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선녀전’, 어쩌다 원작의 재해석은커녕 개연성조차 사라졌나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tvN 월화드라마 시청률 기록을 세운 <백일의 낭군님>이 종영한 뒤 또 한 편의 로맨틱 퓨전 사극이 찾아왔다. <계룡선녀전>은 인기 원작에 고두심·문채원을 앞세운 캐스팅, 김윤철 감독의 연출 등 기대 요소를 고루 갖춰 방영 전부터 큰 관심을 모은 작품이다. 한국 드라마 사상 가장 많은 CG의 크리처가 등장하는 판타지 장르인 만큼 볼거리도 풍부하다. 많은 기대 속에 출발한 <계룡선녀전>은 어떤 평가를 받았을까? [TV삼분지계]의 이번 선택은 <계룡선녀전>이다.



◆ 점순이와 김금이 더 궁금하다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이동에 따라 설화나 민담, 동화로 바뀌어 전해내려 온 것으로 보인다는 지부천모 형식의 신화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 누구나 숱하게 보고 들으며 자라왔겠지만 지금 시대에는 돌 맞을 소재다. 목욕 장면을 훔쳐보질 않나, 하늘로 돌아갈 수 없게 날개옷을 감추질 않나, 그러다 애까지 낳고 같이 살다니. 나무꾼이 더없이 착하다는 설정이긴 해도 기막힌 노릇이지 뭔가. 나무꾼이 날개옷을 내어주자마자 선녀가 아이들을 두 팔에 안고 미련 없이 훨훨 날아 떠나버린 것은 너무나 당연한 전개다.



tvN <계룡선녀전>에서는 나무꾼(윤현민)이 불현듯 사라지는 바람에 선녀 선옥남(고두심)이 699년째 남편의 환생을 기다리는 중이란다. 날개옷을 돌려주지 않았으니 하늘로 돌아갈 길이 없었던 것. 극악한 저주도 아니고 이리 애통 절통할 데가 있나. 신선 3인방 오 선녀(황영희) 역시 선 선녀 못지않은 기구한 팔자다. 옷을 훔쳐 도망간 나무꾼을 300년째 찾고 있다니 말이다. 이 천인공노할 범죄를 코믹 코드 안에서 어떤 식으로 풀어갈지, 큰 숙제가 아닐 수 없다. 흔히 말하는 ‘믿고 보는’ 김윤철 감독을 믿고 기다려 볼밖에.

<계룡선녀전>에서 눈에 들어오는 인물은 더도 덜도 않은 만화 속 캐릭터 점순이(미나)와 동화 속 나무꾼과 비슷한 성정의 김금(서지훈)이다. 안타까운 일이긴 해도 699년째 계속되고 있는 선녀의 남편 찾기에는 솔직히 별 관심이 안 간다. 그보다는 호랑이로 태어났지만 수련을 통해 인간으로 변신이 가능한 점순이의 서울 생활 적응기와 놀라자빠지고 남을 상황들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김금의 일상이 더 궁금하다.

방송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 낭군 타령은 이제 그만

<계룡선녀전> 2회, 정이현(윤현민)을 만난 선옥남(고두심)은 ‘선녀와 나무꾼’에서 둘이 처음 만나게 된 부분까지 설명하다 갑자기 문제를 낸다. “위 이야기에서 느낀 점을 50자 이내로 서술하시오.” 이 장면이 단순한 코믹 코드인지, 아니면 옛이야기를 다시 쓰는 이 드라마 자체의 자의식이 드러난 부분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확실한 것은, 적어도 현재까지 이 작품에서 ‘선녀와 나무꾼’에 대한 21세기적 재해석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날개옷을 감추고 먼저 세상을 떠나버린 나무꾼 때문에 천계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수백 년 동안이나 싱글맘으로 살아온 선옥남이 남편에게 한을 품기는커녕 혹시라도 탈 날까 커피잔에 버들잎까지 띄워주는 지고지순한 존재로 그려지는 것부터가 납득이 안 된다. 고전을 무려 BL 문법으로 다시 쓰는 딸 점순(강미나)에 비하면, 오랜 세월 동안 제자리에 고여 있는 옥남은 그녀가 그토록 좋아하는 식물처럼 보일 지경이다.



