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뜩한 비극에 더 가까운 ‘SKY 캐슬’이 그리려는 것들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한국의 막장드라마 장르는 재벌가건 평범한 집안이건 서로 지지고 볶는 아귀다툼이 주를 이룬다. 순한 맛 오랜 전통의 KBS1 일일연속극, 중간 맛 MBC 주말드라마, 빨간 맛은 각 방송국의 아침드라마나 저녁 일일드라마쯤 되겠다. 이 드라마들은 여전히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지만 이제는 누구도 주의 깊게 보지는 않는다.

한편 JTBC의 어떤 드라마들은 이 막장드라마와 비슷한 이야기를 다루지만 그간 다른 방송사들과 궤를 달리했다. 자극적인 것은 마찬가지지만 식상한 아귀다툼은 아니었다. 자본주의의 극한에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적인 막장을 드라마로 보여줬다.



JTBC 드라마의 대표작인 <아내의 자격>이나 <밀회>부터가 그랬다. 두 작품 속의 인물들은 자극적인 대사와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뛰어다니지 않는다. 그들은 철저히 자신이 처한 계급에 따라 사고하고 움직인다. 그리고 어떤 계기에 의해 그 계급의 속성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 현실감이나 역동성 때문에 <아내의 자격>이나 <밀회>는 21세기의 한국 중상류층 사회를 그리는 리얼리즘 영상 소설로 다가왔다. 배우 김희애가 연기한 주인공 윤서래나 오혜원은 모두 상류사회에 발을 디뎠지만 그들의 고급스런 노비 같은 인물들이었다. 두 작품은 윤서래와 오혜원이 각각 자존감의 회복과 진정한 사랑의 발견을 통해 그 사회를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또한 두 작품 모두 고급스러운 영상미와 우아한 대사를 통해 한국의 1% 상류사회가 얼마나 귀족적이지 못하고 천박한지 품위 있게 돌려 까는 역할도 했다.



한편 2017년의 <품위 있는 그녀>는 살짝 결이 다른 작품이었다. <품위 있는 그녀> 역시 상류사회를 그리지만 톤은 좀 더 가벼워졌고 풍자성은 더 강해졌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기는 했지만 이 드라마는 철저하게 코미디의 방식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품위 있는 그녀>만큼 자본주의 사회에서 벌어진 인간의 욕망에 대해 날카롭게 파고든 작품도 흔치 않았다. 재벌가의 회장인 안태동(김용건)을 통해 가진 자의 욕망이 별 것 없음을, 박복자(김선아)를 통해 가지려는 자의 욕망이 얼마나 집요하고 또 허망한지를 보여주었다. 또한 주인공 우아진(김희선)을 통해 욕망의 시대에 지혜롭게 사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내기도 한다.

최근 방영을 시작한 [SKY 캐슬] 역시 전작들과 비슷한 유형의 드라마지만 스타일은 조금 다르다. 종종 코믹한 장면들도 있지만, 이야기는 종종 징그럽게 느껴진다.



[SKY 캐슬]은 상류층 0.1%의 엄마들이 자식들을 통해 벌이는 입시경쟁이 주요 소재다. [SKY 캐슬]이 이들 가족의 우아한 거주지인 동시에,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명문대를 상징하는 글자의 조합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런데 [SKY 캐슬]은 여주인공들을 단순한 극성엄마로 그리지는 않는다. 과거 입시 드라마 속 엄마들은 자신의 억척스런 희생을 통해 자식의 성공을 꿈꿨다. 하지만 [SKY 캐슬]은 상류층 이너서클 안에서 퀸이 되기 위해 자식을 입시의 희생물로 삼는 엄마들의 세계를 그린다.

[SKY 캐슬]의 초반 눈 내리는 호숫가에서 사냥총으로 자살한 이명주(김정난) 같은 인물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드라마는 이명주가 자살에 이르는 과정을 한편의 비극적인 서사시처럼 그려낸다.



맞다, 이 드라마 가볍지만 묘하게 희극보다 섬뜩한 비극에 더 가깝게 느껴질 때가 많다. 더구나 드라마가 아닌 현실 속의 스카이캐슬은 상류층의 빌라단지가 아닌 서울 강남에서 가장 가까운 납골당의 이름이다. 어쩌면 [SKY 캐슬]은 최고의 삶을 꿈꾸지만, 결국 유령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그리고 있는 건 아닐까?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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