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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C:더 벙커’ 하정우 연기 어색한 건 영어 못해서가 아니다
기사입력 :[ 2019-01-06 14:28 ]


‘PMC:더 벙커’, 어색한 흉내와 진부한 안주 사이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지난 1년 동안 나온 한국 영화 출연자 중 한 명을 뽑아 외국어 연기상을 준다면 <스윙 키즈>에서 4개 국어가 가능한 통역 양판례를 연기한 박혜수가 받게 될 것이다. 그건 박혜수가 완벽한 영어를 구사했기 때문이 아니다. 정반대다. 박혜수는 대신 딱 양판례스러운, 그러니까 1940~50년대의 험악한 시기를 보내면서 실전을 통해 생활 외국어를 배운 사람처럼 영어를 구사한다. 양판례의 억양이 당시 사람들이 했던 영어와 완벽하게 일치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단 당시엔 지금 우리가 당연시하는 서울말의 억양이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캐릭터와 잘 어울리고 이야기에도 잘 녹아들며 무엇보다 관객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다.

이런 식의 연기는 당연한 것인데, 의외로 한국 영화에서는 찾기가 힘들다. 한국에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배우가 영어를 할 때 완벽한 억양의 영어를 구사해야 한다고 믿는다. 언어란 쉽게 배울 수 있는 게 아니고 해외에서 자란 배우들이 아니면 그들이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당연히 그 연기는 어색할 수밖에 없다. 영어를 못해서가 아니라 도달 불가능한 연기를 하느라 자기 발에 걸려 넘어지는 것이다.



에서 하정우의 연기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다. 하정우의 영어 실력은 대부분 한국 배우의 평균을 넘어설 것이다. 이미 영어 비중이 높은 영화에 출연한 적이 있고. 하정우가 연기하는 PMC 용병도 딱 하정우 수준의 영어만 하면 된다. 한국인이고 해외 생활도 그렇게까지 길게 하지 않았으니까. 물론 그 뒤로 죽어라 공부를 했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 외국 거주자들이 그러는 것처럼 적절한 수준에서 타협을 했을 것이다. 어휘를 최대한 줄이고, 쓰기 편안한 구조의 문장을 반복하고. 이같은 외국인의 영어는 훌륭한 연기의 재료이기도 하다. 이는 캐릭터 묘사와, 다른 캐릭터들과의 관계를 짜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하정우는 쉬운 길을 택하지 않는다. 영화는 이 배우의 캐릭터 에이헵이 완벽한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고 있다고 친다. 어쩔 수 없이 배우는 이 기준에 자기를 맞추어야 한다. 결과는 난처할 수밖에 없는데, 일단 배우의 에너지가 긴 문장의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척하는 연기에 다 쏠려버린다. 그 노력 때문에 영어 대사 대부분이 어색할 수밖에 없고. 무엇보다 그 능숙한 대사 대부분이 비영어권 작가가 쓴 문장의 번역인 티가 난다. 제니퍼 일리, 캐빈 듀렌드처럼 멀쩡한 배우가 나오는데도 의도와 상관없이 영화가 <서프라이즈> 분위기를 풍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영어권 작가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해 쓰는 방법이 있었을 것이다.



배우의 영어 실력이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라는 영화가 필요 이상으로 할리우드 영화를 흉내내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는 어쩔 수 없다. 이런 종류 액션 영화의 문법 상당수는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졌으니까. 하지만 영화는 이 모방을 자신만의 문화와 언어에 녹여내는 대신 전면으로 노출시켜 버린다. 당연히 모든 것들이 어색해지고 배우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의 노력이 지나치게 드러난다. 노력이 결과보다 더 많이 보인다면 그 영화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하정우의 연기는 북한 측 의사로 나오는 이선균 캐릭터가 등장해 한국어 대사가 가능한 순간부터 편안해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순간부터 영화가 나아졌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어색한 북한 억양으로 전문용어를 구사하는 이선균의 대사 대부분을 못 알아들었다는 건 부수적인 문제이다. 그보다는 이 순간부터 영화가 할리우드 액션물의 흉내에서 남북한 분단상황을 다룬 흔한 영화의 공식에 빠져버렸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아니, 충무로 사람들은 브로맨스를 빼면 이 상황에 대해 한마디도 못하는 병에 걸린 것인가? 다른 방향으로는 상상력이 닿지 않는 것인가?



에는 자기만의 장점이 있다. 굳이 그렇게 열심히 비디오 게임을 흉내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종종 눈을 돌릴 수 없는 액션 장면들이 있다. 이들은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없는 다른 문제점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았다면 더 잘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결과물은 어색한 흉내와 진부한 안주 사이에 걸쳐 있는 성긴 구조물이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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