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삼분지계’ 선정 올해의 인물 - 장도연·김선아·김하온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올해도 TV는 매일같이 수많은 얼굴을 담아내느라 분주했다. 하지만 새로운 얼굴보다 그 얼굴이 그 얼굴인 경우가 더 많았다. 지난해 [TV삼분지계]는 2017년의 인물들을 선정하면서 새로운 해에는 더 많은 대안과 이상을 만날 수 있기를 기원했다. 2018년의 인물로 꼽은 세 명, 배우 김선아, 예능인 장도연, 랩퍼 김하온은 각각 자기 전문 영역에서 기존의 관습과 한계를 뛰어넘은 활약을 펼치며 스스로 그 분야의 대안이 된 인물들이다. 내년에도 꾸준한 대안과 희망의 얼굴들을 기대해본다.



◆ 장도연, 잘 될 줄 알았어

“프로그램에 정을 주면 안 되겠구나. 일에 마음을 여는 제가 촌스럽게 여겨지기도 했어요.” 장도연이 Olive <밥블레스유>에서 조심스레 꺼낸 말이다. 이젠 흔한 일상이 되어버린 프로그램 폐지와 출연자 교체, 따라서 새로이 합류한 <밥블레스유>를 어찌 대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고백이었다. 짐작컨대 술 마시며 얘기 나누는 프로그램 하차에 대한 소회이지 싶은데 느닷없는 변화로 마음 상한 건 시청자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오랜 단골집이 귀띔도 없이 문을 닫아버린 기분이었으니까. 누굴 위한 일이었는지 원. JTBC <방구석 1열> 때도 느낀 바지만 예능인 중에 초대 손님이며 그날의 주제에 대해 그만큼 소상히 알고 준비해오는 이가 또 있나 모르겠다. 재치와 순발력은 물론 진정성 또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것을. 아쉽긴 해도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은 틀리는 법이 없다. <인생술집> 대신 <밥블레스유> 언니들이라는 천군만마를 얻었으니 말이다.



그런가하면 채널A <도시어부>에서는 이경규 씨의 ‘어떤 연기자로 남고 싶냐’는 질문에 ‘언짢은 사람이 있는 개그는 안 하겠다’라고 한마디로 답했다. 웃겼어도 누군가 불편한 사람이 있으면 어쩌나 마음이 쓰인다나. 그 말을 듣고 무릎을 쳤다. 오래전 병풍 신세였던 MBC <세바퀴> 고정 패널 시절부터 이상하게 눈길이 가더니만 그 이유가 사람에 대한 배려였구먼, 내 식구가 아닌 연예인일 뿐인데 잘 되길 바라게 되는 이들이 있다. 내게는 장도연이 그렇다. SBS 파일럿 <미추리>에서 ‘장도연 되다’의 반전으로 최후의 승자가 된 장도연. 내년에는 더 잘 되기를. 그리고 그 다음 해에는 좀 더 잘 되기를. 그렇게 바람대로 가늘고 길게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기를.

방송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 김선아, 2018년 드라마 경향의 상징적 이름

올해 드라마의 가장 빛나는 성취 중 하나는 ‘사십 대 이상 여배우’들의 활약이다. 이들을 따로 카테고리화 하는 것은, 삼사십 대에 오히려 전성기를 구가하는 남자 배우들과 달리 여자 배우들은 나이가 많아질수록 드라마 주연을 맡을 기회부터 눈에 띄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는 그 한계를 뛰어넘은 여성 배우들이 드라마 역사를 새로 쓰다시피 한 해였다.

무엇보다 이 같은 경향이 남성 배우들의 전유물과도 같던 장르물을 중심으로 구축된 현상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더 크다. 비록 유종의 미를 거두지는 못했으나 올해의 경향에 첫 물꼬를 튼 <리턴>의 고현정, tvN <마더>의 이보영과 이혜영, KBS <추리의 여왕> 최강희, JTBC <미스티> 김남주, tvN <나인룸>의 김해숙과 김희선, SBS <시크릿 마더>의 송윤아, KBS <오늘의 탐정> 이지아, MBC <붉은 달 푸른 해>의 김선아, tvN <계룡선녀전>의 고두심, JTBC [SKY캐슬]의 염정아, 김서형, 이태란, 윤세아, 오나라 등 장르물 주연진만 꼽아도 전례 없는 라인업이 완성된다.



