

하지만 입맛이라는 건 집집마다 다르고 개인마다 또 다 다르기 마련이다. 사실상 요리는 계량화될 수 없다. 결국 엄마들이(아니 꼭 엄마가 아니더라도 집에서 요리를 하는 이들이) 가장 맛있는 집밥을 만들 수밖에 없는 건, 그 집에 맞는 입맛에 맞춰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집은 마늘을 더 많이 넣고, 어느 집은 좀 심심하게 간을 하기도 하며, 어느 집은 매운 맛을 좋아하기도 한다. 결국 <수미네 반찬>이 내세우는 ‘요만치’ 계량법이 어떤 면에서는 이렇게 저 스스로 입맛을 맞춰나가는 집밥에 있어서는 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점은 이전에 tvN에서 방영됐던 <집밥 백선생>과는 정반대의 느낌이다. <집밥 백선생>에서 백종원은 ‘그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된다’며 정확하게 계량된 레시피를 소개한 바 있다. 그래서 요리를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남자들이나, 요리 무식자들도 그대로 따라함으로써 신기하게도 맛을 내는 음식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요리 초보들에게 이 프로그램이 각광받았고, 특히 그 화학공식 같은 요리법은 남성들도 열광하게 만든 이유였다. <집밥 백선생>은 실로 요리 초보들에게 요리에 입문하게 만든 공적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남는 한계는 역시 계량화된 레시피가 절대적인 것처럼 오인되면서 생겨날 수 있는 ‘획일화’의 문제다. 이건 <집밥 백선생>의 문제라기보다는 이제 어디서든 인터넷을 검색해 레시피를 찾아내고 그대로 요리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가는 이른바 ‘스마트 레시피’ 시대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그렇게 정확한 레시피만을 따라하다 보면 내게 맞는 맛을 찾아내기가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이는 확장해서 생각하면 프랜차이즈 음식점들의 음식들이 갖는 ‘맛의 획일화’의 문제로도 귀결된다. 우리가 프랜차이즈 음식들이 맛은 있지만 한두 번 먹는 정도이지, 역시 집밥을 찾게 되는 건, 내게 맞는 맛이 나에게 맞춘 저마다의 요리법에서 나오는 거라는 걸 부지불식간에 몸이 알고 있어서가 아닐까.

그래서 <수미네 반찬>이라는 프로그램이 다시 보인다. 거기 ‘요만치’라고 얘기함으로써 저마다의 기준에 맞추게 하려는 김수미의 레시피가 다시 보인다. 또 셰프들이 그대로 따라 했는데도 저마다 맛이 다르게 나타나는 요리들이 의미하는 바를 다시 보게 된다. 집밥의 맛이란 그렇게 하나로 일반화 혹은 획일화될 수 없는 거라는 걸, 이 프로그램이 셰프나 요리연구가가 아닌 한 엄마의 레시피를 그대로 시연함으로써 의도치 않게 보여주고 있어서다. 넘쳐나는 스마트 레시피의 세상에서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봐야할 지점이 아닐 수 없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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