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사람들’, 잭 리처가 할 수 있다면 마동석도 할 수 있다지만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마동석이라는 이름을 빼고 <동네사람들>이라는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불가능하다. 마동석이 없었다면 만들어질 수 없었고, 처음부터 마동석이라는 배우를 위해 만들어졌으며, 지금은 지나치게 많아진 마동석 캐릭터가 주인공인 마동석 영화이기 때문에. <동네사람들>은 이제 독립적인 영화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이는 2018년을 열차처럼 관통하고 지나간 마동석 영화 시리즈의 일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한 생각이 하나 떠오른다. 만약 이 영화에 마동석과 마동석 캐릭터가 나오지 않았다면? ‘마동석이 없었다면 만들어질 수 없었던 영화’라는 현실적인 조건은 잠시 잊고 생각해보자. 과연 어떤 영화가 나왔을까? 더 좋아지지 않았을까?

내용을 한 번 보자. 영화는 마동석이 연기한 외지출신 체육교사 기철이 시골 여자고등학교의 기간제 교사로 부임하면서 시작된다. 마을은 군수 선거 운동이 한창이고 마침 학교 이사장이 후보로 뛰고 있는데, 하필이면 배우가 장광이다. 기철은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김새론이 연기하는 유진이라는 학생을 만나는데, 그 아이는 얼마 전에 실종된 친구 수연을 찾고 있다. 이사장이 수연의 실종과 아무 상관이 없을 가능성이 몇 퍼센트나 될까? 앞에서도 말했지만 배우가 장광이다.



이 정도면 전통적인 하드보일드 이야기의 설정이다. 매 이야기마다 새로운 마을이나 도시를 방문하는 잭 리처와 같은 주인공의 모험담을 생각해보라. 잭 리처가 할 수 있다면 마동석 캐릭터도 할 수 있다. 착한 사람들을 구하고 악당들을 처치한 뒤 다음 마을로 떠나는 거다. 셰인이 그랬고 콘티넨탈 오프가 그랬고 잭 리처가 요새 그러는 것처럼.

그런데 왜 <동네사람들>은 만족스럽지 못할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유는 영화의 완성도가 애매하기 때문이다. 영화의 각본은 진부하고 상상력이 부족하다. 이를 보완하는 연출적 매력도 없다. 배우들은 모두 타이프캐스팅되어 아무리 좋은 연기를 보여주어도 전에 여러 번 본 것 같다. 심지어 심하게 거슬릴 정도로 나쁘지도 않다. 당연히 영화의 진부한 설정은 눈에 뜨인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점은 소재를 다루는 방식에 있다.

소재가 나쁘다는 게 아니다. 오히려 반대이다. 영화가 다루는 소재는 대한민국의 부조리한 시스템의 희생자가 된 미성년 여성들이다. 그리고 지금은 스쿨 미투의 시대이다. 각본을 쓸 당시에는 마동석 액션의 핑계였던 것이 지금은 묵직한 시대적 의미를 띄게 된 것이다.

이 영화에는 정말 많은 것들이 있다. 화장실에 설치된 불법촬영 카메라가 있고, 성범죄자인 교사가 있고, 이 모든 사실을 하찮은 것으로 매도하고 은폐하려는 학교와 경찰이 있다. 무엇보다 자신이 가진 얼마 안 되는 무기를 갖고 이들에 맞서는 학생이 있다. 나는 <동네사람들>을 보면서 이들을 별 생각 없이 평면적으로 나열하는 것만으로 이 영화를 좋게 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야기가 미적지근하게 끝난 뒤에도 여전히 이들의 의미를 무시할 생각은 들지 않는다.



문제는 마동석이 등장하면서 이 모든 것들의 의미가 흐려진다는 것이다. 영화는 당연히 마동석 중심으로 돌아가고 아이들이 겪는 억울함과 고통은 마동석이 주먹을 휘두르면 나을 간지러움 비슷한 것이 되어버린다. 또 하나의 사이다 서사의 재료인 것이다. 무엇보다 신경 쓰이는 것은 중장년 남자들에 의해 부당하게 고통 받고 죽어가는 여자아이들이 나오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여전히 중년남자라는 것이다. 이런 영화들은 중장년 남자들의 진부한 악을 그리면서도 주인공인 중년남자는 예외니까 믿으라고, 믿어야 사건이 해결된다고 주장한다. 나는 이런 이야기가 무척 비겁하고 기회주의적이라고 생각한다.

마동석을 빼고 영화의 이야기를 들여다보자. 아마,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짰다면 여전히 별로였을 것이다. 심지어 마동석 사이다도 없는 별로.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에겐 현실 세계 여자아이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유진 캐릭터는 김새론 주연의 이전 영화에서 가져왔고, 유진과 수연의 관계는 <여고괴담> 영화 어디서 따온 것 같다. 학교의 다른 아이들을 그릴 때는 그 정도의 노력도 안 보인다. 하지만 그래도 상상을 멈출 수는 없다. 만약 이 아이들의 고통이 단순한 액션 영화의 동기 부여 이상이라고,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소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든 걸 너무 쉽게 만드는 마동석 캐릭터를 빼고 이야기를 짰다면? 지금보다 가치 있고 정곡을 찌르는 작품이 나오지 않았을까?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동네사람들>스틸컷]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