하지만 옥남 캐릭터에 대해 느껴지는 답답함도 정이현에 대한 인상에 비하면 참을 만해진다. 이원대학교 최연소 부교수 타이틀을 달 정도로 천재적 두뇌의 소유자에 말끝마다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것을 강조하는 정이현이 2회 내내 보여준 태도는 철없고 미숙한 남자 아이의 그것과 같다. 특히 2회에서 탑돌이하다 마주친 구선생(안길강)과 싸우는 장면에서 이현의 행동이나 언어 구사는 초등학생보다 못한 유치함의 절정이었다.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성인처럼 보였던 냉철한 이함숙(전수진) 교수마저 조봉대(안영미)를 만나 유치하게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면, 단지 배우의 캐릭터 설정 문제만은 아닌 듯하다. 원작의 재해석은커녕 가장 기본적인 캐릭터의 개연성도 안 보이는 이야기의 다음 회가 기다려질 리는 없다.

칼럼니스트 김선영 herland@naver.com



◆ 지금 고양이 CG가 문제가 아니다

웹툰 원작 드라마가 흔히 범하는 실수는 원작을 ‘고스란히’ 옮기는 일이다. 웹툰과 드라마는 각자 한 회 안에 담을 수 있는 서사의 길이가 다르다. 대략 웹툰 4~6화 가량의 서사를 모으면 드라마 한 회 분량이 나오는데, 이걸 고스란히 옮긴다고 생각해보라. 4~6주에 걸쳐 차근차근 전개된 원작의 반전과 농담, 클리프행어를 죄다 살려 65분 안에 담아내면 드라마는 자연스레 지저분해진다.

<계룡선녀전>이 지금 그렇다. 드라마의 1화는 돌배 작가의 동명 원작 웹툰 1~8화를, 2화는 9~14화를 압축해서 담았다. 드라마는 선옥남(문채원/고두심)이 서울로 올라오는 과정 정도를 제외하면, 원작의 내용을 거의 빠짐없이 눌러 담았다. 담백한 가운데 유머가 곳곳에 박혀있던 원작의 톤은, 생략 없이 압축만 거친 탓에 급격하게 개그 과잉으로 변질된다.



기왕 개그 과잉이 된 김에 본격 코미디로 가겠다는 듯, 제작진은 원작에 없던 농담을 더 삽입한다. 원작에서 옥남은 정이현(윤현민)이 자신의 딸 점순(강미나)의 이름을 알고, 선계의 꽃 모래작약도 알고 있는 것을 보며 그가 남편의 환생일 것이라 믿는다. 드라마는 여기에 이현의 폭포 같은 오줌 소리를 덧붙인다. 그 소리를 들은 옥남이 “이건 699년 전 매일 같이 듣던 그 소리 아닌가”라 중얼거리며 남편의 생전 오줌 소리와 진지하게 비교를 하는 장면 앞에서 작품의 톤은 <가루지기>로 돌변한다.

농담 과잉은 캐릭터 붕괴로 이어진다. 원작의 옥남은 선인(仙人)이기에 눈에 보이는 물질적 부나 명예, 외면의 아름다움 따위에 현혹되지 않았다. 드라마의 옥남은 “그 분이 아직 날 예쁘게 봐주실까” 걱정하며 미용실을 찾는다. 현대 문명에 익숙지 않은 옥남이 미용실에서 빚어내는 농담 몇 개를 건지겠다고 가장 기본적인 캐릭터 붕괴를 자초한 셈이다.



설상가상,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는 700여 년에 걸친 원한과 오해, 사랑과 질투, 죽음과 윤회, 용서와 구원의 이야기다. 물질의 중력이 그 질량에서 나오듯, 서사 또한 적당한 무게를 지녀야 비로소 핵심 주제들을 붙들어 맬 중력을 획득한다. 그리고 이렇게 경박해진 톤으로 그런 묵직한 주제들을 끌어안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 각색의 실패에 비하면, 고두심이라는 대배우가 낭비되고 있는 참담이나, 모두가 재앙 수준이라 말하는 끔찍한 고양이 CG 같은 건 문제도 아니다.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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