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지탈출3’·‘골목식당’, 과연 예능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오늘날 예능은 ‘진짜’를 추구한다. <쇼미더머니>의 랩퍼들처럼 앞다퉈 자기 자신만이 ‘진짜’임을 강변한다. 이해는 된다. 오늘날 예능은 일상에서 공감대를 찾고, 리얼함에서 스토리를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몰입의 기반이 리얼리티에 있다 보니 방송을 보면 출연자뿐 아니라 제작진과 카메라가 화면 안에서 점점 더 많이 보인다. 이는 마술사가 공연에 앞서 과장된 포즈로 빈손을 강조하는 것과 같다. 방송을 찍는 것은 맞지만 아무런 설정이 없는 진짜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제 여행이나 일상 공간에 카메라를 가져다놓는 정도로는 대적할 수 없는 ‘진짜’들이 등장했다. 일상 공간 정도가 아니라 가정사나 지탄받는 인생을 방송에 가져와 기꺼이 재료로 내놓는다.

지난 화요일 <둥지탈출3>에 출연한 박연수 가족은 새로운 차원의 가족예능을 선보였다. 풍족한 환경에 사이좋은 부부와 사랑스런 아이들이 등장하는 행복한 가정의 이미지를 전시하는 전형에서 벗어나 있었다. 예쁘고 사랑스럽게 자란 지아와 지욱이가 엄마와 함께 단란하고 즐겁게 열심히 잘 살고 있는 모습만 보면 기존 가족예능과 별다른 점이 없다. 그런데 스튜디오에서 흐뭇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들이 방송에서 계속 언급하는 주제가 이혼이다. 에피소드는 대부분 아빠의 빈자리나 부모의 이혼에서 비롯된 변화와 관련된 것들이다.



오늘날 가족예능의 시초인 <아빠 어디가>에서 딸 바보 부녀로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한 가족이 이혼의 아픔을 겪었다. 그리고 방송에서 그 이후의 삶을 다시 보여준다. 좋은 집에서 좋은 차를 타고 국제학교를 다니던 아이들이 비교적 좁아진 집에서 일반 학교를 다니게 된 변화가 주된 볼거리다. 박연수는 영상을 보는 중간 중간 토크쇼와 리액션의 중간 즈음에 있는 스튜디오 토크에서 부연 설명을 곁들이고, 엄마가 힘들 수 있으니 힘이 되겠다는 의젓한 아이들은 방송 중 틈틈이 아빠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여전히 사랑스런 관계를 유지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러면서 예전과 같으면 아빠 차를 타고 갔을 아빠의 스포츠센터를 마을버스를 타고 지나가며 유심히 쳐다보는 장면을 굳이 방송으로 내보낸다.



그냥 잘 지내고 있는 모습, 아픔을 극복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이혼한 가정임을 끊임없이 부각시키고, 이혼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진 아빠의 존재를 사진이든, 목소리로든, 에피소드로든 끊임없이 드러낸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가정이 갈라 선 후 겪는 현실이 예능의 소재로 가공된다. 이혼을 겪고 삶의 둥지가 달라진 박연수네 가족의 일상이 방송을 타자 <둥지탈출3>은 실검을 휩쓰는 등 흥행에 성공했다. 참고로 <둥지탈출> 시리즈의 김유곤 PD가 MBC 재직시절 터트린 대박 아이템이 <아빠 어디가>다.

수요일 밤 예능 왕좌를 건네받은 <백종원의 골목식당>은 최근 상권 부활을 넘어서 한심한 생활을 청산하고 교화하도록 돕는 인생 설계로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메뉴나 기본적인 역량에 초점을 맞춰 솔루션을 내놓았던 다른 식당에서와 달리 포방터시장 홍탁집은 솔루션 포인트가 35살 아들의 인간 만들기다. 시청자들을 집중시키는 힘은 아들의 됨됨이가 얼마나 부족한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데 있다. 방송용 설정이나 캐릭터가 아닌 진짜 인생을 기반으로 하니 어렵지 않게 공분이 쌓였다.



물론, 그동안 매회 논란거리를 제공하는 일명 빌런(히어로물에서 처음 쓴 단어로 갈등을 야기하는 악당을 지칭한다)이라 불리는 인물이 등장했었다. 거짓된 태도, 기본이 안 된 요리와 주방 위생 상태, 전혀 준비도 안 된 상태로 별다른 노력도 들이지 않고 창업에 뛰어 들거나 방송의 힘을 어떻게 볼까만 궁리하는 나태한 출연자들이 백종원과 시청자를 적잖게 힘들게 했다. 그러나 이들의 문제는 아무리 심각해도 최소한 ‘식당 운영’이라는 연결고리 안에 있었다. 포방터시장 홍탁집을 살리기 위해서는 요리나 장사가 문제가 아니라 한심한 인생 청산이 선결 과제다.

이러다할 직장이 없는 아들을 위해 몸이 불편한 어머니가 식당을 차렸지만 지난 4년간 식당일은 모두 노모의 몫이었다. 아들은 사장이란 직함만 달고 요리는커녕 냉장고에 어떤 재료가 있는지조차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방송을 타서 잘 돼봐야 어머니만 더 힘들 것이라며 백종원은 솔루션을 원한다면 자신을 먼저 설득시켜 달라며 두 가지 숙제를 내줬다.



그러나 요리 연습은 하루에 딱 한 번에 그쳤다. 제작진이 그 이유에 대해 묻자 그나마도 힘들고 스트레스 받는다며 백종원 앞에서와는 다른 불손한 태도를 내비쳤다. 어떻게 뜯어봐도 부끄럽기 짝이 없는 모습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적반하장의 태도를 잃지 않는다. 지난 35년간 몸에 밴 생활습관과 태도를 있는 그대로 내보이면서 진정성 100%의 리얼리티를 충족시켰는데, 연예인들에게선 절대로 찾을 수 없는 덕목이다. 설정이나 각본으로는 따라갈 수 없는 볼거리에 평균 5~6%대 시청률이 7.8%까지 뛰어올랐다. 이것이 리얼리티가 가진 힘이다.

누군가의 ‘진짜 인생’만큼이나 극적이고 드라마틱한 각본은 없다. 그 어떤 설정이나 재능으로도 극복할 수 없는 강력한 재료의 힘이다. 진짜를 추구하는 예능은 관찰을 넘어서서 기막힌 이야기를 다루는 재현 드라마나 다큐의 영역까지 접수했다. 진짜를 추구하는 예능은 이제 울타리를 쳐놓은 관찰을 넘어서 누군가의 실제 인생 한 토막을 쇼윈도에 올려놓는 수준까지 치고 올라왔다. 어쩌면 머지않은 훗날 누군가의 인생사를 실시간으로 들여다보는 방송까지도 나올지 모르겠다. 타인의 삶을 어디까지 어떻게 소비할 수 있을까. 궁극의 리얼리티 앞에서 관련 윤리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N,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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