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각시별’, 다시 한 번 입증된 이제훈의 진가

[엔터미디어=정덕현] SBS 월화드라마 <여우각시별>이 종영했다. 한바탕 거칠게 몰아치던 이야기가 한 숨을 돌리고 제 자리로 돌아갔다. 사고로 오른쪽 팔과 다리에 웨어러블을 장착해 괴력을 발휘하기도 했지만, 그것이 만든 부작용으로 몸에 이상증세를 보이던 이수연(이제훈)은 한여름(채수빈)의 “살아 달라”는 애원에 스스로 웨어러블의 작동을 멈췄다. 그리고 1년 후 그들은 다시 공항에서 재회했다.

생각해보면 <여우각시별>은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은 드라마였다. 어딘지 미스터리한 느낌으로 다가와 한 손으로 날아드는 차를 멈춰 세우고, 난동을 부리는 여객의 쇠몽둥이를 한 손으로 막아 꺾어버리는 괴력을 발휘하는 이수연이라는 인물은 어딘지 슈퍼히어로물의 주인공처럼 보였다. 괴력을 갖고 있지만 그걸 숨긴 채 보통사람처럼 살아가고픈 슈퍼히어로.

하지만 알고 보면 이수연이 숨기려 하는 건 슈퍼히어로의 괴력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이 가진 장애였다. 웨어러블 없이는 보통사람처럼 살아갈 수 없고, 휠체어에 탄 자신에게 쏟아지곤 하던 차별적인 시선들을 견뎌내야 하는 삶. 사랑하는 사람이 다쳤어도 당장 뛰어갈 수 없는 몸이 만들어내는 절망감. 그래서 이수연의 꿈은 슈퍼히어로가 되는 게 아니라 보통사람처럼 조용히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런 비밀스럽고 고립적인 그의 삶에 뜨겁디뜨거운 열정을 가진 한여름이라는 인물이 들어온다. 남들과는 다른 자신이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사랑을 하는 그런 꿈을 꿔도 되는가 하고 자문하는 이수연은 어느새 성큼 자신의 가슴에 들어와 있는 한여름을 발견하고는 결국 그 비밀의 문을 열어 보인다. 계속 웨어러블을 사용하면 몸에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고, 심지어 위험한 상황에 이를 수 있었지만 그는 단 한 달을 살더라도 한여름과 보통의 연애를 하고 싶어한다.

슈퍼히어로물의 장르적 이야기가 액션을 통해 보이더니, 그 이야기는 어느 새 장애를 가진 이가 겪는 절망적인 삶의 이야기로 전환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이수연과 한여름의 애틋해지는 멜로가 채워진다. 공항이라는 공간에서 매일 같이 벌어지는 사건사고들 속에서 이수연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펼쳐진 다양한 결의 이야기들. 그걸 한 몸으로 받아내며 소화해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게다.

이제훈이라는 배우의 진가가 느껴진 건 그래서다. 다소 과장된 이야기의 설정들이 존재했고, 극적 사건을 만들어내기 위해 작위적인 구도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배다른 형제였던 서인우(이동건)와의 관계 설정이 대표적이다. 실제로는 동생인 이수연을 보호하기 위해 그랬다지만 그는 드라마 중반 이상까지 이해할 수 없는 악역이었다. 결국 이수연이 죽을 위기에 처한 서인우를 구해내는 걸로 끝나지만.



하지만 이렇게 다소 과장된 설정들에도 드라마 전체에 안정감을 부여한 건 이제훈이라는 연기자가 있어서였다. 그는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 있는 괴력을 발휘하는 장면에서도 얼굴에 핏줄을 세워가며 그 분노와 힘겨움을 표현해냈고, 웨어러블이 없는 장애의 몸을 안고 절망적인 눈물을 쏟아냈으며, 한여름 앞에서는 꿀 떨어지는 눈빛과 미소를 던졌다. 그의 연기에 대한 몰입이 드라마의 작은 허점들을 채워주었다.

<건축학개론>의 풋풋함으로 다가와 <시그널>의 절절함과 <박열>의 호탕함까지 보여줬던 이제훈이다. 그 다양하지만 섬세한 연기의 결은 이번 <여우각시별>에서도 여전히 주목할 만했다. 그 훈훈한 미소만으로도 동화 같은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을 정도로.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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