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이시영은 고생했지만 엉성한 대본·연출 어쩌나

[엔터미디어=정덕현의 그래서 우리는] 이쯤 되면 그냥 <언니>가 아니라 <이시영의 언니>라는 제목이 더 어울릴 법한 영화다. <언니>는 사실상 이시영이라는 배우의 액션에 대한 기대감을 전편에 내건 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로 이시영이 온몸을 던져 고생을 했다는 건 영화 전편 곳곳에 묻어난다. 이시영은 동생을 성폭력한 가해자들을 하나하나 찾아가 해머로 내리찍고, 문틈에 손가락을 찧어 잘라버리고, 차로 질주해 여러 조폭들을 밀어버린다. 단신으로 온몸에 피를 흘려가며 떼로 덤벼드는 조폭들과의 치고 박는 액션은 물론이고, 자동차를 마치 말을 몰 듯(?) 운전하며 총을 쏘는 장면까지 연출한다.

하지만 <언니>의 볼만한 점은 딱 거기까지다. 액션 장면 하나하나는 맨몸으로 부딪친 이시영의 노고가 빛나지만 장면 연출 자체가 새롭게 느껴지는 건 별로 없다. 또한 액션 오락물이라고 해도 거기 존재해야할 최소한의 개연성 있는 스토리가 있어야 할 텐데 <언니>는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이 여성히어로 인애(이시영)가 가해자들을 찾아가 응징하는 장면에만 몰두한다.



이 여성히어로가 이처럼 주먹을 들게 된 이유는 단 하나. 납치되어 간 동생을 구하려는 것이다. 그건 충분한 이유가 되지만, 중요한 건 동생을 어째서 조폭출신 지역의 유력자가 굳이 납치해 갔는가에 대한 이유다. 이 이유가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에 영화는 인애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여성히어로가 남성가해자들을 두들겨 패는 장면 그 자체의 카타르시스만을 보여주기 위해 인위적으로 가해자를 설정해 놓은 것처럼 보인다.

이런 개연성이 떨어지는 상황을 인위적인 설정들로 만들어 보여주려 하다 보니 영화는 카타르시스를 주기보다는 보기 불편한 장면들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한계를 드러낸다. 납치된 인애의 동생 은혜(박세완)가 지속적으로 당하는 장면들을 굳이 계속 보여주는 건, 인애의 액션을 정당화하기 위한 장치지만, 그 자체를 보는 불편함이 더 크게 다가온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여성히어로를 그리겠다고 아예 제목도 <언니>라고 붙인 이 영화에서 여성주의적인 관점은 그리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흔한 남성히어로물의 자극적인 설정들에 주인공만 여성으로 세운 느낌이다. 이미 많은 이들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여성히어로로 등장해 맨몸으로 싸워야 하는 인애가 굳이 빨간 원피스에 하이힐을 신고 액션을 해야 한다는 게 좀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제아무리 액션 오락물이라고 하더라도 여성히어로를 세웠다면 최소한의 여성주의적 관점 정도는 유지해줘야 관객들이 동조하고 지지할 수 있을 게다. 하지만 영화는 그런 심도를 채워 넣지 못함으로써 비판적인 관점을 담은 폭력적인 설정조차 볼거리로 전시하는 느낌을 준다. 실로 이시영이라는 배우의 몸 사리지 않는 연기를 무색하게 만드는 연출, 대본이 아닐 수 없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영화 <언니>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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