이 가운데 김선아의 활약은 특별히 눈여겨볼 만하다. 올해의 경향에 중요한 발판이 된 작품인 JTBC <품위 있는 그녀> 이후, 김선아는 1년여 사이에 벌써 두 작품이나 선보였다. 여성 배우가 사십 대 중반 이후에 더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모습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데다, 두 작품의 장르가 극과 극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정통 멜로 <키스 먼저 할까요?>의 투명한 안순진과 스릴러 <붉은 달 푸른 해>의 비밀스러운 차우경, 전혀 다른 두 얼굴은 김선아 연기의 넓은 스펙트럼을 새삼 확인시켜준다. <붉은 달 푸른 해>에서 젊은 남배우 이이경을 조력자로 두고 전면에서 극을 이끌어가면서, 흔히 연상의 원톱 남배우와 그 상대역인 젊은 여배우 조합을 내세우는 장르물의 주연 구도를 뒤집었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올해의 임팩트로 따져보면 다른 배우를 먼저 떠올릴 수 있을지 몰라도, 더 거시적인 시선으로 2018년을 돌아볼 때 사십 대 이상 여성 배우들의 행보를 넓힌 선례를 살핀다면 김선아야말로 제일 먼저 불려야 하는 이름이다.

칼럼니스트 김선영 herland@naver.com



◆ 김하온, 증오 대신 성찰을 택한 여행자

오랜 시간 한국 대중음악의 변방에 머물러 있던 힙합은 Mnet <쇼 미 더 머니> 시리즈를 통해 동시대 가장 대중적인 장르로 성장했지만, 동시에 쇼에 예능적 재미를 더 하기 위해 끊임없이 라이벌 구도를 부각시키며 극한대결과 디스전, 마이크 쟁탈전을 유도해 온 Mnet과 그 장단에 발맞춘 플레이어들 덕분에 장르 전체의 인상이 납작하게 왜곡되는 걸 피할 수 없었다. 이유 없는 분노와 맥락 없는 디스전, 뜬금없는 돈 자랑과 인맥 자랑, 도를 넘는 혐오 표현이 장르 자체의 특성인 양 승인을 받는 동안, 힙합 씬을 향한 대중의 환호는 조금씩 염증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2018년 한 해 내내 사회적 물의를 빚고 경찰에 구속되거나 사회면에 오르내린 래퍼들이 줄을 이었고, Mnet <쇼 미 더 머니 777>은 중도에 탈락한 뒤 발표한 싱글 ‘소년점프’에서 “한국 힙합 망해라”라고 외친 마미손이 우승자 나플라보다 더 많은 환호를 사는 기괴한 결과를 낳기도 했다.



씬 전체에 변화의 계기가 절실하던 순간, 명상과 자기 성찰을 이야기하며 오로지 제 자신을 탐구하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힙합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플레이어가 등장했다. “증오는 빼는 편이야 가사에서 질리는 맛이기에. (중략) 그대들은 verse 채우기 위해서 화나 있지.” Mnet <고등래퍼2>에 참가한 김하온이 학년별 싸이퍼 무대에 올라 마이크를 잡는 순간 사람들은 직감했다. 이번 시즌의 우승자는 저 사람이겠구나. 랩 스타일 취향에 따라 응원하는 래퍼가 다를 수 있었을지언정, 김하온이 세상을 향해 말을 거는 화법이 기존의 다른 래퍼들과는 사뭇 다르다는 사실만큼은 모두가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을 향해 곤두세웠던 자신의 분노와 증오를 향해 “영감을 주는 동시에 대부분을 가져갔으니 등가 교환이라 칭하기엔 저울이 많이 기울었”(‘Adios’ 중)다 말하는 김하온은, “무언가를 증오하고 혐오하면 그것이 결국 제 자신이 되어버린다고 믿”는다며 자신은 증오의 랩게임에 동참하지 않을 것을 선언했다. 힙합이란 장르에 다른 길도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 김하온은 결국 <고등래퍼2>의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김하온을 보며 영감을 얻고 꿈을 키울 다음 세대의 래퍼들은, 지금과는 다른 방식의 랩게임을 펼칠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 김하온이 씬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게임 체인저인 이유다.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사진=SBS, MBC, 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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