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금 스릴러 ‘나쁜 형사’ 신하균의 질문, 무엇이 정의인가

[엔터미디어=정덕현] 과연 무엇이 정의일까. 연쇄살인범이 분명한 걸 알아도, 증거가 없어 법망을 버젓이 빠져나가는 살인범. 그 살인범에 의해 또 다른 살인이 벌어지는 걸 눈앞에서 보고만 있어야 하는 형사. 과연 이런 상황에서 법 절차를 지켜야 하는 것이 정의일까 아니면 당장이라도 살인범을 막아 또 다른 살인이 벌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 정의일까.

MBC 새 월화드라마 <나쁜 형사>는 제목이 말해주듯 범인 잡는 형사이긴 하지만 법적 절차를 무시하고, 심지어는 증거까지 조작하는 우태석(신하균)이라는 문제적 인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상파에서는 자주 선택되지 않는 19금을 내놓고 표방했고, 첫 회부터 사이코패스의 잔인한 범행 장면들이 고스란히 등장한다. 납치된 여인의 치아를 뽑고 손가락을 자르는 잔혹한 연쇄살인마의 범행들.

이미 OCN 같은 케이블채널이 자주 보여줬던 잔인한 19금 스릴러는 이제 장르물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에게 어느 정도 받아들여지는 상황이다. MBC가 대놓고 19금 스릴러를 월화드라마로 세웠다는 건 이제 그만큼 이 장르물에 대한 저변이 넓어지고 있다는 뜻도 된다. 실제로 MBC는 드라마 자체가 어려운 시절 <검법남녀> 같은 법의관이 등장하는 스릴러 장르로 톡톡한 재미를 본 바 있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현재 수목드라마에 편성된 <붉은 달 푸른 해>도 미스터리 스릴러다.



중요한 건 19금 스릴러라고 잔인한 장면이 주는 자극만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거기에 맞는 합당한 질문과 메시지가 담겨 있는가 하는 점이다. <나쁜 형사>는 그런 점에서 보면 19금을 내세운 면이 충분히 납득된다. 그만한 잔혹한 범죄자들이 드러나야 이 우태석이라는 문제적 형사가 그토록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유가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선이 악을 무너뜨리는 이야기가 그다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게 된 건, 우리가 바라보는 현실이 그런 이야기를 너무 순진하게 여겨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무고한 이들을 죽음으로 내몬 기득권자들이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고 법망을 빠져나가는 걸 우리는 너무나 많이 봐오지 않았던가. 그래서 선이 아니라 악이 악을 무너뜨리는 방식의 이야기가 설득력을 얻는 실정이다.

이런 사정은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미국이든 영국이든 그다지 다르지 않다. 그래서 연쇄살인마를 사냥하는 소시오패스를 다룬 <덱스터> 같은 미국드라마가 나오고, <나쁜 형사>의 원작드라마인 <루터> 같은 영국드라마가 나오는 것일 게다. 어쨌든 그래서 <나쁜 형사>는 우태석이 법망을 벗어난 행동을 노골적으로 하고 당장 눈앞에서 살려 달라 말하는 장형민(김건우)을 죽게 내버려두는 장면들이 나오지만, 그런 장면은 묘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공적 정의가 해내지 못하는 걸 이 문제적 인물이 사적으로 처단하는 장면이 주는 카타르시스다.



그런데 결국 우태석은 ‘나빠도’ 형사일 수밖에 없다. 그가 연쇄살인마들에게 남다른 적개심과 분노를 갖고 있고, 그들을 사적으로 처단하고픈 욕망을 갖고 있다고 해도 형사로서 갖게 되는 정체성의 혼돈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앞에 나타난 매혹적인 사이코패스 은선재(이설)는 우태석을 부추길 것이지만, 과연 그는 이 유혹을 뿌리칠 수 있을까. 결국 나빠도 형사로 존재할 것인가 아니면 형사라고는 하지만 연쇄살인마와 다를 바 없는 이들로 전락할 것인가. 이 부분이 <나쁜 형사>가 던지는 흥미로운 질문이다. 사적 처단의 카타르시스와 그것이 시원하기는 하지만 그로 인해 저들과 같아지는 형사의 딜레마. 그건 우리가 세상의 악들을 들여다보며 느끼는 분노 속에서 갖게 되는 딜레마이기도 하니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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