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만찬’, 시사 프로그램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어디까지인가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지난 7월 파일럿 방영 당시 많은 호평이 쏟아졌던 KBS 시사 프로그램 <거리의 만찬>이 드디어 정규 방송을 시작했다. 파일럿 2회에서 ‘꿀 케미’를 선보였던 이정미 의원이 바쁜 일정 때문에 빠졌지만, 김소영 아나운서가 새롭게 합류해 눈길을 끌었다. 파일럿 방송에 “수신료의 가치를 증명하는 프로그램”이라며 만장일치 찬사를 보냈던 [TV삼분지계]도 첫 방송을 함께 지켜봤다. 정규 프로그램으로 돌아온 <거리의 만찬>, 과연 파일럿보다 더욱 풍성해진 만찬을 선보였을까.



◆ 남 일이 아닌 내 일로 다가오는 이야기

‘남의 일로만 여긴 나 같은 사람 때문이다’ KBS <거리의 만찬>에 새로 합류한 김소영 씨의 소회다. 깊이 공감한다. 장애인 학부모들이 서진 학교 건립 추진을 위해 주민공청회에서 무릎을 꿇는 장면을 뉴스에서 접하고 딱하다고 생각하긴 했다. 하지만 찰나일 뿐이었다. 교육청 부지에 한방병원을 짓겠다는 김성태 의원의 공약으로 인해 불거진 마찰들. 그리고 이미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태에서 발표된 이해 불가의 합의. 대가성 합의가 남긴 나쁜 선례라는 사실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거리의 만찬> ‘아주 보통의 학교’를 통해 보고 들으니 새삼 울화가 치밀었다. 마음을 열었느냐 아니냐의 차이이지 싶다. 방송을 보는 사이 장애인들과 학부모들이 겪어온 일련의 사건들이 남의 일이 아닌 내 일로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다.



주민공청회 당시 끝까지 목숨을 걸고 저지하겠다는 반대 주민들의 어이없는 행태에 분노했다. 사람의 탈을 쓰고 어찌 저럴 수 있을까? 허나 장애인을 꺼리는 마음이 내 속에는 없었을까?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됐다. 장애인의 권리와 소통에 대해 교육받은 적이 없기에 우리는 장애인을 그저 위험한 존재로만 치부해왔다. 내 일로 받아들이는 순간 많은 것이 달라진다. 소소하게는 울퉁불퉁한 도로며 도처에 널려 있는 위험 요소들이 눈에 들어오고 더 나아가 장애인을 위한 각종 편의 시설이 내 가까이에 있기를 소망하게 되리라. “나 죽으면 어떡하지?” 장애인 부모들이 평생을 이고 지고 살아가는 고민이라고 한다. 앞으로 먼 길을 가야 할 장애인 부모들에게 우리 사회가 어떤 답을 줄 수 있을까? 우선 첫 단추는 계몽부터!

방송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 ‘다른 시선’의 힘을 또 한 번 증명하다

하나의 시사 프로그램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어디까지일까?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포착하고 분석해내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다. 이로 인해 사회적 반향을 일으켜 정책 변화까지 이뤄낸다면 최고의 프로그램이라는 칭호를 받는다. 그런데 KBS 시사 현장 토크쇼 <거리의 만찬>은 여기서 한 발 더 나가 제일 어렵고 근본적인 문제에 도전한다. “총 중에 가장 무서운 총이 눈총”이라는 출연자 조부용 씨의 말처럼, 제일 바꾸기 힘든 사회적 편견을 겨냥하는 것이다. 파일럿 당시부터 진행진을 전부 여성으로 채워 ‘다른 시선’의 중요성을 내세웠던 <거리의 만찬>은 정규 방송에서도 여전히 그 지향점을 잃지 않는다.



첫 회에서 <거리의 만찬>은 언뜻 보면 신체장애보다 가시화되기 어려워 더 힘든 면이 있는 발당장애아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의 장애인 차별 문제를 들여다본다. 장애인 인권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싸워온 그들의 비범한 투쟁기를 조명하는 한편, 평범한 엄마들로서의 입장을 그려내 몰입을 강화한다. ‘우리는 좀 특별한 아이가 있는 평범한 엄마들일 뿐’이라는 정난모 씨의 말처럼, 자녀들의 남다른 면을 자랑하거나 자녀를 키우면서 힘들었던 점을 나누는 엄마들의 교실 안 토크는 이 프로그램만의 ‘다르면서도 공감이 가는 화법’의 장점을 잘 보여준다.

