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드라마 스페셜 2018’, 다채로운 단막극의 세계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단막극의 계절이 돌아왔다. 지난달 14일, 2017년 KBS 단막극 극본 공모 최우수상 수상작 <나의 흑역사 오답노트>를 시작으로 ‘KBS 드라마 스페셜 2018’이 막을 열었다. 올해도 대중적인 로맨틱 코미디부터, 웹툰 소재 드라마, 미스터리 오피스 드라마, 사회파 심리 스릴러까지 다양하고 완성도 있는 10편의 단막극이 준비되어 있다. 지상파 프라임타임대 드라마에서도 5% 미만 시청률이 수두룩해진 지금 이야기의 기본에 충실한 단막극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

[TV삼분지계]에서도 특별히 눈여겨 볼만한 작품 세 편을 골라 보았다. 정석희 평론가는 8년 간의 연애와 이별을 현실적으로 그린 <이토록 오랜 이별>을, 김선영 평론가는 사회 비판적 메시지가 돋보이는 스릴러 <잊혀진 계절>을, 이승한 평론가는 김금희 작가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너무 한낮의 연애>를 선택했다. 작품별 완성도에는 편차는 있을지언정 단막극의 세계가 이토록 다채롭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 <이토록 오랜 이별>, 단막극의 존재 가치를 입증하다

드라마 시청률 두 자릿수 보기가 어려워졌다. 새로운 시도가 시급한 시점임을 모를 리 없건만 대부분의 드라마가 시청률을 핑계 삼아 비슷한 구성과 전개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짧아도 충분히 유의미하고 감동을 주는 에피소드들이 있으련만 왜 너나없이 장황해지는지. ‘KBS 드라마 스페셜 2018’​ 6화 <이토록 오랜 이별>(연출 송민엽, 작가 김주희)은 8년간의 연애를 함축적으로 담아내며 단막극 고유 영역이 필요하다는 걸 입증했다. 오랜 연인인 베스트셀러 작가 배상희(임주환)와 출판사 편집자 정이나(장희진)가 왜 우여곡절 끝에 헤어지는지, 그리고 제각기 어떤 길을 가게 되는지, 사랑과 갈등과 이별을 차분하게 그려낸다. 간결하나 그럼에도 모두 다 이해가 된다. 심지어 속물의 전형인 출판사 대표(정재성)의 심정조차.



SBS <못난이 주의보>에서는 한없이 착한 인물을, tvN <오 나의 귀신님>에서는 사이코패스 성향의 인물을 맡는 등 선악을 넘나들어 온 임주환이 이번엔 다음 작품을 내지 못해 고통스러워하는 작가를 연기했다. 살면서 누구나 겪게 되는 내리막길. 그로 인해 하루가 다르게 황폐해져가는 감정. 하지만 좀 더 가슴에 와 닿았던 건 그의 성공과 좌절을 함께 해온 이나의 감정이다. “이젠 싫어졌어. 니 꿈이 내 꿈인 거. 니 성공이 내 성공이고 니 실패가 내 실패가 되는 게 싫어.” 헤어지고 1년이 지나 상희의 신간 소설이 나왔다. 같이 있을 때는 쓰지 못하던 그가 그들의 연애를 녹여낸 ‘이토록 오랜 이별’을 펴낸 것. 마지막 페이지의 ‘안녕’을 보는 이나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마음에 드는 마무리다.

방송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 <잊혀진 계절>, 잊을 수 없는 강렬함

노량진에서 5년째 경찰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이은재(고보결)는 담당 교사로부터 이번에도 합격에 실패하면 학원을 바꾸라는 압박을 받는다. 스트레스가 극도에 달한 은재는 고시원 옆방에 이사 온 최지영(고민시)이 내는 소음에 더 예민해진다. 같은 고시원에 머무는 8년 차 장수생 허준기(김무열)는 상대방을 무시하는 듯한 최지영의 눈초리와 말투에 점점 화가 쌓인다. 준기의 동생이자 잘나가는 기자인 허윤기(정준원)는 갑자기 닥쳐온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특종 거리를 찾아 헤맨다. 고시촌 앞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김우현(재호)은 단골 손님 은재에게 연민을 품게 된다. 그리고 어느 날 이 고시촌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2018 KBS 드라마 스페셜’ 두 번째 작품인 <잊혀진 계절>(PD 한상우, 극본 김성준)은 고시촌 살인사건을 둘러싸고 주변 인물들의 서사가 맞물리면서 윤리가 마비된 사회의 거대한 지옥도를 완성해가는 수작이다. 연쇄살인을 소재로 하면서도 미스터리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앞만 바라보고 달리는 모두의 악의와 무관심이 모여 만들어낸 현대 사회의 비극이라는 묵직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메시지도 강렬하지만, 그 주제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플롯도 무척 정교하다.

