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어’의 통쾌함을 편히 즐길 수 없게 만드는 것들

[엔터미디어=정덕현] OCN 주말드라마 <플레이어>는 전형적인 케이퍼무비(범죄자들이 모여 무언가를 강탈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하는 영화 장르) 형태를 가진 드라마다. 사기꾼, 해커, 드라이버, 파이터 등이 모여 권력을 이용해 모은 더러운 돈을 터는 이른바 ‘스틸 액션 드라마’.

그래서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는 명백하다. 현실에서는 범죄를 저질러도 돈과 권력으로 빠져나가고 심지어 떵떵거리며 사는 그들을 드라마의 판타지를 통해서나마 통쾌하게 응징하는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답답하게 여겨왔던 ‘현실의 사건들’을 드라마 속으로 끌어오는 작업이 전제된다.

정치권에까지 번진 미투운동을 연상시키는 정치인의 비서 성추행 장면이 드라마 속으로 들어오고, 차기 대권후보인 그 정치인을 비호하는 내조자인 양 사실상 범죄를 저지르는 후보자 아내 류현자(왕지혜)와 인권변호사를 위장해 피해자들을 돕는 척하며 사실은 피해자들이 가져오는 그 권력형 범죄의 증거를 인멸하는 진용준(정은표) 같은 인물이 등장한다.



차기 대권후보와 그 비호세력들이기 때문에 검찰 내부에서조차 줄을 대는 상황이니, 범죄를 저질러도 조사가 이뤄지지 않는다. 그러니 이러한 공적 정의로는 해결되지 않는 일들을 해결하는 사적 정의를 추구하는 플레이어들이 필요해진다. 물론 이들이 전적으로 정의를 추구하기 위해 이 일에 뛰어드는 건 아니다. 그들을 움직이는 건 돈이다. 나쁜 놈들이 모은 더러운 돈을 훔치는 것이 목표다.

이 부분은 자본주의 세상에서 실질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이 정의에 대한 사명감 같은 가치가 아니라 돈이라는 걸 확연히 보여준다. 나쁜 놈들을 움직이는 것도 돈이고 그들을 응징하는 이들을 움직이는 것도 돈이다. <플레이어>는 그래서 부지불식간에 세상의 정의가 이상적인 추구만을 통해 구현되는 것이 아니라 돈과 힘 같은 현실적인 것들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걸 말하고 있다. 물론 ‘플레이어들’을 이끄는 강하리(송승헌)는 자신의 아버지의 죽음과 연관된 보다 강력한 정의에 대한 욕구를 점차 드러낼 것이지만.



또한 <플레이어>는 심각하고 진지한 추적을 하는 ‘일하는 자들’이 아닌 마치 게임하듯 ‘노는 자들’이 결국 더 잘한다는 걸 보여줌으로써 ‘진지한 자들’의 행위가 얼마나 우스운 연극인가를 말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검찰 내부에서 정의에 불타는 장인규(김원해)가 권력형 비리를 파헤치려 할 때마다 그럴 듯한 이유를 진지하게 대며 그를 막아서는 비리검사 강성우(이화룡)의 모습이 그렇다. 그런 이들의 우스꽝스런 연극을 ‘플레이어들’은 노는 방식으로 폭로한다.

즉 <플레이어>는 심각한 현실의 사건들을 슬쩍 드라마 속으로 가져와 한바탕 뒤집는 통쾌한 이야기를 추구하고 있지만, 여기서 몇 가지 오해가 될 만한 소지들을 자초한다. ‘그 사람’이라는 지칭으로 표현되는 이 모든 권력형 비리의 조종자를 상정하면서 ‘일베 이미지’를 가져온 건 제작진이 사과했듯 실수라고 해도, 몇몇 캐릭터 설정들이 누가 봐도 실제 인물을 겨냥한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점은 시청자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물론 권력형 비리를 저지른 자를 풍자하기 위해 그런 이미지와 뉘앙스를 가져오는 건 ‘풍자’의 하나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게다. 하지만 양의 탈을 쓴 늑대로, 인권변호사의 탈을 쓰고 갖가지 비리를 저지르는 진용준 같은 인물이 굳이 백팩을 하고 다니며 느닷없이 “사람이 먼저다”라는 대사를 던지는 건 괜한 오해를 만들 수 있는 장면들이다.

<플레이어>가 하고픈 이야기는 드라마에서나마 잠시 동안 주는 ‘통쾌한 전복’이지만, 이런 몇몇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장면들은 그 통쾌함을 쉽게 즐기지 못하게 만든다. 물론 한두 가지 엉뚱한 이미지와 뉘앙스들이 모든 걸 말해주는 건 아닐 게다. 하지만 그 한두 가지 때문에 시청자들이 몰입할 수 없다면 그건 좀 더 제작진이 신중하게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OCN]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