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좋아’, 아무 생각 없이 웃다가 먹먹해진다는 건

[엔터미디어=정덕현] “도와줘.” 그저 자기주장만 내세우고 고집만 강한 진상으로 알았던 백진상 팀장(강지환)은 가리봉점으로 밀려나 겪는 힘겨운 현실 속에서 이루다(백진희)에게 그렇게 절실함을 드러낸다. 진상 고객이 행패를 부리는 걸 어쩔 수 없이 받아주고 사과하지 않으면 본사에 알리겠다는 진상 고객의 으름장에 제 뺨을 때리며 참아내던 백진상은 이루다를 보자 무너져 내린다.

그 얘기를 듣는 이루다의 눈은 한없이 커지면서 그 안에 다양한 감정들을 담아낸다. 그건 백진상의 새로운 면을 봤다는 놀라움이면서, 동시에 그 힘겨움을 공감하는 마음이고 또한 그 변화를 기꺼워하는 마음이기도 하다. 이런 장면은 KBS 수목드라마 <죽어도 좋아>가 시종일관 빵빵 터지는 웃음의 코미디를 그려나가면서 슬쩍 얹어놓은 공감의 페이소스다. 이 역할을 연기하는 백진희는 그 놀라면서도 감동하며 공감하는 그 복잡한 마음을 얼굴 표정 하나로 표현해낸다.

<죽어도 좋아>는 타임루프라는 판타지 설정까지 가져와 직장상사를 갱생시킨다는 다분히 블랙코미디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가끔씩 코미디에서 벗어나는 지점들이 등장한다. 희극과 비극은 종이 한 장 차이이고, 멀리서 보느냐 가까이서 보느냐의 차이라고 말하듯, 시종일관 흐르던 코미디는 살짝만 틀어 보여주는 그 밑에 깔려 있는 비극적인 현실이 드러난다.



도무지 진심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백진상 같은 인물이 진심을 드러낼 때가 그렇고, 그가 밀려나 가게 된 가리봉점의 매장직원이 아무렇지 않은 듯 버텨내다 결국은 그 힘겨움을 드러낼 때가 그렇다. 단골이라며 찾아와 막말에 성희롱, 성추행을 일삼는 진상손님에게 보다 못한 백진상이 나서서 한 마디 쏘아붙인다. “치킨 두 마리 생맥주 두 잔 도합 사만사천원. 여기에 치킨과 생맥주 그리고 편의를 제공하는 서비스값이 포함된 거지 멋대로 갑질하는 걸 받아주는 건 비용이 1도 포함돼있지 않습니다.”

그렇게 진상손님을 쫓아 내버리자 왜 문제를 만들었냐고 실장 아줌마가 다그치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 때 성추행을 당한 매장직원이 다가와 백진상에게 말한다. “아까는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실장님. 진짜 상사다운 게 뭔데요? 어떻게 해야 좋은 상사인데요. 저는요 손님이 큰 소리만 질러도 가슴이 조마조마해요. 무슨 말을 들을까봐. 무슨 짓을 당할까봐. 근데 실장님은 그런 일 있을 때마다 그냥 넘어가자고 하셨잖아요. 별 일 아니라고. 결국엔 그냥 제가 다 참으란 거잖아요.” 자기 딸 같아서 그랬다고 말하는 실장 아줌마에게 매장직원은 속내를 털어놓는다. “누가 그런 걸 바란댔어요? 누가 엄마 같은 상사를 바란댔어요? 직장에서는 제대로 보호해주고 막아주는 상사가 훨씬 필요하다고요.”



뛰쳐나가는 매장 직원을 따라나서는 이루다는 그 직원이 아무 말 없이 눈물을 보이며 자신에게 다가와 안기는 걸 받아준다. 이루다의 얼굴에는 그 직원에 대한 깊은 공감이 고스란히 담긴다. 그리고 그 공감은 이루다의 얼굴을 통해 시청자들에게도 그대로 전해진다. 아무 생각 없이 깔깔 웃으며 보다가 어느 순간 드러나는 진심은 그들이 그간 웃고 있어도 사실은 울고 있었다는 걸 알려줌으로써 시청자들을 먹먹하게 만든다.

이건 어쩌면 <죽어도 좋아>가 직장인들을 바라보는 시각일 게다. 강준호(공명)가 이루다에게 말하듯, “지켜보다 보니 지켜주고 싶어졌다”는 그 시각 말이다. 그 누구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려 해 마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샐러리맨들의 아픈 속내들. 지켜보다 보니 그 속내들이 보이고 그러다보니 그들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생겨난다. 이건 타인의 아픔을 들여다보는 이루다에게도 똑같이 해당되는 이야기다.



“이대리도 힘들잖아요. 이건 진짜 현실이니까. 이대리도 그냥 평범한 사람인데 부딪치고 깨지고 그렇게 웃고 있어도 당연히 힘들거잖아. 난 그게 너무 신경 쓰여요. 그리고 루다씨를 지키려면 나도 더 이상 겁쟁이여서는 안 될 거 같고. 저도 이제 도망치지 않고 해볼게요. 그러니까 내 옆에서 저 지켜봐 줄래요?” 강준호가 이루다에게 하는 고백을 담은 이 말이 그저 사랑고백의 차원 그 이상으로 다가오는 건 그것이 이 드라마가 진심으로 하려는 이야기처럼 들려기 때문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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