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부터 어긋난 ‘가로채널’의 한계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SBS 예능 <가로채널>은 구독자 100만 달성을 목표로 스타 방송인들이 크리에이터로 변신해 스스로 콘텐츠를 기획하고 출연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인터넷 방송이라기보다는 강호동의 강.하.대(강호동의 하찮은 대결), 양세형의 맛장 등 예능인들이 인터넷방송을 촬영하는 장면을 스튜디오에서 함께 지켜보는 관찰예능의 틀을 따른다.

그런데 이런 액자식 관찰예능은 리얼리티를 기반으로 한다. 가족, 여행, 일상, 동료 등등 실제 관계와 일상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일을 담는다. 장소와 소재에 있어서 기존 관습을 초월한 것이 오늘날 관찰예능의 핵심이다. 이런 관점에서 인터넷 1인 방송 제작기를 지켜보는 재미는 무엇이 있을까. 베테랑 방송인들이 초보 크리에이터가 되어 겪는 좌충우돌기가 흥미로울 수도 있고, 보다 격의 없이 친숙하게 소통하는 모습을 기대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는 강호동, 양세형, 설현 등이 SBS와 맺은 계약과 상관없이 자신의 방송을 만들고, SBS <가로채널>은 그것을 추리고 엮어서 메이킹 필름을 만들었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찬미를 제외한 출연자들이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될 별다른 이유가 없는 상황에서 방송을 위한 유튜브 채널은 외면받기 딱 좋은 홍보용 이벤트다. 방송보다 더 가까운 관계와 소통이 매력인데, 리얼리티부터 떨어지기 때문이다. 댓글들을 봐도 한 달 전에는 강호동이나 양세형 개인채널이냐는 호기심과 응원의 글이 많았지만 방송 프로모션용이란 사실이 드러난 후 실망을 표하는 분위기다. 이런저런 피드백도 없다.

게다가 방송을 즐겨보는 시청자 입장에서 전혀 새롭지가 않다. 2화에는 설현과 찬미가 나와 애완견, 애완묘와 함께 지내는 모습, 민낯과 밥상을 공개하는 브이로그가 방송됐다. 정말 전형적인 관찰예능의 단골 소재다. 게다가 1인 인터넷방송은 소통에 최적화 되어 있어서 인간적인 매력을 방송으로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다시 말해 카메라 안팎이 크게 차이가 없다는 뜻이다. 카메라 밖의 공간이나 관계, 인간적 매력을 소재로 삼는 관찰예능 입장에서 딱히 좋은 콘텐츠가 아니다. 이는 <마리텔><랜선라이프><날보러와요> 등의 선배·동료 프로그램들이 쉽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가로채널>은 100만 구독자를 목표로 한다고 하지만 아직 구독자 수가 공개되지 않고 있다.



이제 막 2회를 방송했으니 미안한 말이지만, <가로채널>은 출발선부터 잘못됐다.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이 특유의 문화나 문법을 발전시킨 것은 처해진 환경에 적응한 결과다. 브이로그, 먹방, 게임방송, 정치 등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고 구체적인 소재나 장르를 파고드는 지극히 작은 방송을 지향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우리나라 최고 인력과 자본, 노하우가 집중된 지상파 채널에서 왜 이런 인터넷 1인 방송 흉내를 내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방송사가 인터넷 방송 콘텐츠를 만들 수는 있으나 갖고 있는 자본과 역량으로 지금의 1인 방송 형태를 따라 만들 이유가 없다. 매체의 특성이나 문화의 본질은 다 덮어놓고 요즘 유튜브가 핫하다니까 껍데기만 빌려온 꼴이다.

그러다보니 방송의 재미와 퀄리티는 오히려 열화 됐다. 섭외력, 제작 노하우와 규모 등 승부를 볼 수 있는 스케일은 축소되고 역량은 봉인된다. 그래서 인터넷 1인 방송 도전기인 <가로채널>이나 <날보러와요>는 맞지 않는 옷을 입어보려는 느낌이 든다. 혹은 코스프레에 가깝다. 수많은 스텝들에 둘러싸여 있는데, 강호동의 손에 카메라가 들려 있다고 유튜브 방송이 되는 건 아니다. 또, 강호동이 승리나 김동현과 대결을 펼치는 것은 대부분의 예능에서 다 풀어낼 수 있는 볼거리다. 유튜브에서 말하는 브이로그는 예능에서 말하자면 <나 혼자 산다>와 같은 일상 관찰예능이다. <가로채널>이 인터넷 방송을 추구하기 때문에 가능했던 특화된 볼거리가 아니다.



어설프게 흉내 내기보다는 1인 인터넷 방송이 범접할 수 없는 다른 길을 가야 한다. <신서유기> 시리즈가 하나의 힌트다. 몸값 높은 예능인들을 섭외하고, 대규모 스텝을 투입한 전형적인 리얼 버라이어티의 제작방식을 기반으로 한다. 그러면서 빠른 호흡의 진행과 인터넷 문화에 익숙한 정서, 시청자들과 대화를 하는 듯한 화면 전환과 맥락을 뛰어넘는 점프컷으로 인터넷방송에 익숙한 대중에게도 이질감이 없다. 망리단길이나 종로가 유행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하드웨어는 오래된 일반 동네인데, 그 안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젊은 감각을 위트 있게 접목시켜 재미를 주고, 새롭게 만드는 방식이다. 방송에 숙련된 제작진이 작정하고 인터넷 방송을 만들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는 <와썹맨>의 사례도 있다.

방송 관계자들, 예능인들은 언제든 인터넷 방송에 도전할 수 있다. JTBC는 룰루랄라를 만들었고, 송은이, 이수근, 하하, 박준형, 안일권 등의 연예인들이 유튜브에서 활약하고 있다. 그런 반면, 우리나라의 그 어떤 유명 크리에이터도 혼자의 힘으로는 지상파 예능과 경쟁할 수 없다. 뒤집어 말하면 그럴 이유도 없다. TV와 스마트폰은 다른 콘텐츠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가로채널>은 여기서부터 출발했어야 한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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