주요 인물 모두가 같은 공간의 거주인 혹은 가족 관계로 이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철저히 분절된 인물들의 서사는 파편화된 사회의 초상을 잘 보여준다. 그 각자의 서사가 잠깐씩 교차하는 순간에는 소통의 가능성이 아닌, 갈등과 출동의 비극만이 남는다. 유일하게 실낱같은 교류의 희망을 보여준 은재와 우현의 사연마저 너무도 뿌리 깊은 단절의 비극을 극복하지 못한다. 올해의 단막극을 넘어 올해의 드라마 후보로도 손색이 없다. 10월 26일, 한국PD연합회가 수여한 ‘이달의 PD’상을 받은 것도 이 작품의 완성도를 증명한다.

칼럼니스트 김선영 herland@naver.com



◆ <너무 한낮의 연애>. 원작의 콘트라스트가 사라진, 인스타그램 풍의 아련하기만 한 각색

김금희가 쓴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너무 한낮의 연애>는 아련하다. 인생이 제대로 꼬이기 시작한 순간, 십 수년 전 제대로 시작도 해보기 전에 끝난 연애를 했던 사이인 후배 양희(최강희)를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 주인공 필용(고준)의 이야기인 <너무 한낮의 연애>는, 시종일관 필름사진을 닮은 빛 바랜 색감의 화면과 절제된 대사, 좀처럼 비등점에 도달하는 일 없이 잔잔한 감정 묘사를 통해 아득한 옛사랑의 감정을 담아내려 노력한다.

불행히도 이건 칭찬이 아니다. 원작은 예나 지금이나 삶의 온도가 높아서 때로 찌질해지곤 하는 필용의 세계가, 나무처럼 “모든 것에 초연한 채 수용만 하는”(원작에서 인용) 자세로 세상을 바라보는 양희의 세계와 만나며 생기는 콘트라스트를 충실하게 묘사한다. 필용이 양희를 찾아 친구 차를 빌려 문산에 다녀오는 대목은, 원작에서는 그 뜨겁고 서툰 마음이 순식간에 “무엇으로 대체되지도 좀 다르게 변형되지도 않고 무언가가 아주 사라져버”(원작에서 인용)리는 낙차를 섬세하게 기록했다.



그러나 ‘2018 KBS 드라마 스페셜’ 버전은, 가능한 모든 장면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좋게 필터를 걸어 둔 셀피 같은 톤으로 만드는데 주력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방점 없이 아련하기만 한 연출 탓인지, ‘드라마 스페셜’ 버전은 원작과 달리 좀처럼 양희와 필용 사이 감정의 콘트라스트가 생기지 않는다. 연출과 각색 과정에서 생긴 허공을 드라마의 방식으로 돌파하려는 듯, ‘드라마 스페셜’ 버전은 원작에는 없던 연극 평론가 캐릭터를 등장시키고 양희가 직접 제 연극을 변호하는 장면을 추가했다.

이 과정에서, 젊은 날의 양희가 필용에게 한 말인 “언제 봐도 나무 앞에서는 부끄럽질 않으니까, 비웃질 않으니까”라는 말은 양희가 평론가에게 하는 말로 한 차례 더 반복된다.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해야 할 감정의 콘트라스트가, 뜬구름 잡는 듯 떠다니는 양희와 그런 그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외부 세계 사이의 콘트라스트인 것처럼 왜곡된 것이다. 두 사람 사이에 있어야 할 감정의 화학작용이 이렇게 희석되어 버리니, 제작진이 회심의 카드로 마련한 듯한 (“이랬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으로 꾸려진) <라라랜드> 식 피날레 또한 좀처럼 힘을 받지 못한다. 예쁜 화면과 좋은 연기는 참 잘 봤는데, 그것만으로 좋은 드라마가 나오는 건 아니지 않은가.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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