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수살인’, 김윤석과 주지훈의 명연기를 보는 것만으로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찬(贊)△.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영화 <암수살인>이 손익분기점인 200만 관람객을 넘어섰다. 영화는 기존 형사물과 다른 플롯을 취하기 때문에, 장르적 쾌감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다소 낯설게 느껴진다. 그러나 영화는 새로운 방식의 몰입감을 선보이며, 관객들을 기이한 두려움과 안도감의 세계로 끌고 간다.



◆ 실화를 옮긴 성공적인 플롯

영화 <암수살인>의 가장 놀라운 점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12년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소개된 이두홍(가명) 사건은 충격적이었다. 유흥주점 여종업원을 살인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이두홍은 부산경찰청 마약수사과 김정수 형사에게 자신이 11건의 살인을 더 저질렀다는 제보를 해온다. 이후 김정수 형사는 자백뿐인 그의 살인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수사에 매진한다.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고 강한 호기심을 느낀 김태균 감독은 부산에 내려가 김정수 형사를 직접 만났다. 이후 감독은 1년 동안 10차례 부산을 오가며 취재를 벌였고, 6년 만에 공들인 작품을 세상에 내놓는다. <암수살인>은 사건과 인물의 묘사는 실제와 다소 달라졌지만, 영화의 분위기는 최대한 사실주의적인 맛을 살렸다. 절제된 촬영과 연출로 장르적인 멋보다 사실적인 느낌에 주력했으며, 극적인 긴장감은 잔혹한 스펙터클보다 인물들 사이에 맞붙는 팽팽한 기싸움으로 채워나갔다. 그 결과 영화는 폭력을 그대로 전시하는 감각적인 잔혹함에 매몰되거나 공권력을 향한 과도한 공분에 휩싸이지 않는다.



영화 <암수살인>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긴장을 만들어나가는 방식이다. 두 사람의 밀고 당기는 진실게임으로 구성되는 플롯이 단순치 않다. 우선 자신의 여죄를 털어놓는 강태오(주지훈)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강태오는 일말의 뉘우침도 없이 자신이 벌인 끔찍한 살인을 아무렇지도 않게 술술 풀어놓는다. 이것을 듣기 위해 불려나온 김형민(김윤석)은 복잡한 생각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첫째, 그의 의도가 무엇일까. 둘째,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셋째, 하필 왜 나한테 이걸 털어놓을까.

처음엔 단순하게 생각한다. 일단 그가 원하는 것은 영치금과 잡다한 물건들이다. 그와의 첫 대면인 칼국수 집에서도 돈을 요구했던 것처럼. 물론 말이 된다. 과시욕이 강한 그는 감방에서도 ‘범털’이고 싶었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옥바라지해줄 형사가 필요하다. 형사는 강태오가 원하는 것을 해주면서 그의 진술을 더 듣는다. 형사의 경험상 강태오의 말은 실제로 해보지 않았다면 알 수 없는 디테일한 내용들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일단 믿어야지. 하지만 끝까지 의심해야지.” 김형사가 세운 방침이다.

하지만 그 믿음과 의심의 길이 순탄치 않다. 신고도 되지 않은 채 세월에 풍화되어버린 증거들을 찾기가 너무 힘들다. 일단 시체를 찾아야하고, 피해자가 누군지를 밝혀야하지만, 그 조차 쉽지 않다. 영화는 중반 이후, 강태오가 원하는 것이 수사와 재판에 혼선을 주어 원래 사건을 뒤엎으려는 계략이라는 말을 들려줌으로써, 김형사와 관객을 더 큰 혼란에 빠뜨린다. 그리고 그 예측이 재판을 통해 일부 증명되는 것을 보여준다. 김형사는 부유한 자신이 강태오에게 이용당하는 타겟이 되었음을 느끼지만, 수사를 그만 둘 수 없다.



◆ 김형사는 왜 수사를 계속했을까

영화는 김형사의 곤경을 보여준다. 형사들의 말에 따르면, 그런 종류의 제보를 받는 일이 그리 드물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수사에 착수하는 일은 드물다고 한다. 일단은 그의 말을 믿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미 범죄자로 복역 중인 사람의 다른 범죄들을 캐는 것은 사회적인 관심사항도 아니고, 형사로서 실적이 되지도 못한다. 게다가 형사가 수사를 위해 범죄자와 거래하는 것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재판 장면은 굉장한 긴장과 낭패감을 자아낸다. 김형사는 진실을 짜 맞추어 혐의를 입증하는데 실패할 뿐 아니라, 범죄자와 거래했음이 드러나면서 애써 모은 증거들도 모두 쓰레기가 될 위기에 놓인다. 김형사는 자신이 강태오에게 돈을 주었음을 담담히 털어놓는다. 왜 강태오에게 자기 돈을 써가면서까지 수사를 계속했는지 묻는 질문에 김형사는 “형편이 되니까”라고 답한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그의 집착이 이해되지 않는다.



