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달 푸른 해’가 제공하는 장르적 재미, 그 이상의 이야기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새 드라마들이 연일 쏟아지는 가운데 가장 치열한 드라마전이 펼쳐지는 시간대는 수요일과 목요일 밤이다. 이달 초 방영을 시작한 KBS <죽어도 좋아>에 이어 MBC <붉은 달 푸른 해>와 SBS <황후의 품격>이 전주에 나란히 첫 회를 내보냈고, 이번 주 tvN <남자 친구>가 가세하면서, 한 달 사이 신작 네 편이 한꺼번에 맞붙게 됐다.

오피스물, 가상의 역사 로맨스, 미스터리 스릴러, 트렌디 로맨스 등 각각 다른 장르와 이야기로 시청자들을 공략하고 있는 네 드라마. 이 중 시청률과 무관하게 가장 눈에 띄는 신작은 무엇일까? 이번 주 [TV삼분지계]가 주목한 작품은 미스터리 스릴러 <붉은 달 푸른 해>다.



◆ 흥미로운 퍼즐 맞추기

일단 흥미롭다. 제각기 다른 사연의 죽음과 그때마다 발견되는 학대 받은 아이와 서정주의 시 구절은 무슨 상관이 있는지, 소라 엄마 동숙(김여진)과 비밀스런 연락을 주고받는 ‘붉은 울음’은 누군지, 아동 심리 상담사 차우경(김선아)과 형사 전수영(남규리)에게서 언뜻언뜻 엿보이는 폭력성의 배경은 무엇인지, 또 새로이 부각되고 있는 한울 센터 직원 이은호(차학연)는 과연 조력자인지 아니면 범인에 가까운지, 알고 싶은 것들도 많다. 이런 의문들이 채널을 돌릴 수 없게 만들긴 하나 퍼즐 조각이 너무 복잡하면 맞추기를 포기하고 싶어지기 마련이 아닌가. 시청자가 재미를 느끼고 몰입을 이어갈 수 있도록 더 늦기 전에 맞춰지는 그림이 하나 둘씩 나와 줘야 하지 않을까?



개성 있는 여성 캐릭터가 여럿 등장하지만 귓전을 울리는 대사는 소라 엄마의 “형사님, 저 돈 나 주는 거예요? 감사합니다.” 하나다. 남편의 시신과 함께 발견된 300만원을 갖게 됐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소라 엄마. 김여진 씨가 <내 뒤에 테리우스>의 ‘심은하’의 여운이 채 가시기 전에 바로 후속작 <붉은 달 푸른 해>에 투입되는 것에 대한 우려의 시선이 있었다. 그러나 웬 걸, 소라 엄마에게서 심은하의 어떤 흔적도 눈에 띄지 않는다. 배신한 남편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 찬 차우경과, 남편의 보험증서를 찾는 동숙을 교차 편집한 장면은 명불허전, 역시 김여진! 절박함과 불안, 해방감으로 뒤섞인 다양한 감정들이 표정 곳곳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와 달리 보정 탓인지 시술 때문인지 속내를 읽기 어려운 몇몇 연기자들의 경직된 표정은 마이너스 요인이다. 캐릭터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던지는 용기를 보여줬으면.

방송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 장르적 재미, 그 이상의 이야기

올해 드라마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장르물의 약진이다. 그동안 한국형 장르물의 유행을 선도한 OCN은 올해 <미스트리스>, <라이프 온 마스>, <손 the Guest> 같은 수작들을 통해 장르물 명가로서 브랜드를 확실히 굳혔고, SBS를 제외하고 상대적으로 정통 장르물에 소홀했던 지상파 채널에서도 참신한 작품들을 내놓았다. MBC <붉은 달 푸른 해>가 그 사례다. 벌써 15년 전 MBC <베스트극장-늪>을 통해 영화 같은 완성도의 미스터리를 선보인 바 있는 도현정 작가는 2015년 또 한편의 미스터리 SBS <마을-아치아라의 비밀>로 장르팬들의 호평을 얻었고, 이번 <붉은 달 푸른 해>에서는 그야말로 원숙한 필치를 증명하고 있다.



