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놈’과 ‘암수살인’, 기대감과 완성도의 차이가 만든 성패

[엔터미디어=정덕현의 그래서 우리는] 마블이라는 이름만 듣고도 영화 <베놈>은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안티 히어로다. 당연히 마블의 팬이라면 <데드풀> 같은 작품을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기대한 만큼 그 실망감도 컸기 때문일까. 초반 마블이라는 이름으로 화제를 일으키며 채워지던 영화관은 차츰 “생각보다 별로”라는 입소문을 타며 비워지기 시작했다. 결국 <베놈>은 전혀 예상치 못한 복병 <암수살인>에 의해 박스오피스 정상의 자리를 내주었다.

<암수살인>은 이러한 <베놈>의 흐름과는 정반대로 흘러갔다. <암수살인>은 이미 영화가 시작되기 전부터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는 사실 때문에 유족들의 반발에 직면하면서 논란이 무성했다. 과거 같으면 이런 노이즈 또한 마케팅적으로 유리할 수도 있었겠지만, 요즘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노이즈 마케팅에 관객들은 잘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노이즈는 그 자체로 흥행에 걸림돌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영화가 개봉되기 직전 유족들과 원만히 문제들이 해결됐고, 개봉된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은 호평으로 이어졌다. 애초에 기대감이 꺾였던 터라, 의외로 괜찮은 완성도에 관객들이 반응한 것이다. <베놈>의 하강곡선과 <암수살인>의 상승곡선은 이처럼 기대감과는 정반대 흐름으로 흘러갔다.

결국 이런 희비쌍곡선이 만들어진 가장 큰 원인은 영화의 만듦새에 있다. <베놈>은 그 강렬한 안티 히어로의 등장을 기대했던 관객들에게 초반 너무 지루한 드라마들을 보여줬다. 캐릭터의 탄생과정을 담는 것이지만, 어느 정도의 볼거리를 기대했던 관객들에게 열혈 기자 에디 브록(톰 하디)이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그 과정들을 너무 지루하게 설명하려 했다.



하지만 결정적인 문제는 외계 생물체인 ‘심비오트’와 공생하게 되는 에디 브록의 이야기가 그다지 개연성이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본래 이 베놈은 악당에 훨씬 가까워야 하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착해지며 지구를 위협하는 자신들의 종족 심비오트들과 싸우는 히어로로 바뀐다. 원작에서 베놈은 훨씬 더 강력한 악당의 모습을 갖고 있다. 그러니 이렇게 착해진 베놈에 원작을 본 마니아들조차 호응을 하지 못하는 결과가 만들어졌다. 15세 이상 관람가가 아니라 청소년 관람불가로 애초에 기획되어 만들어졌어야 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한편 <암수살인>은 지금껏 우리가 봐왔던 연쇄살인이 등장하는 형사물의 장르적 틀을 과감하게 깸으로서 신선함을 안겨주었다. 이미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소개됐던 사건을 소재로 하고, 그 탄탄한 취재를 바탕으로 허구가 가미되어 만들어진 작품이어서 그런지, 감독은 괜한 장르적 폼을 잡지 않는다. 대신 스스로 연쇄살인을 저질렀다며 감옥에서 형사를 움직여 이용하려는 살인범과, 자신이 바보가 되어도 좋다며 끝까지 그 살인범의 증거를 찾아 수사를 하는 형사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려낸다.



굉장한 액션이나 볼거리에 치중하기 보다는 살인범과 형사 사이에 만들어지는 팽팽한 심리적 대결구도로 흘러간다는 점은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이 호평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였다. 거기에서 영화가 이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작품을 통해 담아내려는 진정성 같은 걸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베놈>의 추락과 <암수살인>의 상승은 그 기대감과 완성도의 괴리에서 가속된 면이 있다. 기대감이 높았던 <베놈>은 의외로 완성도가 낮았고, 기대감이 적었던 <암수살인>은 괜찮은 완성도에 진정성까지 돋보였다. 이러니 성패가 갈릴 수밖에.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영화 <베놈><암수살인>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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