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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해도 얄밉진 않다, 10년간 진화한 ‘황품’ 김순옥의 필살기
기사입력 :[ 2018-12-12 16:35 ]


‘황후의 품격’, 10년근 막장 진액의 풍부한 맛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SBS 수목드라마 <황후의 품격>을 보고 있노라니 처음에는 통탄스럽기 짝이 없었다. 아무리 지상파 미니시리즈가 근본 없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한들 <황후의 품격> 같은 경우 전례 없는 졸작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사건은 납득할 이유 없이 너무 빨리 진행되고, 인물들에게서는 일말의 품격조차 찾아보기 어려웠다. 내가 왼쪽 뺨에 갑자기 따귀를 맞았는데, 왜 맞았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또 오른쪽 뺨을 후려갈기는 작품이 나타난 것이다.

<황후의 품격>은 입헌군주제 대한민국이란 가상역사를 배경으로 음악극 배우 평민 오써니(장나라)가 대한민국 황궁에 시집가면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다룬다. <황후의 품격> 속 대한민국 황궁 또한 통탄스럽기 짝이 없다. 황궁은 황후의 죽음으로 정신이 붕괴된 황제 이혁(신성록)과 황제전 비서팀장 민유라(이엘리야)의 퇴폐적인 애정행각이 난무하는 곳으로 묘사된다. 또한 태후 강씨(신은경)는 황제와 비서팀장의 알몸 일탈을 폐회로 텔레비전으로 감상하며 제주감귤을 까먹는 관음증적 태도를 보이기까지 한다. 여기에 이혁 황제와 민유라 탓에 어미를 잃은 나왕식(태왕호)을 통해 김순옥 작가 특유의 필살기도 등장한다. 물론 이번에는 점찍고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기 신공은 아니고, 다이어트로 근육질 미남으로 변신하는 긁지 않은 복권 신공술의 수법이다.



하지만 요상한 것이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황후의 품격>은 황당하긴 해도 얄밉거나 불쾌한 극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오써니 황후가 부른 전자음악 반주 아리랑에 맞춰 외국인 귀빈들이 강강술래를 추는 황당한 장면이 밉지 않고 귀엽게 느껴지듯 말이다.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온 국민이 다 아는 막장극의 기본양념을 응용해 함께 생각 없이 강강술래나 추어요, 라고 대놓고 체통 없고 정신머리 없이 빙빙 도는 극을 보노라면 순간 피식피식 웃음이 터질 때가 있는 것이다.

특히 그간 일일극과 주말 막장극으로 유명세를 탄 김순옥 작가는 막장극의 지루하고 짜증나는 부분을 깔끔하게 도려내는 솜씨를 보여준다. <아내의 유혹> 이후 10년! <황후의 품격>은 막장극을 추리고 추려 짜낸 10년근 막장 진액 같은 이야기인 셈이다. 그러면서도 인물간의 얽히고설킨 연결고리를 쉽게 납득할 수 있게 보여준다. 보기에는 쉬워보여도 생각보다 쉽지 않은 방법인 셈이다. 그러니 <황후의 품격> 이후 섣불리 다른 작가들이 이 속도감을 따라했다가는 호환마마 같은 시청자들의 악성댓글에 시달릴 수도 있으리라.



여기에 오써니 황후나 태왕태후 조씨(박원숙) 같은 밝고 사랑스러운 캐릭터 덕에 자극적인 이야기가 주는 불쾌감도 훨씬 덜하다. 다만 상황이 이렇다보니 문제를 만드는 사고뭉치로 등장하는 민유라는 얄팍한 인물로 등장할 수밖에 없다. 악녀에게도 변명의 여지를 남겨주던 작가의 전작들과 달리 민유라는 그냥 나쁘고 미움 받을 수밖에 없는 인물인 것이다.

또한 <황후의 품격> 자체가 폭넓게 사랑받는 데는 한계가 있는 작품이 아닌가 한다. 극 자체가 요약본처럼 다가오는지라 요약본에 익숙하지 않은 시청자들에게는 맥락 잡기가 힘든 부분이 있다. 또한 60분의 극을 6분으로 보는 요약본은 흥미진진하지만, 60분의 요약본을 보고 있노라면 그 이야기의 빈틈이나 끊기는 감정선 때문에 흥미를 잃을 수도 있다. 또 드라마에서 의미나 교훈을 찾으려는 시청자들에게 <황후의 품격>은 알맹이 없는 쭉정이다. 하지만 그간 알맹이도 없으면서 돈만 들여 있는 척만 하던 몇몇 드라마에 비하면 그래도 <황후의 품격>은 솔직한 편 아니겠는가.



더구나 김순옥 작가는 <황후의 품격>을 통해 평범한 극의 서사 안에 B급 감성을 대놓고 집어넣는 솜씨를 뽐낸다. 1980년대 홍콩 무협영화 같은 액션신, 갑자기 만화로 변신하는 장면, ‘태태후마마’의 비녀 던지기 신공 같은 황당한 장면들이 꽤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것이다. 그 B급 감성 덕에 <황후의 품격>은 웹툰이나 ‘개그짤’에 익숙한 세대, 혹은 드라마귀신처럼 드라마에 붙어살며 작가가 쓸 반전까지 예측, 작가 머리 위에서 뛰노는 인터넷 사용자들에게는 오히려 친근하고 정겨운 작품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법하다. 세대를 초월한 막장극으로 인기를 끌 가능성보다 의외로 특정 계층에서 열광적으로 좋아할 작품이 <황후의 품격>인 셈이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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