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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그 때 망했더라면... ‘창궐’ 보고 든 지울 수 없는 생각
기사입력 :[ 2018-11-02 14:59 ]
‘창궐’에 강하게 담겨 있는 현실정치에 대한 음영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찬(贊)△.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창궐>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좀비 영화로, <공조>를 같이 찍은 김성훈 감독과 현빈의 후속작으로, 장동건이 좀비 창궐을 이용해 권력을 찬탈하려는 악역으로 합세했다. 세트, 분장, 의상이 합격점이며, 특히 군중액션장면을 비롯한 액션이 좋다. 하지만 단점과 한계도 명백하다. 다소 뻔한 전개와 불균질한 편집이 단점으로 꼽힌다.



◆ 가장 썩은 곳, 궁궐

영화 <창궐>은 좀비액션물로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지만, 서사의 뼈대는 정치 사극이다. 영화는 병자호란 후의 인조시대를 배경으로 삼은 듯하지만, 실제 역사와는 상당히 다른 평행우주를 보여준다. 그래서인지 소현세자를 소원세자로, 봉림대군을 강림대군으로, 강빈을 경빈으로, 김자점을 김자준으로 바꾸어 부르며, 실제 역사가 아님을 표시한다. 예컨대 병자호란 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고, 환국한 소현세자가 갑자기 죽은 뒤 봉림대군이 왕위에 오른다는 큰 흐름에 강빈 저주 사건과 벨테브레이 표류 사건 등을 버무려 서사를 짰지만, 소현세자의 청에 대한 입장을 비롯해 당시 조정의 정치적 역관계와 완전히 다른 상황이 펼쳐진다.

제물포 앞바다에 이양선이 나타나고, 그들에게 총포 600점을 사려던 이들이 역모로 추포된다. 병조판서 김자준(장동건)은 이양선의 총포를 압수하고, 왕은 추포된 이들을 국문한다. 세자는 청나라에 있는 강림대군에게 편지를 쓰고, 자신이 추포된 자들의 배후라고 고하며 왕 앞에서 자결한다. 세자의 편지를 받은 강림대군(현빈)은 경빈을 청으로 모시기 위해 제물포로 입항한다. 그런데 이곳은 이양선의 좀비에게 물린 병사로 인해 이미 쑥대밭이 되어 있다. 강림대군은 남아 있는 사람들과 좀비와 일전을 치르며 입궁하지만, 총포와 좀비를 이용해 권력을 찬탈하려는 김자준에 의해 궐은 점점 좀비의 소굴로 변해간다.



영화 <창궐>은 현실정치에 대한 음영을 강하게 담는다. 왕 이조(김의성)의 모습은 껍데기뿐인 권력에 대한 집착과 즉물적이고 추악한 육욕만 남아, 야차와 다를 바 없다. 그가 기름진 수라상과 후궁들을 늘어놓고, 오랜만에 회포를 풀었다며 흡족해 하는 장면을 보라. 그 앞에서 총애하던 후궁(서지혜)이 발작을 일으켜 왕을 물어뜯는다. 포장되지 않은 날것의 비천함이 가득하다. 이후 점차 좀비로 변해가던 왕은 하필 청나라 사신을 접대하는 외교석상에서 좀비로 변하고, 팔일무를 추던 무희에게 달려들어 물어뜯는다. 흡사 강간을 연상시키는 이 장면은 왕이 음탕한 육욕만 가득한 존재라는 점을 더욱 부각시킨다. 왕이 세자를 죽인 뒤 후궁 품에 안겨 “내가 이러려고 왕이 되었나 싶다”고 말하는 데다, 이름에 ‘새 조(鳥)’ 자가 들어간다는 이조는 촛불혁명으로 권좌에서 끌어내려진 권력자를 비유한다.

과거 사극들이 주로 권신들을 추악한 탐욕의 존재로 묘사하고, 왕에 대해서는 모독적인 묘사를 비교적 지양했던 것에 비해, 최근 사극들이 왕의 신체와 용상을 불경스럽고 무엄하게 훼손하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물괴>에서는 궁 안에서 길러졌다가 방출되었던 물괴가 살처분된 인육을 먹고 자라 지하통로를 타고 다시 궁 안으로 들어와 마침내 용상을 박차고 튀어 오르는 장면이 그러하듯이, <창궐>에서 가장 끔찍한 좀비로 변한 왕이 날뛰다 죽는 광경은 금기를 넘어서는 지점이 있다. <물괴>와 <창궐>의 클라이맥스에서 궐문을 닫아 봉쇄하는 것은 인상적이다.



과거 사극에서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궐을 보호하는 것이 중요했던 반면, <물괴>와 <창궐>에서는 이미 썩어문드러진 궐로부터 바깥을 보호하기 위해 궐을 봉쇄하고 그 곳을 격전지 삼아서 전투가 벌어진다. 여기에는 궐이 문제의 중핵이고, 그곳에서 어떤 비밀스럽고 부패한 일들이 벌어지는지를 알 수가 없는 가장 폐쇄적이고 추악한 곳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이는 박근혜 탄핵을 거치면서 시민들이 공유하게 된 정치 감각의 반영이다.