하지만 왜 수사를 계속했는지를 밝히는 김형사의 말은 본원적인 울림을 지닌다. “만약 강태오의 말이 참이면 그는 피 맛을 본 연쇄 살인마이기 때문에, 20년 복역 후 다시 세상에 나오게 두면 안 된다. 죽은 피해자들은 얼마나 끔찍한 공포 속에서 죽어 갔겠나. 만약 그의 말이 모두 거짓이면 나 하나 바보 되는 것이니까 괜찮다.” 라는 그의 논리는 사소한 시비를 무색하게 만든다. 그의 행위가 자신의 옳음을 증명하기 위한 아집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피해자들의 입장과 공동체의 안전을 중심에 둔 사고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형사로서 이해관계나 실적에 연연하지 않고, 또 인정받지 못함을 쿨 하게 받아들이면서, 자신이 믿는 가치를 향해 뚜벅뚜벅 나아가는 모습은 숭고함을 느끼게 해준다. 이런 느낌은 기시감을 지닌다. 곽경택 감독의 <극비수사>에서 같은 김윤석이 연기했던 형사는 모두가 범인 검거라는 실적을 향해 달려갈 때, 혼자서 피해자를 구하기 위해 달려가면서도 자신의 정의감에 도취되지 않는 성숙함을 보여주었다. 영화가 끔찍한 사이코패스 범죄자와 다수의 살인이 수 년 동안 아무도 모르게 묻혔던 공권력의 공백을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기묘한 안도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김형사의 얼굴로 표상되는 인간성에 대한 믿음 덕분이다.



◆ 주지훈과 김윤석의 연기 격돌

영화 <암수살인>에서 가장 빛나는 것은 배우들의 명연기이다. 역대급 살인마를 연기하면서 <아수라>이후 더욱 깊어진 악역을 보여준 주지훈의 연기는 놀랍다. 부산 출신이 아님에도 공들인 사투리 발성을 보여줄 뿐 아니라, 하층민 출신의 껄렁한 불량기와 과시적인 태도, 그리고 순간적으로 분노를 표출하면서 희번덕거리는 눈빛은 과연 “판정불가”로 판정받은 섬뜩한 강태오의 캐릭터를 생생하게 표현해낸다. 이제 주지훈을 보고 드라마 <궁>이나 <서양골동양과자점-앤티크>에 나왔던 달달한 왕자님을 떠올릴 관객은 드물 것이다. 올해 <신과 함께1, 2><공작><암수살인>으로 이어지는 화려한 필모그래피를 보인 주지훈에게 <암수살인>은 그 중에서도 필모의 정점을 찍은 작품으로 기록될 것이다.

한편 섬세한 표정연기로 영화 전체를 끌어가는 김윤석의 안정된 연기도 경탄스럽다. 이해할 수 없는 살인마가 풀어놓는 이야기를 감정적인 동요 없이 들으면서 물밑에서 밀려드는 온갖 종류의 감정들이 섬세하게 표현된다. 즉 살인마를 마주하고 끝임 없이 머리싸움을 해나가야 하는 김형사의 복잡한 속내가 김윤석의 미묘한 표정변화를 통해 감지된다. 김윤석의 연기는 자신의 몫뿐만 아니라, 상대의 연기를 끌어내고 받쳐주는 역할까지 해내면서 영화전체를 가득 채운다. 김형사가 체현하는 신념이 과장되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설득력을 지니는 것도 그가 어깨에 힘을 뺀 채 주조해놓은 캐릭터가 공감되기 때문이다. 다른 조연이나 단역을 맡은 배우들의 연기도 고루 자연스럽고 절제되어 있는데, 이는 감독의 디렉션이 매우 적절했음을 말해준다.



영화 제작에 앞서 실제사건의 피해자 유족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지 않은 오점을 남겼지만, 영화 전체의 만듦새와 메시지는 훌륭한 편이다. 김윤석과 주지훈의 명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영화적 쾌감이 상당하며, 영화가 최종적으로 전하는 메시지도 윤리적이다. 살인자는 죽었어도 수사는 계속됨을 알리는 마지막 자막은 성실함에 대한 경종을 울린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암수살인>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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