엄마들의 지난 투쟁의 역사가 스크린으로 상영된 장면도 인상적이다. 카메라는 엄마들과 진행자들이 함께 스크린을 바라보는 모습을 뒤에서 비춘다. 각각 다른 위치에 있던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느새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그 순간, 사회적 편견의 극복은 바로 거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시선의 방향을 맞추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는 문제들을 그렇게 함께 이야기하면서 오래오래 사랑받는 프로그램이 되기를 바란다.

칼럼니스트 김선영 herland@naver.com



◆ 공감의 장점은 계승하고, 비판의 날은 더 세워서 돌아왔다

파일럿에서 좋은 평을 들었던 프로그램들이 정규 편성 때까지 그 신선함을 유지하는 사례는 흔치 않다. 이미 좋은 평을 들었으니, 굳이 뭘 더 고쳐야 한다는 절박함 없이 그대로 정규 편성에 들어가기 쉬운 것이다. KBS <거리의 만찬>은 어땠을까? 기계적인 중립에서 벗어나 주류 언론이 미처 그 목소리를 대변하지 못한 사람들의 곁으로 다가가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한다는 <거리의 만찬>의 장점은 정규 편성에서도 유지된다.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을 위해 투쟁해 온 발달장애아 어머니들을 찾아 그들의 투쟁 역사를 되짚어보았던 정규 첫 회는, 언뜻 철도노조 KTX열차승무지부 노조원들을 찾았던 파일럿 첫 회의 문법을 고스란히 계승한 것처럼 보인다.



다행히도 제작진은 파일럿보다 한 발 더 전진한다. 파일럿 첫 회가 KTX 노조원들의 투쟁 자체에 경의를 표하느라 그 싸움이 이토록 길어지게 만든 큰 요인인 사회적 무관심을 지적하는 데 미처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못했다면, 정규 첫 회는 차근차근 상황을 이 지경으로 몰고간 이들에게 책임을 물었다. 서울시 교육청 소유의 부지에 멋대로 한방병원을 짓겠다는 공약을 내세워 지역구 주민들의 욕망을 들쑤셔 놓은 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이나, 대가성 합의에 동의함으로써 특수학교를 짓기 위해 지역에 모종의 보상을 해줘야 한다는 나쁜 선례를 남긴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조금의 수치도 없이 장애인 시설을 기피시설이라 말하는 비장애인들의 장애인 혐오를 고루 비판한 <거리의 만찬>의 태도는 파일럿에 비해 더 단단해졌다. 따뜻한 공감과 이해를 기반으로 한 시사라는 기본 문법은 유지하되, 사안을 바라보는 비판적인 시선은 더 날카롭게 세운 것이다.

비판은 그게 듣는 이와 말하는 이 모두의 자성으로 이어질 때 가장 빛을 발한다. 국회 일정으로 정규 편성에 함께 하지 못한 이정미 의원의 빈자리를 대신해 정규 멤버로 합류한 방송인 김소영은, 비장애인들의 이기심과 장애인 혐오에 대한 비판 끝에 자성의 결론에 도달했다. “오늘 어머님들을 만나고 ‘나 같은 사람도 문제다’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남 일처럼 생각하는 거. 그냥 ‘저렇게 농성하는 사람도 있지. 하지만 내 일은 아니야’ 그렇게 생각했고, 다른 사람들도 약간 나랑 비슷했기 때문에 이 문제가, 학교 하나 짓는데 10년 가까이 끈 것 아닌가…” 이렇다 할 악의가 없었을 뿐 방관자의 자리에 머물렀던 수많은 이들의 책임을 상기시키는 결론은, <거리의 만찬>이 더 과감하고 적극적인 자세로 한국사회의 곳곳을 들여다볼 준비가 됐다는 출사표처럼 보인다. 단단하고 용감해져서 돌아온 <거리의 만찬>의 정규편성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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