전작에 이어 여성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운 <붉은 달 푸른 해>는 그 자신이 깊은 어둠과 비밀을 품고 있으면서 또 다른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는 차우경(김선아)의 입체적 캐릭터가 초반부터 눈길을 사로잡는다. 아동 상담사인 우경의 직업은 이 작품의 플롯은 물론 주제와도 긴밀히 연결돼 있다. 결국 이 작품의 가장 큰 미스터리는 우경이 2회에서 경찰에게 던진, “어떻게 아이가 무연고자가 될 수 있는 거에요?”라는 물음에 있기 때문이다. 우경이 상담하던 10세 아동 한시완(김강훈)으로부터 시작해, 이 드라마에는 방임당하고 학대당하는 아이들의 목소리와 흔적으로 가득하다. 보호받아야 할 아이들이 가장 잔인한 폭력에 내몰리는 불가해한 세상에 대한 의문이, <붉은 달 푸른 해>의 미스터리를 단순히 장르적 쾌감으로 즐기는 것을 넘어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하는 거울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칼럼니스트 김선영 herland@naver.com



◆ 가스라이팅을 깨부순 여성 주인공의 등장

영화 <가스등>(1944) 속 폴라(잉그리드 버그먼)는 미칠 것 같다. 매일 밤 남편이 출근한 이후면 천장 위에서 발소리가 들리고 가스등이 희미해지는데, 그 모든 게 자신의 착각이라 말하는 남편 때문에 자기 자신을 믿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내가 정말 미친 걸까? 남편 없이는 아무 것도 제대로 보고 들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걸까? 폴라가 보고 들은 모든 것은 환각이 아니었다. 모든 게 폴라를 정신병원으로 보내고 재산을 가로채려던 남편 그레고리의 계략이었던 것이다. 상황 조작을 통해 상대가 스스로 판단력을 불신하도록 만듦으로서 정신적으로 황폐화시키고, 그 틈을 타 상대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을 의미하는 심리학 용어 ‘가스라이팅’이 바로 이 영화에서 비롯됐다.

MBC <붉은 달 푸른 해> 속 우경(김선아)이 보는 정체불명의 소녀(채유리)가 현실이 아닌 환각이란 점은 확실하다. 우경은 소녀의 오빠로 추정되는 신원미상의 소년을 차로 치는 사고를 저질렀고, 그 죄책감이 남은 자리에 자꾸만 소녀의 환각이 불쑥불쑥 침투해 들어온다. 그러나 우경이 보는 환각은 진실의 실마리를 품고 있어서, 우경으로 하여금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 죽음을 발견하게 만든다. 누군가 일찌감치 눈치 채고 개입했더라면 막을 수 있었을 지 모르는 아동학대의 흔적이 농후한 죽음들을. 우경의 남편(김영재)은 끊임없이 정신과 진료는 받고 있는 거냐고 물어오지만, 그런 그가 진실에 다가가지 못하는 동안 우경을 믿어 보기로 한 지헌(이이경)은 진실에 한 걸음 더 다가간다.



남의 집 가정사라는 이유로 외부에서는 좀처럼 들여다보기 어렵거나 신경 쓰지 않는 범죄인 아동학대는, 자칫 의심하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으로 몰리기 쉽다. 그런 의미에서 사건의 실마리를 찾는 사람이 하필 끝없이 환각을 보는 우경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우경은 자신이 보는 소녀의 환각에 대해 ‘반드시 어떤 이유가 있어서 반복해서 보는 것’이라 굳게 믿고, 소녀를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할 것을 결심한다. 그런 각도로 본다면, <붉은 달 푸른 해>는 윤리적인 선택을 내리기 위해 온 세상이 자신을 향해 벌이는 가스라이팅을 떨쳐냄으로써 자신과 타인을 구원하는 여성의 서사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사진=MBC]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