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의 장혁, ‘돈꽃’의 옴므파탈에서 다시 ‘추노’로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배우 장혁에게 2018년의 시작은 특별했을 것이다. 마흔 넘은 중견의 남자배우가 본인의 캐릭터에서 새로운 색을 입히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장혁은 KBS <추노> 이대길의 성공 이후 계속해서 연기의 패턴이 겹친다는 평가를 받아온 배우였다.

장혁의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억울한 면이 있겠으나 일면 수긍이 가는 평가였다. 특히 이대길 이후 굳어진 특유의 쉰 목소리 발성에는 호불호가 확실히 갈렸다. 판소리 명장도 아닌데 울대뼈로 성대를 긁어대듯 허스키하게 울부짖는 그의 연기는 부담스러운 면이 있었다.

사실 테스토스테론을 폭발시킬 때 빛이 나는 남자 배우들과 장혁은 그 결이 좀 다르다. KBS <뷰티풀 마인드>의 마음 없는 의사 이영오처럼 조용하고 정적일 때 이 배우 특유의 무겁고 나른한 남성적인 분위기가 살아나는 것이다.



2017년 말에 시작해 2018년 초에 종영한 MBC <돈꽃>의 주인공 강필주는 장혁 특유의 분위기를 매력적인 캐릭터로 완성해낸 인물이다. 이미 MBC <운명처럼 널 사랑해>에서 장혁의 색다른 매력을 잡아낸 김희원 PD는 여성 프로듀서의 섬세한 미감으로 중견배우 장혁을 새롭게 가공하는 데 성공했다.

강필주의 장혁은 이전의 장혁이 보여준 장점을 좀 더 그윽하고 섹시하게 만들어냈다. 그건 비단 장혁이란 배우의 남성적인 마스크 안에 담겨진 아름답고 섬세한 이목구비를 카메라로 잡아내서만이 아니었다. <돈꽃>에서 강필주는 빠르고 거칠게 움직이지 않는다. 느리고, 교묘하며, 냉소적으로 미소 짓지만 그 때문에 수많은 주변인물들이 그에게 빨려든다.

어쩌면 <돈꽃>은 강필주라는 옴므파탈이 재벌가의 속물 정말란(이미숙)과 정말란의 아들 장부천(장승조), 장부천의 아내이자 순수의 상징이며 과거의 첫사랑인 나모현(박세영)을 유혹하는 스토리이기도하다. 그것도 천박하고 육체적인 방식이 아닌 섬세하고 아름답고 은밀한 방식으로. <돈꽃>의 성공으로 40대의 중견배우 장혁은 과거 장혁이 얻지 못했던 컬러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돈꽃>의 종영 이후에도 그 여운이 오래 남아 있을 만큼 말이다.



하지만 장혁은 옴므파탈에서 벗어나 공무원 배우처럼 계속해서 2018년 새로운 드라마에 도전했다. 하지만 그 선택지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것이 사실이다. 그건 비단 시청률 때문만은 아니다.

SBS <기름진 멜로>의 조폭 출신 중국집 사장 두칠성은 굳이 장혁이 하지 않아도 좋은 역할이었다. 이 드라마에서 두칠성은 젊은 남녀주인공의 로맨스 요리를 위한 돼지기름 같은 캐릭터에 불과했다. 굳이 장혁이 하필 이 캐릭터를 강필주 이후에 왜 선택했는지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코믹한 캐릭터로의 변신이 그리 급하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최근 방영중인 MBC <배드파파>의 유지철은 2018년 장혁이 세 번째로 선택한 드라마다. <배드파파>에 이르면 장혁은 공무원이 아니라 정말 노예 배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열심히 달리는 배우인 것만은 틀림없다. 하지만 2018년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 달리기가 아직까지는 그다지 성공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배드파파>는 전직 복싱 챔피언 유지철이 특별한 약을 통해 어마어마한 괴력을 가진 파이터로 변신하는 이야기다. 뭔가 <클레멘타인>에 <어벤져스>를 믹스한 듯 위태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드라마다.



어쨌거나 이 드라마에서 장혁은 가족에서 사랑받지 못하는 궁상맞은 아빠로 등장한다. 사실 <배드파파>는 판타지 소재지만 일상의 생활연기가 깨알같이 리얼해야 레알 빛이 나는 드라마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장혁은 삐걱거린다. 장혁이 <추노>나 SBS <뿌리 깊은 나무>같은 사극에서 돋보였던 이유는 이 배우가 무언가 극적이고 정적인 분위기에 어울리는 매력을 지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장혁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일상적이고 지질한 연기를 능청맞게 소화했던 배우는 아니었다.

<배드파파>에서 장혁의 연기는 무언가 과장되고 어색한데, 그것이 일상의 평범한 남자와는 어딘가 괴리감이 느껴진다. 그 때문에 드라마는 부산스럽고 집중하기 힘들며 캐릭터와 배우의 매력 모두 찾기 힘들다. 또한 장혁 차제가 스파링 위에 헐벗은 모습보다 수트를 차려입었을 때 훨씬 더 멋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래저래 <배드파파>는 배우의 단점을 모두 노출시키는 안타까운 경우다. 더구나 <배드파파>에 이르면서 2018년의 옴므파탈 강필주에 대한 기억마저 휘발되어 날아가 아쉬움이 크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MBC,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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