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맛’, 오늘날 시청자 입맛을 알려주는 바로미터인 까닭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리얼 버라이어티로 전환된 이상 우리 예능이 갈 곳은 결국 스토리였다. 이것이 <개그콘서트>가 영광의 뒤안길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유며, ‘지겹다는’ 관찰예능 우산 아래서 리얼리티 예능이 수많은 변주를 계속 거듭하고 있는 까닭이다. 간혹 복고의 바람이 부질없이 불긴 하지만 예능은 이미 쇼에서 드라마로 전환됐다. 예능에서 리얼은 몰입의 여지가 매우 큰 새로운 환경이었고, 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써먹을 수 있는 방식은 아이러니하게도 스토리, 즉 극화였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진짜의 생생함보다 더 자극적이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란 없다.

그런 점에서 TV조선 <연애의 맛>은 이 결론에 추가된 또 하나의 레퍼런스다. 이필모·서수연 커플의 결혼 발표 소식이 축하할 만한 일인 동시에 언급할 만한 뉴스인 이유다. ‘필연 커플’은 올해 강수지·김국진에 이어 예능 프로그램에서 맺어진 커플이자, 연예인이 출연하는 우리나라 연애 예능 사상 최초의 해피엔딩 사례다(물론, 보편적인 통념을 언급했을 뿐 연애의 행복한 결론이 결혼이 아닐 수도 있음을 밝혀둔다).



한때 MBC는 <우리 결혼했어요>를 굉장히 사랑스러워했다. 그 사랑이 너무 큰 나머지 판타지가 더 이상 살아 숨 쉬지 않은 지 수년이 지났지만 미라를 사람처럼 끌어안고서는 가상 결혼에서 아이돌 연애, 현실 연애 등등의 이름으로 사골국이 맑은 생선탕이 될 때까지 미련을 놓지 못했다. 너무 과한 애정이라 그렇지 이해할 수 있다. 가상 결혼 콘셉트,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는 방법론, 현실과 경계를 넘나드는 스토리텔링, 일상 공간 노출이란 기존 관념을 넘어선 볼거리는 일종의 신기원이었다. 처음 제대로 맛본 현실과 방송의 경계는 무척 짜릿했다. 돌이켜보면 KBS2에서 내보였던 <인간의 조건> 시리즈와 함께 관찰예능의 뿌리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2019년을 앞둔 지금, 그 누구도 <우리 결혼했어요>처럼 판타지를 조성하지 않는다. 그 시절에는 제작진, 출연진, 시청자 모두가 방송용 가상임을 인정한 가운데서 판타지가 작동했지만 이제는 불가능하다. 방송을 위한 설정은 우리가 사는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진짜 누군가나 특정 상황을 소재가 방송이 되면서 설 자리를 잃었다. 시청자들은 TV안팎으로 즐길 수 있는 살아있는 스토리를 가진 예능 콘텐츠에 관심을 보인다. 이는 예능에서 말하는 리얼의 덕목이 일상성에서 진정성으로 진화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같은 이유로 예능 제작 과정은 복잡 방대해지고 촬영분량은 엄청나게 증가했지만, 촬영과 방송 사이의 틈은 물리적, 정서적으로 점점 줄어들고 있다. 수요일 밤 <백종원의 골목식당>이 방송되면 그 다음날부터 가게 매상과 동네 상권 자체가 요동을 치고, 엠넷의 서바이벌쇼들은 많은 문화 상품과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식이다. 그래서 ‘진짜’를 내보이는 사람은(사람의 매력은) 더욱 중요해졌다. 방송 감각이 있고 눈치가 뛰어나며 게임이나 관계 맺기에 능한 익숙한 예능 선수들의 활용도는 점점 떨어지는 대신 진짜를 가져다 보여줄 수 있는 누군가가 더욱 매력적인 예능인으로 각광받는다. 예능 출연자 중에서 비연예인의 비율이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으며, <도시어부>나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보듯 예능의 가장 큰 리스크는 ‘노잼’이 아니라 사람이다.

지난 9월 16일 첫 방송을 시작한 <연애의 맛>은 연예인과 비연예인의 연애를 담는 연애 예능이다. 제작진이 제시하는 대본과 데이트 코스 없이 출연자들이 직접 준비한 상황에서 펼쳐지는 현실 만남이 콘셉트다. 시청자들은 흐름을 지켜보면서 깊어지는 연애 감정을 즐긴다. 프로그램은 방송을 위한 만남이란 전제를 밝히면서도 감정이 발전해 방송 안에서 머물 수도 있고 밖으로 확장될 수 있다며 모든 게 리얼이니 믿어달라며 호소했다.



그리고 결혼 발표 소식과 함께 진짜와 가짜의 경계는 긍정적인 의미로 해소됐다. 3개월 만에 예능으로부터 비롯된 이야기가 누군가의 실제 삶으로 확장됐다. 그런 의미에서 <연애의 맛>은 오늘날 예능의 모습이자 다음 길을 안내하는 이정표다. 결혼 발표 소식과 함께 바로 이필모-서수연 커플 특집을 편성하는 적극성이 다소 부담스럽긴 하지만 <연애의 맛>은 오늘날 예능 시청자의 입맛을 알려주는 예능 미각의 바로미터라 할 수 있겠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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