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서사와 일상 사이, ‘내 뒤에 테리우스’가 잡은 균형

[엔터미디어=정덕현] 사실 MBC 수목드라마 <내 뒤에 테리우스>가 치열한 수목극 경쟁에서 최고의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건 의외의 결과다. SBS가 내놓았던 <흉부외과>는 매일같이 수술대에서 전쟁처럼 치러지는 유혈이 낭자한 수술을 보여줬고, tvN <하늘에서 내리는 일억 개의 별>은 원작 일드의 아우라가 압도적이었다.

게다가 MBC는 그간 ‘잃어버린 10년’의 후유증이 그대로 남아 한때 ‘드라마 왕국’이라 불렸던 시절이 무색한 상황이었다. 이러한 저간의 사정들을 생각해보면 <내 뒤에 테리우스>가 10%(닐슨 코리아)를 넘기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동시간대 시청자들을 끌어 모았다는 사실은 MBC로서는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이 시청자들을 이 드라마로 빠져들게 만들었을까. 그 첫 번째 요인으로 전직요원 김본을 연기한 소지섭을 들지 않을 수가 없다. 이 드라마는 그 성격상 스파이 장르의 액션과 일상의 코미디가 하나로 묶여지는 게 관건이었다. 소지섭은 그 양면의 연기를 진지함과 그 진지함을 무너뜨리는 코믹함으로 풀어내며 드라마에 든든한 중심축을 만들어주었다.



그 위에서 고애린 역할의 정인선이 세워질 수 있었고, 워킹맘으로서의 그의 일상에 대한 공감대와 스파이물과의 접합을 통한 웃음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킹캐슬 단지 주부들의 국가정보원(NIS)을 방불케 하는 패러디 조직으로서 KIS(Kingcastle Information System)와 그 수장인 심은하 역할의 김여진, 그리고 그 요원(?)인 감초역할의 봉선미(정시아)와 김상렬(강기영)이 보여주는 ‘작전(?)’들은 우리네 일상이 저들의 거대서사만큼 소중하다는 걸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어떤 통쾌함을 선사했다.

그것은 마치 세상을 움직이는 이들이 NIS 같은 권력과 정보력을 독점한 이들이라고 하는 이야기에 대한 ‘반박’처럼 다가왔다. 그리고 진짜 소중한 건 우리와 동떨어진 듯한 그런 거대서사가 아니라 준수 준희 같은 아이들이 편안히 놀이터에서 놀고 유치원을 다닐 수 있는 그런 일상이라는 걸 드라마는 코믹한 KIS의 활약을 통해 보여줬다.

물론 드라마가 지나치게 일상의 소소함으로 빠져들지 않게 하기 위해, 케이(조태관) 같은 킬러와 그 뒤로 이어지는 심우철(엄효섭) 국정원장까지 연루된 악의 시스템이 등장하고 그와 대결하는 김본의 활약이 더해졌다. 여기에 진용태(손호준) 같은 미워할 수 없는 악당이 들어와 극적인 이야기의 변수를 만들었고 이런 긴박감은 이 드라마의 또 다른 축인 일상의 소소한 재미들과 균형을 만들었다.



어찌 보면 본격적인 스파이 액션 장르를 기대하면 다소 밋밋할 수 있었지만, 그 부분을 적절히 끌어와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금 들여다본다는 지점은 그런 밋밋함마저 코미디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여지를 주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내 뒤에 테리우스>의 성공은 적절한 액션과 공감 가는 워킹맘의 육아 현실이 더해진 코미디가 시청자들에게 ‘편안하면서도 통쾌한 즐거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한 아이를 기르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듯... 하나의 드라마가 탄생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많은 이들의 수고와 에너지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내 뒤에 테리우스>의 출산과 육아에 정성을 다해주신 여러분! 당신들은... NIS, KIS도 울고 갈 최고의 요원입니다.’ MBC가 마지막회에 즈음해 공개한 마지막 대본의 끝에 적시된 오지영 작가의 이 글처럼, <내 뒤에 테리우스>의 이례적인 성공에는 보이지 않는 여러분들의 노력이 들어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이 드라마가 말하려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소중한 일상은 많은 이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들이 있어 가능하다는.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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