재난이 일어났지만 백성들을 구하려 하지 않고, 그것을 헛소문이라고 축소 은폐하기에만 급급한 조정과 다른 어떤 곳보다 좀비 떼가 들끓는 소굴이 된 궐과 가장 비천한 모습으로 죽은 왕은 세월호 사건을 경유해 박근혜 탄핵으로 이어진 최근의 헌정사를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



◆ 김자준과 강림대군

영화 <창궐>의 가장 극적인 액션은 김자준과 강림대군이 전각의 지붕에서 맞붙는 장면에 등장한다. 둘의 격돌은 액션에서 뿐 아니라, 서사에 있어서도 상반된 캐릭터로 핵심갈등을 구성한다.

김자준은 단순한 악당이 아니다. 그가 이양선의 총포를 손에 넣고 세자 일당을 역모로 몰았을 때, 그의 목표는 소원세자와 마찬가지로 나라를 바로 세우고, 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좀비에 대해 알고 있었으면서 이를 막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정치는 애민사상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다. 그는 <물괴>의 영의정과 달리, 반정을 넘어 역성혁명 즉 개벽을 선언할 정도로 근본적인 개혁을 원했지만, 백성의 안위를 중심에 두지 않는 그의 정치는 결국 이조의 정치와 마찬가지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그가 개벽을 선언하는 바로 그 순간 좀비에게 물린 손이 드러나는 것은, 그가 펼치려는 정치가 빠르게 흑화되어 갈 것임을 단적으로 예시하는 것이다. 자신이 잘 통제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좀비에게 자신도 물려 선왕과 동일한 몰락의 길을 밟는 것은, 수많은 쿠테타 정권들이 정변 과정에서 깃든 내부 균열로 인해 급속히 붕괴되는 사례들을 연상시킨다. 개벽을 선언했으나 한순간도 왕이 되지 못하고, 좀비 떼가 들끓는 궐 안을 죽은 건지 산건지 알 수 없는 모습으로 배회하다가 혼자 용포를 걸치고 용상에 앉은 그의 퀭한 표정은 백성 없는 정치의 허망함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강림대군은 이와 상반된 존재다. 그는 정치에 뜻은 물론이고, 조선에 대한 애정도 없는 인물이었다. 영화 초반의 “이게 나라냐?”라는 그의 말은 정치에 대한 환멸이전에 낙후된 조선사회를 혐오하는 말이었다. 그는 세자 되기를 한사코 거부하였다. 그가 조선에 온 것은 순전히 죽은 형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함이었고, 좀비 떼와 싸운 것도 경빈과 형을 따르던 사람들을 지키려는 인간적인 의리의 소산이었다. 하지만 좀비 떼를 유인해서 몰살할 작전을 짜고, 동료들과 전우애를 나누면서 조금씩 달라진다. 마침내 불을 붙이기 위해 궐 안으로 뛰어들 때, 그는 지금까지의 자신을 뛰어넘는다. 전각의 지붕위에서 김자준과 혈투를 벌인 그는 궐의 환란을 보고 몰려든 백성들의 횃불을 본다. “백성이 있어야 왕이 있다”는 민본주의의 깨달음을 얻은 그는 “내가 너무 늦게 왔구나”라는 말과 함께 마침내 왕의 자리를 받아들인다.



왕이 될 뜻이 없었으나 환란을 통해 소명의식을 가진 존재로 성장하고, 백성들의 추대를 받아 왕이 되는 서사는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한 <대립군>과 공통점을 지닌다. 처음부터 권능을 지닌 왕재로 백성들 앞에 등장한 것이 아니라, 미약한 인간이었던 그를 주변인물들이 왕으로 키워서 모시고 섬기며 마침내 민심을 얻어나가는 서사가 연속해서 나오는 것도 ‘삼김 시대’ 이후 민주 진영의 리더십을 고민하는 현실정치의 맥락을 반영한다. 특히 <창궐>에서 강림대군이 애초 세자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궐에 발을 들인 것이나, 세자의 자결이 “자신의 사람을 지키기 위한 피치 못한 선택”이었다는 박종사관의 전언은 ‘노무현의 죽음에 이은 문재인의 정치입문과 대권승리’를 강하게 연상시킨다.

영화가 강하게 현실 정치를 소환하는 만큼, 현실과 같은 맥락에서 아쉬움이 느껴진다. 즉 야귀가 출몰하고 궁궐이 불타고 개벽이 선언되는 파국의 상상력이 발휘되던 장이 단지 선한 왕위 계승자를 찾아 권력을 이양 받게 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은 너무 한계적이다. 이는 좌파적 담론들이 무람없이 논의되던 촛불광장의 에너지가 장미대선으로 급속히 봉합된 것과 마찬가지의 아쉬움을 지닌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87년 민주화운동의 에너지가 대통령 직선제를 얻어낸 것으로 봉합된 것과 비슷하다. 한편에서 1987년 승리를 이야기할 때, 다른 한편에서는 1991년 분신정국이 일어나고 있었음을 상기하자. 영화 속 자신을 왕으로 추대하려는 백성들에게 “아무도 구하러 오지 않는다. 스스로 왕을 세우고 스스로 나라를 세워라”던 강림대군의 말이 실현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실제 조선왕조 역시 병자호란과 소현세자의 죽음이후 망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창궐>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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